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의 법칙 너머
무어의 법칙 너머
  • 이웃집편집장
  • 승인 2016.03.1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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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의 법칙’ 넘어서다 

1990년대였을 겁니다. 그 시절 컴퓨터를 구매해본 분이라면 경험해보셨을텐데요. 286 컴퓨터 샀더니 386 나오고, 486 샀는데 586 데스크탑이 등장하는 식으로 기술 발전 속도를 체감했던 기억 말입니다. 

저장 장치도 꽤 빠르게 발달했습니다. 5.25인치 플로피 디스켓으로 어떤 건 부팅 디스켓, 어떤 건 게임 디스켓으로 분류해 첩에 꽂고 다녔던 풍경이 당시 얼리어답터의 전형이었습니다. 그러다가 3.5인치 마이크로 플로피 디스켓을 들고 다녔고, 이내 CD에 파일 구웠죠. 이제는 수백 기가(Gigabit) 넘는 USB, 외장하드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컴퓨터의 발달과 저장장치의 진화는 ‘반도체 기술’이 추동력이었습니다. 반도체 칩의 크기를 줄이고 처리 능력을 강화하는 길을 걸어왔죠. 이 발전의 큰 궤적 뒤에는 한 법칙이 있었습니다. 무어의 법칙입니다.

 

고든 무어, www.wsj.com
고든 무어, www.wsj.com

 

무어의 법칙이 무어냐 

“18개월마다 칩에 집적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 수가 2배씩 증가할 것이다” 

인텔 공동 창업자 고든 무어의 말입니다. 작은 반도체 칩에 전기 신호를 처리하는 소자를 점점 더 많이 끼울 수 있게 된다는 뜻이죠. 이렇게 1965년 ‘일렉트로닉스’라는 잡지 인터뷰를 통해 지난 50년간 반도체 시장의 기술 발전을 이끌어온 무어의 법칙이 세상에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서울대 홍성욱 교수가 2011년 <future horizon>여름호에 기고한 자료에 따르면 무어는 “(집적회로)의 복잡성은 대략 매년 두 배의 비율로 증가했다”고 결론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무어의 법칙이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무어는 이 잡지 인터뷰에서 ?“길게 보았을 때, 이 증가 속도가 앞으로 10년 동안 일정할 것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고 미래를 내다봤습니다. 집적회로 칩 속에 삽입되는 트랜지스터의 수가 매 년 두 배씩 증가할 경우 10년 동안에 210배, 대략 1,000배가 증가하고 1965년에 64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해 칩을 만들던 회사는 1975년에 무려 65,000개의 트랜지스터를 하나의 칩에 넣게 된다는 계산을 한 겁니다. 

1970년대 이후 전자기기는 무어의 법칙 따라 진화했습니다. 가정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게 1970년대 입니다. 점차 PC의 크기가 작아지고 성능이 향상됐죠. 기간은 1년 6개월이면 충분했습니다. 70년대부터 최근까지 반도체 업체들은 무어의 말을 따랐습니다. 무어의 법칙은 그렇게 정설이 되어갔습니다. 

신발끈 고쳐 묶는 인텔 

 

올해 네이처 2월호는 이 정설을 깨트리는 보도를 냈습니다. 반도체 업체들이 무어의 법칙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반도체 업계는 다음 달 '무어의 법칙을 넘어서(more than Moore's law)'란 이름의 새 기술 로드맵을 공개할 계획인데요. 

인텔사가 대표적입니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반도체 성능이 올라가면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이에 맞춰 업그레이드 돼 왔던 과거를 끊겠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선 제품 후 반도체’ 방식으로 기술을 향상시키겠다는 게 ‘무어의 법칙을 넘어서’의 골자입니다. 


인텔은 과거 철석같이 믿었던 무어의 법칙에 된통 당한 기억이 있습니다. x86은 70년대 후반부터 인텔의 데스크톱 컴퓨터에 들어가는 중요한 처리장치였습니다. 칩(chip)입니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 따라 x86 라인만 지속적으로 개발해오다 랩톱을 넘어 모바일로 뒤바뀐 IT기기 소비 패턴을 따라잡지 못한 겁니다. 결국 인텔 매출이 전반적으로 하락했습니다. 오텔리니 전 인텔 CEO가 2013년 은퇴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이기도 하죠. 

1990년대만 하더라도 486, 586 같은 컴퓨터에 장착된 CPU 등을 만들며 신화적인 입지를 다져온 인텔이 이제서야 새로운 기술 개발 패러다임을 적용키로 마음 먹은 겁니다. 

만시지탄 그리고 ‘황의 법칙’ 

너무 늦은 감이 있습니다. 무어의 법칙 좇다가 반도체 업체들이 자체 개발 역량을 덜 키우게 됐기 때문입니다. 물론 눈부신 반도체 발달 기술을 다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따라가지 못해 속도 조절을 한 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러 반도체 발달 속도를 무어의 법칙에 맞추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돌 정도로 인텔, NEC(니혼전기주식회사), 도시바, 히타치, 모토로라는 무어의 법칙을 따랐습니다. 

삼성전자가 ‘황의 법칙’을 내세워 반도체 시장을 선점해버린 건 그래서 상징적이었습니다. 지금은 KT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당시 반도체 변방이었던 우리나라를 단숨에 세계 2위까지 끌어올렸습니다. 황 전 사장은 2002년 국제학술회의에서 “(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는)18개월이 아니라 1년에 2배씩 늘어난다. PC가 아니라 휴대폰, 디지털가전 등 Non-PC가 주도할 것이다”라는 발언을 합니다. 이른바 ‘황의 법칙’의 탄생입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1999년 256메가바이트 낸드플래시를 시작으로 2000년 512메가바이트, 2001년 1기가바이트짜리 반도체를 만들었습니다. 이듬해 2기가바이트, 2003년에는 4기가, 2004년에 8기가짜리 낸드플래시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죠. 2005년에 16기가바이트를 내놓았고 2006년에 32기가바이트, 그리고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질 즈음 삼성전자는 64GB 반도체를 양산합니다. ‘황의 법칙’은 당시 세계 1위였던 인텔사에 이어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을 세계 2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미래 

만시지탄 하더라도 ‘시작이 반’입니다. 앞으로 ‘무어의 법칙’이라는 족쇄 아닌 족쇄를 풀어버린 이상 반도체 업체는 더 고도화된 기술을 시장에 내놓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블룸버그는 2월 26일 “삼성전자와 인텔의 반도체 경쟁이 본격화하며 충돌 직전”이라며 “각자 상대방의 주력분야 진출을 확대하고 경쟁 중”이라는 내용으로 보도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전 세계 D램 매출 점유율 1위(58.2%)를 기록하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파죽지세를 보여왔습니다. 낸드플래시 또한 업계 1위를 고수하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시작하고 후발 주자들이 생산한 반도체가 본격적으로 양질의 제품을 대기 시작하면서 방향을 시스템 반도체로 고쳐잡았습니다. 

세계 반도체 시장 부동의 1위 인텔은 주력 사업이었던 시스템 반도체쪽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역으로 삼성전자 강세인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서로가 빈틈을 노리며 시장을 비집고 파들어가는 중원의 대결이 펼쳐지는 겁니다. 

반도체 산업은 결국 현재로선 인텔과 삼성전자의 싸움입니다. 이들이 어떤 경영 전략을 펼치느냐가 곧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겁니다. ‘무어의 법칙’이 무안할 정도로 격렬하게 반도체 역량을 키우며 뺏고 뺐기는 치열한 승부가 시장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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