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지구가 둥근가요?”
얼마 전 <이웃집과학자> 페이스북 계정에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지구가 정말 둥근가요? 확실한가요?" 다소 황당한 질문이었지만 비슷한 제보가 여러번 있었던 만큼 취재진은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우선 질문하신 분께 좀 더 자세한 사정을 여쭤봤습니다. 자신을 인천에 사는 30대 직장인이라고 소개한 이웃께서 "직장 동료가 자꾸 지구가 평평하다고 우기는데 반박을 못하겠다"며 도움을 청해오셨습니다.
사실 과학과 천문학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면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이 둥근 편이라는 걸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땅은 평평해 보이기 때문이죠. 고대인이나 계몽 전 근세인들은 세상이 평평하다고 믿었습니다.
현대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은 걸까요. <평평한 지구학회(Flat Earth Society)>라는 곳이 있습니다. 실제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결성한 단체입니다.
평평한 지구 학회
올해 1월 <워싱턴포스트>에도 소개된 <평평한 지구학회>는 1956년부터 이어진 ‘유서 깊은’ 단체입니다. ‘The Flat Earth Society’라는 이름의 공식 웹사이트는 2016년 11월 현재에도 정상 운영되고 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평평한 지구 학회>는 자신들의 활동이 영국의 발명가이자 작가였던 사무엘 로버텀(Samuel Rowbotham)의 실험으로부터 기원했다고 설명합니다.
사무엘 로버텀은 영국 노퍽의 올드 베드퍼드 운하에서 측량 실험을 했는데요. 측량 결과 지구가 둥글다면 생겨야 할 오차가 측정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측량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 같지만 사무엘 로버텀은 엉뚱하게도 '지구가 둥글지 않다(Earth Not a Globe)’는 결론을 내리고 <Zetetic Astronomy: The Earth Not a Globe>라는 제목의 430페이지짜리 책까지 발표하며 자신의 측정 결과가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무엘 로버텀의 주장에 따르면 지구는 구형이 아니라 원반형입니다. 지구의 중심에는 북극이 있습니다. 원반 가장자리에는 얼음벽이 테두리처럼 둘러쳐져 있다고 합니다. 태양과 달은 땅에서 4,800km 높이에 있고 우주는 그보다 조금 높은 5,000km 위에 있다고 사무엘 로버텀 박사는 설명합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성경은 우리의 감각과 함께, 지구가 평평하고 고정되어있다는 생각을 지지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이론을 ‘Zetetic Astronomy(회의주의 천문학)’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사무엘 로버텀’ 그 이후
사무엘 로버텀은 1884년 죽었습니다. 하지만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엘리자베스 블런트(Elizabeth Blount)는 1901년부터 1904년까지 <The Earth Not a Globe Review>라는 잡지를 만들고 <Earth: a Monthly Magazine of Sense and Science>라는 신문도 발간 했습니다.
<평평한 지구 학회>의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녀는 <Universal Zetetic Society>라는 단체를 설립했고, 1901년에 사무엘 로버텀의 실험을 재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평평한 지구학회>의 활동 내역 기록을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NASA의 기록에 따르면 1956년 영국의 사무엘 셴턴(Samuel Shenton)이라는 사람이 <국제 평평한 지구학회(International Flat Earth Society)>를 설립하고 엘리자베스 블런트의 <Universal Zetetic Society>를 계승했다고 합니다.
사무엘 셴턴이 <국제 평평한 지구 학회>를 설립한 1956년은 미국과 소련이 우주기술 주도권을 다투던 시기와 동일합니다. 셴턴이 단체를 설립한지 1년 만에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고, 1968년 아폴로 8호가 달궤도를 공전하며 우주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 셴턴은 "훈련되지 않은 눈을 사진으로 속이는 것은 쉽다"며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NASA는 해당 사진을 업로드한 페이지에 “사무엘 셴턴 <국제 평평한 지구 학회>의 리더는 아폴로 8호가 찍은 최근의 사진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확실히 평면이라고 주장했다”며 셴턴이 “달은 둥글지만, 지구도 그렇다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한 내용을 함께 게시했습니다.
아직까지 이어지는 지구 평면설
이렇듯 지구가 둥글다는 과학적 증거가 명백해도 여전히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존재합니다. 지난 2009년에는 나이지리아의 테러단체 ‘보코하람’의 창시자 모하메드 유수프(Mohammed yusuf)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지구가 구(球)형이라는 주장은 알라의 가르침에 반한다”고 말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2013년에는 오바마 미 대통령이 Georgetown University에서 있었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은 'Flat Earth Society'와 같다"고 발언해 다시금 이 단체가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2016년 1월 미국의 래퍼 B.o.B와 연예인 틸라 테킬라 등이 SNS에 지구평면설을 주장했습니다. 틸라 테킬라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누구도 내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며 “정부가 나를 속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가디언>은 이들이 ‘TigerDan925’ 같은 음모론을 주로 다루는 유튜버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마
지구가 완벽한 구체는 아니지만 거의 둥근 형태라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독일 본대학교(University of Bonn) 루돌프 지맥 교수는 2014년 이화여대 특강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중세 유럽인들도 알고 있었다”고 말하며 지구를 둥근 모양으로 묘사한 당시 지도를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지구 밖에 있는 인공위성이 찍어보내는 수많은 사진과 우주비행사들의 증언만 보더라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반박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콩으로 메주를 만든다고 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논리적인 설득이 효과가 없습니다. <가디언>은 <평평한 지구 학회>를 신봉하는 사람들에 대해 “신흥 종교의 탄생과 같은 수준(It’s almost like the beginning of a new religion)”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1964년 1월 <국제 평평한 지구 학회>의 사무엘 셴턴을 특집으로 다루고, 그에게 ‘Flat-Earther’라는 별명을 붙여줍니다. 이 단어는 ‘쓸데없는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이란 뜻을 아직까지 관용어처럼 사용됩니다.
아직도 주변에서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The Flat-Earth Society has members all ‘around’ the Glo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