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大과학자가 촛불 든 이유
흙수저 大과학자가 촛불 든 이유
  • 김영돈
  • 승인 2016.12.10 18:05
  • 조회수 8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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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초 한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

'영국왕립학회'에서 마이클 패러데이가 강연하는 모습, 출처 RI
'영국왕립학회'에서 마이클 패러데이가 강연하는 모습, 출처 RI

서양의 성탄절은 우리의 설 명절과 비슷하다고 하죠.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법한 성탄절에 한 과학자는 과학 강연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1860년 <영국왕립협회(Royal Institution)>에서 진행던 ‘크리스마스 강연’입니다.

 

여섯 시간 강연의 주제는 ‘양초’였습니다. 이 과학자는 양초 불꽃의 구조와 밝기, 연소할 때 공기의 역할, 연소에 의한 물의 생성과 기타 화합물, 수소와 산소 기체의 특성, 공기와 연소의 관련성, 이산화탄소의 화학적 특성, 탄소의 본질, 생물체 내의 호흡과 연소의 상호 연관성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화학 전반에 대한 다양한 내용이 담겼지만 강연자는 이 내용을 양초 한자루로 엮어냈습니다.

당시 강연의 시간표, 출처  RI
당시 강연의 시간표, 출처 RI

이 강연은 한권의 책으로 정리 되었습니다. <The Chemical History of a Candle>라는 책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양초 한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촛불 강연은 역대 '크리스마스 강연'  중에서 <영국왕립협회>가 선정한 가장 기억에 남는 강연이 됩니다.

 

성탄절 여섯시간 동안 촛불 하나를 두고 강의를 했던 독특한 과학자는 바로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였습니다. 전기와 자기의 연관성을 밝혀내며 과학사에 크게 기여해 ‘전자기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죠.

 

훍수저 촛불 덕후 과학자

패러데이의 강연을 기록한 책
패러데이의 강연을 기록한 책

패러데이는 왜 하필 양초를 가지고 과학적 원리를 설명한 걸까요. 앞선 강연들을 살펴보면 그가 특별한(?) 취향의 ‘양초 성애자’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는 <양초 한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에서 1860년의 강연을 마친 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다이아몬드가 이 불꽃만큼 빛을 낼 수 있겠습니까? … 불꽃이 빛을 비춰주기 때문에 다이아몬드가 빛나는 것입니다. 불꽃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지만 다이아몬드는 불꽃이 없다면 빛날 수 없습니다. 양초는 제 스스로 자신을 위해 빛을 내며 또한 다른 것을 위해 빛을 내는 것입니다.”

 

그의 일생을 담은 책 <마이클 패러데이, 평생의 발자취>를 보면 패러데이는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하게 학교를 다녔고 그 마저도 자퇴했습니다. 부족한 공부는 교회 주일학교에서 배웠고 수학은 초등학생 수준에 그쳤는데요. 14살 무렵 제본공 견습생으로 취직한 뒤 스승인 과학자 험프리 데이비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렇다할 연구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1824년 <영국왕립협회>의 일원이 되고 1825년엔 협회의 책임자가 됩니다.

 

대과학자의 대중화 활동

실험실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패러데이, 출처 RI
실험실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패러데이, 출처 RI

성탄절 과학 산타가 되어 강연을 했던 1860년의 패러데이는 학문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과학자였지만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동료 과학자들과는 달랐습니다. <마이클 패러데이, 평생의 발자취>에 따르면 패러데이는 자신을 사회적 엘리트로 바라보는 시선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일례로 빅토리아 여왕이 그에게 ‘죽은 뒤 뉴턴이 묻힌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장례를 치러주겠다’는 제의를 했지만 패러데이는 정중히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의 성향은 패러데이가 책임자로 있던 <영국왕립협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영국왕립협회>는 연구 업적 만큼이나 과학의 대중화를 중요시 여기는 곳입니다. 이론이 아니라 친숙한 도구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매주 실시됐던 ‘금요일 밤 강연회’와 12월에 진행된 ‘크리스마스 강연회’는 대표적인 과학대중화의 창구였습니다.

 

패러데이는 <영국왕립협회>의 책임자로서 1827년부터 1860년까지 열아홉번 연사로 활동했습니다. 주제는 주로 화학과 전자기학이었습니다. 양초에 대한 강연은 1860년에 있었던 그의 마지막 강연이었습니다.

 

강연은 계속되고 있다

 

 

<영국왕립협회>는 매년 12월 ‘크리스마스 강연’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영국 왕립협회의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RI Christmas Lectures)’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1939년부터 1942년까지 중단됐을 때를 제외하면 190년 이상 지속되고 있습니다.

 

강연은 BBC를 통해 영국 전역에 생중계 됩니다. 과거 촛불 하나로 여섯시간 동안 진행하던 강연과 비교하면 볼거리가 더 많아졌죠.

 

<영국왕립협회>는 강연을 보고 싶지만 여건이 안 되는 학생들에게 여행 경비와 숙박 비용을 지원해주기도 합니다. 교육적인 목적으로 누구나 제한 없이 영상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 누구라도 유튜브를 통해 강연을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영국왕립협회> 공식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1825년 마이클 패러데이에 의해 시작된 ‘크리스마스 강연’은 이제 영국의 크리스마스 전통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패러데이가 지금의 ‘크리스마스 강연’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다시 촛불을 들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 강연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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