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의 편지 한 통과 '가습기 살균제 사망'
1958년의 편지 한 통과 '가습기 살균제 사망'
  • 이웃집편집장
  • 승인 2016.05.2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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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1958년 1월, 레이첼 카슨은 매사추세츠 주에 사는 허킨스라는 친구로부터 받은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내용은 단순하지만, 충격적이었다. 정부 소속 비행기가 모기를 방제하기 위해 숲 속에 DDT를 살포했는데 그 때문에 자신이 기르던 많은 새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친구는 DDT를 사용한 살포한 당국에 항의했으나, 당국은 DDT가 무해하다며 항의를 묵살했다(왜 안 그랬겠는가). 

친구는 항의 편지를 신문사에 보내고 그 사본을 카슨에게 보냈던 것이다. 카슨은 살충제 사용의 실태와 위험성을 알리는 책을 저술하기로 결심하고 <뉴요커>에 연재를 시작한다. 그리고 편지를 받은 지 4년이 지난 1962년 책이 출간됐다. 20세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침묵의 봄>은 그렇게 탄생했다. 
 

어느 날 새들의 소리가 사라졌다

 

책은 하나의 우화로 시작된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도, 소와 양의 울음소리도 사라진 한마을이 우화의 무대다. 미국 대륙 한가운데 한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곡식이 자라는 밭과 풍요로운 농장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면 희미한 안개가 내린 언덕 위에서는 여우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조용히 밭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사슴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평화롭던 마을에서 악몽이 시작된다

 
“그러던 어느 날 찬선 병이 이 지역을 뒤덮어버리더니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악한 마술의 주문이 마을을 덮친 듯했다. 닭들이 이상한 질병에 걸렸다.

소 떼와 양 떼가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마을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했다. 농부들의 가족도 앓아누웠다.

병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을 의사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이 곳곳에서 보고되었다. 

잘 놀던 어린아이들까지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다가 

몇 시간 만에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평화롭던 미국의 한 마을에 죽음의 공포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유없이 죽어갔다.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카슨은 우화를 이어간다. “불길한 망령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슬그머니 찾아오며 상상만 하던 비극은 너무나도 쉽게 적나라한 현실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수많은 마을에서 활기 넘치는 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카슨은 이 책을 썼다. DDT뿐만이 아니다. 카슨은 책에서 방사능 낙진으로 인해 더욱 절실해지기 시작한 환경 문제의 복잡성을 설명했다. 어쩌면 카슨은 비밀 핵 실험과 핵 비축이라는 장막에 대항하기 위해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른다. 카슨이 책에서 언급한 첫 번째 화학물질이 DDT가 아니라 방사능 요소인 ‘스트론튬 90’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진실을 감추려는 기업과 정부

 

책이 출간되자 거센 논란이 일었다. 저항도 심했다. 이듬해인 1963년 4월, 미국의 대표적 시사프로그램인 ‘CBS 리포트’가 <침묵의 봄>이 제기한 살충제 문제점 등을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당연히 레이첼 카슨도 출연했다.

 

또 다른 토론자로 나온 로버트 화이트 스티븐스 박사는 내내 고압적인 태도로 카슨을 비난했다. 그는 살충제 사용을 줄이거나 혹은 포기하면 곤충과 질병이 지구를 덮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 세상이 암흑시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주장도 펼쳤다. 그는 화학회사인 아메리칸 시아나미드사의 농업연구 분과 부대표인 생화학자였다.

 

살충제의 유해성을 증언하고 있는 레이첼 카슨, 사진 출처 AP
살충제의 유해성을 증언하고 있는 레이첼 카슨, 사진 출처 AP

토론자로 참석한 정부 관리들도 사태에 대한 충분한 파악 없이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했다. ?반면 카슨은 시종일관 침착한 모습으로 방송을 통해 인류가 자연에 가한 폭력을 낱낱이 고발했다. 그녀는 이렇게 외쳤다.

 

 
우리가 이겨야 할 대상은 자연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다. 

인간과 자연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정복하거나 지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청자들의 마음이 움직였고, 정치인과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토론회 바로 다음 날 한 상원 의원은 살충제 등 화학물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의회 차원에서 조사하자고 요청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과학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같은 해 대통령 직속 과학자문위원회는 카슨의 지적이 옳다는 취지의 보고서 <살충제의 사용>을 발표했다. 암연구소는 DDT의 암 유발 증거를 제시해 각 주들의 DDT 사용 금지를 이끌었다.

