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은 왜 생길까
소문은 왜 생길까
  • 정기흥
  • 승인 2016.05.23 00:10
  • 조회수 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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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 스틸컷
영화 '곡성' 스틸컷

소문

 

영화 <곡성>이 화제입니다. 쉴 틈 없이 미끼를 던져 대는 영화 탓에 관람 후 영화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극 중 곡성 마을에 외지인이 나타난 이후 마을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다 죽어갑니다. 경찰은 야생 버섯 때문이라 결론짓지만, 외지인의 소행일 거라는 소문이 퍼집니다. 주인공 종구는 처음엔 그냥 소문으로 받아들이다 점점 의심을 갖기 시작하고 결국 확신에 이르게 되죠. 소문은 이렇게 한 가족과 마을을 집어삼키기 시작합니다. 

영화 결말과는 별개로 실체 없는 ‘이야기’가 곡성이라는 제한된 지역 안에서 빠르게 확산하는 과정은 공포스럽기도, 흥미롭기도 합니다. 실체가 없는 이야기가 점점 세간의 확신을 더해가는 과정은 현실에서 우리가 목도한 소문의 잔혹한 결과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1923년 관동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는 ‘조선인들이 이때를 틈타 우물에 독을 풀고 약탈을 일삼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인 학살로 이어졌죠. 2012년엔 콜롬비아 발레 주에서 소문만 무성했던 ‘2012년 지구 멸망설’에 대한 공포로 자살을 한 사건도 있습니다(관련 기사 링크). 이외에도 실체 없는 소문이 인간을 뒤흔든 경우는 헤아리기 힘듭니다. <곡성>을 보고 난 이웃집과학자, 소문 그 자체를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해봤습니다. 

 

소문이란 무엇인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소문을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전하여 들리는 말’이라 정의합니다. 랄프 로스노우는 1988년 그의 연구에서 ‘수신자가 전달받은 메시지의 사실 여부에 대한 확실함과 상관없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현상’을 소문이라 정의했습니다(Rumor as communication: A Contextualist Approach, JournalofCommunication,38(1),12-28). 말을 전하는 주체와 듣는 객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말의 진위 여부는 불분명한 메시지 확산 현상이 소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소문은 주로 사적인 관계 내에서 전달됩니다.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소문을 전달하려면 웬만한 ‘철판’을 얼굴에 깔지 않는 이상 어려울 겁니다. 연구나 설문 조사 등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처음 보는 사람을 붙잡고 “반갑습니다. 초면에 죄송하지만 혹시 그 소문 들어보셨나요?”라는 말을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테죠. 
  

소문은 왜 생기는 걸까 

인간은 심리적으로 알고 싶고, 말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메슬로우는 인간의 욕구 7단계에 지적 욕구를 포함시키기도 했습니다. 인간이 소문이 퍼지기 좋은 기본적인 ‘욕구’를 가진 겁니다. 또한 집단에 속해 다른 이들과 교류하고자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이야기나 지식의 공유도 사회적 활동의 일부로 여깁니다. 이를 통해 유대감과 정서적 교감을 얻기 때문입니다. 

마츠다 미사는 <소문의 시대>에서 소문은 막간을 이용한 화젯거리로 삼기에 부담이 없어 더 잘 퍼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대화거리가 떨어질 때 “맞다, 너 그 얘기 들었어?” 하고 소문을 전달해준 기억 다들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적 토대를 바탕으로 일련의 행위가 이뤄지면 소문은 확산합니다. 아래의 그림을 보시죠.

 

고든 올포트와 레오 포스트맨은 저서 <소문의 심리학>에서 ‘소문은 인간 기억의 한계에 의해 정보가 붕괴되어 가는 과정’이라 주장합니다. 시부타니는 <유언비어와 사회>에서 ‘소문은 사람들에 의해 정보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보았죠. 실제 소문의 과정에선 두 가지 양상이 혼재합니다. 이를 토대로 그린 그림입니다. 소문은 ‘정보의 붕괴’와 ‘정보의 추가’의 이중 과정을 동시에 거치며 각색되어 퍼집니다.

