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 된 하버드 생, 도대체 왜?
테러범 된 하버드 생, 도대체 왜?
  • 이승아
  • 승인 2017.10.16 10:55
  • 조회수 1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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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 머리를 가진 MIT 청소부 윌(맷 데이먼 분)이 천재성을 인정받고 멘토 숀(로빈 윌리엄스 분)을 만나 변화하는 감동적 영화 <굿 윌 헌팅> 좋아하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이 영화엔 윌의 미래를 두고 수학과 램보 교수와 심리학과 교수 숀이 나누는 대화가 등장합니다. 램보는 윌이 술집 바텐더도 아는 아인슈타인, 조나스 소크(소아마비 백신 발견자) 정도의 천재라며 그가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고 말하죠.

 

 

Sean: [in a gentlemen's bar] Hey, Gerry, In the 1960s there was a young man that graduated from the University of Michigan. Did some brilliant work in mathematics. Specifically bounded harmonic functions. Then he went on to Berkeley. He was assistant professor. Showed amazing potential. Then he moved to Montana, and blew the competition away.

Lambeau: Yeah, so who was he?

Sean: Ted Kaczynski.

(대사출처 : imdb)

 

카진스키가 누굴까요?

 

두 교수의 대화를 가져와봤습니다. 대충 뛰어난 어떤 녀석이 있었다며 사례를 드는 장면인데요. 굳이 번역은 안 할게요. 아래 설명을 읽어보시면 그 속에 위 대화가 포함됩니다. 

 

두 사람 대화에 테드 카진스키(Ted Kaczynski)라는 사람이 언급됩니다. 수학 천재였지만 테러리스트가 된 범죄자입니다. 그는 17살에 하버드에 들어가 미시간대학교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1967년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 조교수로 갔으나 2년 뒤 그만둡니다. 이후 그는 1976년부터 1995년까지 직접 제작한 총 16개의 폭탄으로 3명을 살해하고 11명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그가 유나바머(Unabomber)라 불린 이유는 첫 희생자가 대학(University)과 항공사 직원(Airline)이었기 때문입니다. 폭탄테러리스트였기에 영화 <굿 윌 헌팅>의 바텐더도 이 수학자를 알고 있었죠.

 

테드 카진스키입니다. 출처: John Youngbear/AP

하버드 비밀 실험 '다이애드'

 

그는 과학기술에 적대적이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자유와 개성을 파괴한다고 믿었죠. 그는 우편물 폭탄 테러를 감행했습니다. 그는 흔히 기술 문명에 극단적인 저항심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훌륭한 이력을 가진 천재 수학자가 어쩌다 테러리스트가 됐는지 선뜻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당시 대중은 그가 도대체 왜 전기도 수도도 없는 오두막에서 폭탄을 만들고 있었는지 궁금해했죠. 

 

그런데 그가 하버드에서 진행된 비밀스런 실험에 참여했다는 과거가 알려졌습니다. <매드사이언스북>에 소개된 내용을 참고하면 카진스키는 하버드 재학 시절 하버드 대학 심리치료 연구소 머레이 교수가 진행하는 한 실험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역사학자 앨스턴 체이스가 2000년 6월에 <하버드와 유나바머>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며 카진스키가 폭탄 테러범이 된 데에 이 실험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발언합니다. 

 

도대체 무슨 실험이었을까요?

 

이 실험의 이름은 '다이애드'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대단히 부담스러운 토론입니다. 피실험자들은 조명이 밝은 방에 앉아 있습니다. 이들의 모든 행동은 투사거울 너머로 관찰되고, 필름에 담겼습니다. 그들의 호흡과 맥박도 측정기에 시시각각 기록됐습니다.

 

실험 참가자는 다른 학생과 토론을 합니다. 머레이 교수가 그들에게 말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이 토론을 하게 될 상대가 말재간이 아주 좋은 법학도라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토론을 하면서 실험 참가자를 화나게 하도록 '특별훈련'을 받았다는 점이죠. 이 법학도는 피실험자를 야비하게 대하고, 인생철학을 조롱했습니다. 

 

전체적인 실험 구성 출처 : flaticon

피실험자 카진스키도 머레이 교수의 실험에 꼼짝없이 당했습니다. 처음엔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려고 애썼지만 특별 훈련을 받은 상대방의 조롱과 탁월한 논변에 굴복하게 됩니다. 그렇게 굴복하고 난 카진스키의 마음엔 뭐가 남았을까요? 분노와 억울함이 가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대결 뒤에는 검사와 토의가 이어졌습니다. 실험 프로그램의 일환이었죠.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이 논쟁하는 장면을 녹화한 화면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청했습니다. 영상에 나타난 자신의 분노에 대해 스스로 논평해야했죠. 도대체 이 머레이 교수는 이 실험으로 뭘 알고 싶었던 걸까요? 

 

안타깝게도 오늘날까지 그 실험의 목적은 분명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실험을 하던 그의 조수들도 제대로 실험의 목표를 알고 있던 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머레이의 전기를 참조하면 이 교수는 실험을 통해 그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밝혀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카진스키. 출처: associated press/ dailymail

실험이 테러리스트를 만들었을까?

 

정말 이 실험이 카진스키가 테러리스트가 되는 과정에 영향을 줬을까요? 책에 따르면 카진스키는 얌전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동생 데이비드 카진스키 또한 "형은 폭력적이지 않았다, 폭력적인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며 2016년 2월 미국 ABC 뉴스 인터뷰에서 증언했습니다. 반항적인 면모도 뚜렷하지 않았죠. 

 

대신 그는 하버드에서 그리 속 편히 지내진 못했다고 합니다. 친구도 별로 없었으며 부모의 기대가 무거웠다고 합니다. 방에서 나오지 않으며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카진스키는 머레이 교수가 모집한 24명의 다양한 성격을 가진 학생 중 가장 자신감 없는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카진스키는 이 다이애드 실험이 매우 불쾌한 경험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하버드 대학에서 보내는 마지막 몇 해 동안 그가 가지고 있던 '기술 적대적' 세계관은 강화되었죠. 앞서 말씀드린대로 역사학자 앨스턴 체이스는 머레이 실험이 카진스키에 영향을 끼쳐 폭탄 테러범으로 변질되는 데 일조했을 거라는 골자의 논문을 내놓았습니다. 하버드 대학 머레이 연구소는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다른 피실험자들은 논쟁을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체이스가 연구 목표를 곡해한다고 반박했죠.

 

동생의 제보로 검거된 카진스키. 출처: hollywoodrepoter

체이스도 이 실험이 테러범이 되는 유일한 전환점은 아니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어느 시대나 발생할 수 있는 윤리의 상실, 그리고 상처를 잘 받는 카진스키의 성격 등 다양한 요인들이 함께 작용했을 거라 추측합니다. 

 

이 실험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카진스키의 암호명입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실명 대신 각자 암호를 썼는데 이때 카진스키의 암호는 Lawful(법을 준수하는)이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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