女배구 박정아, '욕만 할 게 아니다'
By 김영돈
2016-08-26 20:14:11 13004
‘실수’ 가 ‘비난’으로

리우 올림픽 여자 배구 8강전. 네덜란드와 맞붙은 우리나라 선수들의 초반 경기력은 부진했습니다. 상대 서브를 받아내지 못하며 1, 2세트를 허무하게 내주고 말았죠.

결국 세트 스코어 3대 1로 우리나라가 패배했습니다. 네덜란드는 우리나라가 예선에서 한 번 꺾은 적이 있어 더욱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패배의 원인으로 선수들의 떨어진 컨디션부터 한국 여자 배구의 열악한 제반 사정 등이 꼽혔습니다.

<박정아 선수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달린 댓글들>


문제는 경기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 비난의 화살로 바뀌어 특정 선수와 감독을 향했다는 점입니다. 네티즌들은 박정아 선수의 SNS 계정을 찾아가 거친 말을 쏟아냈습니다. 경기력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박 선수가 출전하지 않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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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박정아가 비난 타킷이 됐나

<실점 뒤 코트에 주저앉은 박정아 선수, 출처 리우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박정아 선수의 경기력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경기 전 여러 언론은 박정아 선수를 김연경 선수 다음가는 대표팀의 ‘키 플레이어’로 꼽으며 기대를 모았습니다. 지상파 해설 위원으로 낙점 된 이도희(SBS), 장윤희(MBC), 이숙자(KBS) 해설위원도 스포츠 타임즈와 인터뷰에서 핵심 선수로 꼽힌 박정아 선수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함께 드러냈습니다. 이도희 해설위원은 “박정아가 서브 폭탄을 받아내야 하는 입장이다. 상대가 더 집요하게 정아가 있는 쪽으로 집중공략 할 것”이라고 하기도 했죠.

상대의 집중 공략 탓인지 박정아 선수는 중요한 순간에 리시브 범실을 했습니다. 특히 4세트에서 우리나라가 네덜란드를 4점 차로 추격하고 있을 때, 박 선수는 네덜란드의 서브를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점수는 19대 24로 상대가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지켜보는 해설진은 안타까움에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네티즌의 강한 비난은 어쩌면 이 지점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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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도 경기의 일부



그런데 실수도 경기의 일부입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거나 실수를 유도하는 건 일종의 전략이죠. 야구의 경우 상대 수비의 허점을 공략해 베이스를 훔치는 ‘도루’는 기록으로 인정하는 전술입니다. 도루를 막으려면 좋은 어깨와 빠른 동작을 지닌 포수가 필요하죠.

도루를 내줬다고 포수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을 던지는 동작이 빠른 투수의 도움도 필요하고, 포수가 송구한 공을 재빨리 잡아 주자를 아웃 시키는 수비수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여자 배구 경기로 돌아가면 박정아 선수는 서브 리시브에서 ‘Excellent(훌륭, 공격으로 이어가기 좋은 리시브)’를 4번 밖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실점은 3번 있었습니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25회의 리시브 기회가 있었음에도 좋은 수비를 보여주지는 못한 겁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상대 네덜란드가 강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비 전담 리베로 김해란 선수도 리시브 24개 중 단 6개 만을 ‘Excellent' 판정 받았고 실점도 5번이나 있었습니다. 기록만 놓고 보면 박정아 선수보다 잘했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여자 배구의 이정철 감독은 경기 전 매체 인터뷰에서 "서브 리시브가 잘 되면 이기는 것이고, 서브 리시브가 안 되면 지는 것"이라 말했지만, 상대의 서브는 생각보다 강력했고 우리 수비는 흔들렸습니다. 상대는 이 부분을 집중 공략해 서브로만 12득점을 얻은 겁니다. 그들의 '전략'이 먹힌 거죠.줄 바꾸기 위한 공백

실수만 아니었다면…

<아쉬워 하는 김연경 선수, 출처 리우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그럼에도 ‘○○만 아니면 이겼다’, ‘○○의 실수만 아니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떨쳐내기 힘듭니다. 결과에 대한 아쉬움은 어디에서 비롯한 마음일까요. 2010년 <한국스포츠심리학회지>에 실린 논문 <만약 실수를 안 했더라면 이겼을 수도 있었을텐데 : 승패결과에 대한 사후가정, 성취목표성향, 후회정서>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논문은 경기가 끝나고 승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을 ‘사후가정(counterfactual thinking)’이란 개념으로 정의합니다.. 사후가정은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결국은 일어나지 않은’ 결과에 대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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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가정의 유형 ‘추가’-’삭제’, ‘상향’-’하향’

사후가정은 유형에 따라 ‘추가형(addictive)’과 ‘삭제형(substractive)’, ‘상향형(upward)’ 혹은 ‘하향형(downward)’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추가형은 “A선수를 출전 시켰다면, 수비가 훨씬 좋아졌을 텐데”라는 가정입니다. 실제 일어난 일에 추가적인 요소를 더해 결과를 상상하는 유형이죠. 반면 삭제형은 “A선수가 나오는 대신 기존의 선수로 진행했다면, 수비가 문제가 될 일은 없었을 텐데”라는 가정입니다. 실제 일어난 일에서 특정 변수를 제외한 결과를 상상하는 유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상향형(upward)과 하향형(downward)은 방향에 따른 구분입니다. 하향형은 “공격력이 떨어졌다면, 예선에서 탈락할 수도 있었다”와 같은 마음입니다. 우리 팀이 가지고 있는 요소와 현재 이뤄 놓은 업적에 만족하는 유형이죠. 반면 상향형은 “조금만 더 수비가 안정됐다면, 8강에 진출할 수도 있었다”와 같은 아쉬움입니다. 부족했던 부분을 돌이켜보고 가상의 목표에 현재의 결과를 비교하는 유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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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가정’은 왜 하는 걸까?

논문은 사후가정을 하게 되는 이유를 Roese & Olson의 1995년 연구를 인용해 “당장의 기분을 좋게 하고, 앞으로 다가올 일에 어떻게 대처할지 준비하기 위함”이라고 정리합니다.

실제 일어난 결과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을 상상하면 “불행 중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하향형 사후가정이 작용한 것이죠. 이 경우에는 현 상황에 만족하고 기분을 낫게 하기 위해 사후가정이 작용한 겁니다.

반면 상향형 사후가정을 하면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는데 실패한 것을 인정한 셈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상향형 사후가정은 꼭 필요합니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기 위한 ‘오답노트’를 만들기 위해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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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경기 중 파이팅을 외치는 김연경 선수, 출처 리우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여자 배구의 경우 상향형 사후가정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고 그 마음이 경기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응원하는 선수가 실수를 했을 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실수에 대해 도를 넘은 '비난'은 잘못된 일입니다. 상향적 사후가정은 다음에 있을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입니다. 마음의 상처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이 되죠.

올림픽은 끝났습니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거친 질타의 말 대신 따뜻한 박수를 보내주는 것은 어떨까요.

김영돈 기자(zeromoney@scientist.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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