 

관동 대지진 이후 일어난 조선인 학살 사건의 예를 살펴보죠. 처음엔 ‘혼란을 틈타 조선인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조선인이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 작당모의를 한다더라’, ‘조선인이 예전부터 조직을 만들어 내란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더라’등의 소문으로 변모했습니다. 정보의 붕괴가 일어난 거죠. 

‘조선인이 방화를 저질렀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우물에 독을 탔다더라’등의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기도 했습니다. 소문이 퍼지면서 두 가지 양상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끔찍한 학살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소문은 어떻게 신뢰를 얻을까

 

보통의 경우에 사람들은 소문을 반신반의합니다. 하지만 그럴듯한 근거가 뒤따르는 소문은 신뢰받기도 하죠. 한 번 신뢰를 얻은 소문은 더욱 빠르게, 멀리 퍼집니다. 

소문은 정보 붕괴와 정보 추가 과정에서 전문성 있는 근거와 결합하기도 합니다. '어느 대학교수가 그랬다는데~', '어떤 기자가 귀띔해 줬다던데~' 등의 형태죠. 이때 대부분의 소문은 신뢰를 얻습니다. 소문을 듣고 사실 확인을 위해 대학교수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보거나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앞서 정의했듯 소문이란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기 때문이죠. 

가까운 사람을 통해 들은 소문일수록 더 높은 신뢰를 얻기도 합니다. “이건 너한테만 말해주는 건데…”로 시작되는 비밀스러운 소문은 상대방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 주죠. 비밀의 공유를 통해 더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겁니다. <소문의 시대> 저자는 “비밀을 전해 들은 사람은 다음번에 그에 상응하는 비밀로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질 확률이 높다”고 말합니다. 그 과정에서 소문은 ‘신뢰할 만한’ 소문이 됩니다. 

영화 <곡성>에서도 곽도원이 분한 종구가 마을 건강원 사장으로부터 ‘산에서 본, 인간 아닌 그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장이 그 기괴한 존재를 본 후 그 증거랍시고, 무서워서 산에 짐승을 안 잡으러 가 텅 빈 냉동고를 보여줄 때 ‘틀림없이 뭔가가 있다’고 종구가 확신하게 되는 장면 또한 사장과 종구의 가까운 관계가 소문을 믿음으로 강화한 촉매였습니다. 


뉴미디어 시대에서의 소문 

마츠다 미사는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이 소문의 속도를 높였다고 밝힙니다. 특히 전화의 등장이 소문의 속도와 범위를 크게 증가시켰다고 합니다. 그 후 인터넷이 발달하고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며 소문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요즘의 미디어, 특히 인터넷 기반의 소셜미디어는 소문의 생산과 확산의 기능을 함께 합니다.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소문이 기사로 보도되는 사례는 흔하죠.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신속성을 갖춘 소셜미디어는 소문이 퍼지기에 특화된 환경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빠르게 확산된 소문이 수습되는 경향도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의 종류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긴 하지만 실시간으로 상호작용이 빠른 환경 덕에 빠르게 퍼진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정될 때 다시 빠르게 수습되는 거죠.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던 전통적 모델의 소문은 “사실은 그게 아니었대”라는 말이 되돌아올 때쯤이면 이미 그 소문에 대한 관심은 식어 있는 식이었습니다. 뉴미디어 시대의 소문과 이 지점에서 차이가 있죠. 


애매함과 그럴듯함, 그 경계선에서 

아무리 실체 없는 소문이라도 그 소문이 불러올 결과는 천차만별입니다. 소문이 사실일 수도 있고 의심이 우리를 살리거나 잡아먹을 수도 있습니다. 대학살 불러일으킨 소문이 있는 반면 소문으로만 돌던 유명인의 선행이 사실로 밝혀져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기도 합니다. 

<소문의 시대>를 보면 소셜미디어 상에서는 ‘좋은 소문’이 ‘나쁜 소문’ 못지않게 많이 퍼진다고 합니다. 소셜미디어는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를 구축하는 공간이라는 거죠. 책의 지적처럼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좋은 소문’을 수집하고 공유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퍼져 나가며 생기는 긍정적 메아리는 제 몫을 다할 겁니다. 다만 중요한 건 애매함과 그럴듯함의 경계에 있는 ‘소문’들에 갈대 마냥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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