 

한 권의 책이 역사를 바꾸다

 

카슨은 1964년 56세로 사망했다. 원인은 지병인 유방암 악화였다. 카슨은 세상을 떠났으나 <침묵의 봄>은 그 후에도 계속 영향력을 발휘했다. 책은 10년 만에 '완벽한 살충제'로 불리던 DDT를 추방시켰다. 아울러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레이첼 카슨과 원작 표지
레이첼 카슨과 원작 표지

<침묵의 봄>을 읽은 또 다른 상원 의원은 케네디 대통령에게 자연보호 전국 순례를 건의했다. 이를 계기로 지구의 날(4월 22일)이 제정되었다. 1969년 닉슨 대통령은 환경보호 법안에 서명했다. 이런 움직임은 모두 <침묵의 봄>의 영향을 받았다.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레이첼 카슨 연구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린다 리어는 책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경이와 겸손은 <침묵의 봄>이 준 선물이다.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생명체의 일부이고 거대한 생명 흐름의 일부이다. 

이 책은 천천히 음미해가며 읽어야 한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이 아닌 

생명이 지닌 가능성의 약속을 위해서.”

 

새롭고 상상력 풍부하며 창의적인 접근법은 이 세상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카슨은 그것을 입증하고 규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책의 변화를 주장했다. 또 그렇게 했다. 그녀는 “자연을 통제한다”는 말은 네안데르탈 시대에 태어난 오만한 표현으로 봤으며 자연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는 ‘무식한’ 발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줄기차게 설파한다. 책은 그녀의 섬뜩하지만 정확한 경고로 끝을 맺는다.
 

 
그렇게 원시적인 수준의 과학이 현대적이고 끔찍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 

곤충을 향해 겨누었다고 생각하는 무기가 사실은 이 지구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크나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월남전 당시 고엽제를 살포하고 있는 미군
월남전 당시 고엽제를 살포하고 있는 미군

'침묵의 봄'은 현재 진행형

 

카슨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불행과 악몽은 계속됐다. 이후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다량의 살초제를 살포한다. 미군도, 미군을 돕기 위해 참전한 한국군도 하늘에 뿌려지는 오렌지색 액체의 정체를 알지 못 했다. 무더운 정글에서 지친 병사들은 하늘에서 액체가 뿌려지면 옷을 벗고 씻기까지 했다. 전쟁이 끝난 지 40년이 넘었지만 고엽제 피해자들은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다. 카슨의 경고처럼 "불길한 망령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슬그머니 찾아오며 상상만 하던 비극은 너무나도 쉽게 적나라한 현실이 된다."

 

전 지구적으로 화학물질의 유해성이 더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침묵의 봄>이 출간되던 당시에 비해 획기적이고 훨씬 안전한 방제법이 등장했다. 환경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몰라보게 높아졌다. 하지만 인간에 의한 환경재앙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으며, 때론 더 치명적이다. 국내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역시 마찬가지다.

 

"봄을 알리는 철새들의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지역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때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가득 찼던 아침을 맞는 것은 어색한 고요함뿐이다."

 

50여 년 전 <침묵의 봄>이 출간됐지만, ‘침묵의 봄’은 현재 진행형이다.

 

'침묵의 봄' 책 표지
'침묵의 봄' 책 표지

※ 어느 날 국내에서 산모와 아이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원인도 알지 못했다. 사망자들의 공통점은 폐가 급속하게 굳어간다는 것. 2016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진상규명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조용했던 검찰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가습기 살균자 피해 신청자는 1200여명을 넘어섰지만,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는 221명뿐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2016년 한국판 '침묵의 봄'이다.

 

기자와 피해자 가족들에게 둘러쌓인 영국계 다국적기업 옥시의 전 대표이사, 출처=오마이뉴스
기자와 피해자 가족들에게 둘러쌓인 영국계 다국적기업 옥시의 전 대표이사, 출처=오마이뉴스

원문 : 책방아저씨 브런치 "화학물질의 살인을 폭로한 한 통의 편지"

 

책방아저씨

모든 것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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