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밤, 별이 쏟아졌다. 유성우였다. 2003년 2월 18일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하늘에선 시간당 최대 8천 개의 유성이 내렸다. 산기슭에 자리한 대천 모교의 기숙사 생 150여 명은 옥상에 올랐다. 나는 자리 깔고 누웠다. 더러는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늘에선 환상이 쏟아졌다. 설익은 청춘들은 저마다 아롱다롱 환상의 몸피를 키웠다. 그 순간, “이 새끼들 다 튀어내려와!” 기숙사 사감의 외마디는 서슬퍼랬다. 

2, 3학년 형들은 어느 틈에 다 도망갔다. 1학년 60여 명만 현관 로비에 집결했다. 망했다 싶었다. 평소에도 사정 없이 몽둥이 찜질을 쏟아냈던 사감이었다. 매타작을 예상하고 있던 찰나, 사감은 옷을 벗으라고 지시했다. 남자 고등학교였다. 사감 게이설이 아스라히 떠올랐다. 

우리는 맨발로 운동장을 뛰었다. 육두문자가 텅빈 운동장에 알토 혹은 베이스 톤으로 쏟아졌다. 대놓고 크게 욕할 수 없으니 궁여지책이었다. 사감은 저 멀리서 점령군처럼 우리를 지켜봤다. 팬티 한 장 걸친 우리는 추웠다. 그해 겨울 모래는 얼음장이었다. 뛰라고 해서 뛰었다. 땅 보고 욕하다가 하늘 보고 “오 대박”을 외쳤다. 우리는 흡사 일련의 제의를 올리는 원시 부족 같았다. 서로를 보며 놀려댔고, 급기야 즐겁기까지 했다. ?35년 만에 유성우가 내린 날. 우리는 원주민처럼 별똥별 소나기 아래 질주했다. 

올해도 유성우가 내린다. 오는 8월 12일경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는 2016년 가장 주목받는 유성우다. 22시부터 2시간 반 정도 시간당 160개가 넘는 별똥별이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웃집과학자> 편집장 맡고 나서 처음 맞는 유성우다. 그 시절 ‘별똥별 질주’ 추억이 떠오른 이유다. 내가 봤던 2003년의 유성우는 사자자리였고 템펠-터틀 혜성이 지구 공전 궤도에 남긴 부스러기가 지구 대기권에서 사윈 거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저마다의 사연 속에 별똥별은 대체로 아름답다. 헤아리기 힘들 만큼 유성이 내리는 날이 되면 고등학교 동창을 만날 생각이다. 그땐 그랬지. 그 사감은 아무리 생각해도 게이였던 거지. 술 거나하게 안 취하도록 조심해야겠다. “야, 우리 그 때처럼 빤쓰만 입고 뛰어볼까?” 아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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