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드기를 자기 귀에 넣고 실험한 수의사
진드기를 자기 귀에 넣고 실험한 수의사
  • 이승아
  • 승인 2017.09.04 23:10
  • 조회수 12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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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사이언스 북>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엄청난 인내가 필요한 실험은 크게 두 범주로 나뉜다. 하나는 동시대 사람들이 그 연구자를 평생 찬미하는 실험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영원히 얼간이로 낙인찍는 실험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과학의 진정한 영웅들은 두 번째 범주에서 발견된다."

 

엉뚱한 상상에서 과학이 시작됩니다. 출처: makeuseof

위대한 연구의 시작은 종종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질문에서 시작되곤 합니다. 뉴욕 주 에섹스 군의 수의사 로버트 로페즈의 연구도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2007년 판 자료를 보면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최선을 다해 돕는 수의사"이자 "마라톤 선수이고 14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였다고 합니다. 기사에서 그는 인내하는 남자(man of endurance)로 칭해졌습니다. 이 '참을성 많은' 수의사가 독특한 실험을 했는데요.

 

아마도 시작은 '치료'였을겁니다. 귀진드기에 시달리는 고양이를 치료하려는...  출처: perthcathospital

로페즈는 귀진드기 때문에 외이염과 가려움증에 시달리는 고양이를 치료했습니다. 이때 고양이 주인과 그녀의 딸이 동시에 가려움증을 호소했죠. 

 

"귀진드기 오토덱테스 시노티스(Otodectes cynotis)가 사람에게도 옮는걸까?" 

 

궁금해진 그는 과학문헌을 열심히 찾아봤지만 어떤 곳에서도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문제였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연구한 사람이 로페즈 이전에 한 명도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뭔가 시작부터 범상치 않죠?

 

오늘의 주인공 귀진드기입니다. 출처: 상파울루대학

로페즈 실험 과정 '가관'

 

로페즈는 고양이 귀에서 귀진드기를 떼어내 우선 그 진드기가 자신이 실험하려는 종이 맞는지 확인했습니다. 그 다음은? 귀에서 꺼낸 자신의 귀지에 귀진드기를 섞어 자신의 귀에 넣었습니다.

 

로페즈는 6주가량 진드기를 귓속에서 키웠다고 합니다. 진드기는 낯선 사람의 귀에 당황했지만 곧 적응해 로페즈의 귓구멍을 탐험하기 시작했죠.

 

 

*다소 불쾌할 수 있는 동영상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진드기를 만나세요.

 

진드기는 귓속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긁고, 물고, 때로는 할퀴었습니다. 귓속의 작은 손님들이 내는 소음과 가려움, 통증 등이 더해져 로페즈는 괴상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드기들은 점점 대범해졌습니다. 고막 쪽으로 깊이 들어가고 더 큰 소음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한창 잠에 들 무렵인 자정에 분주하게 움직이기도 했죠.

 

진드기가 열심히 걸어다니고 있네요...잠을 잘 수 없어요... 출처: 포토리아

이런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수의사 로페즈는 "다행히 한쪽 귀에만 진드기를 넣었다"고 전하며 당시 진드기의 활동을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자정 무렵 활동이 가장 활발했고, 소음은 새벽 한 시에 가장 컸습니다. 새벽 두시 경이 되면 매우 가려워지다가 이후 두 시간쯤 지나면 가려움과 쓰라림이 최고조 달했다고 하네요. 3주가 지나자 귓구멍은 진드기가 만들어낸 찌꺼기 등으로 가득찼고, 그의 청력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귓속이 찌꺼기로 완전히 막히자 그제야 로페즈는 귀를 씻어냅니다. 2주가 지난 후 다행히 청력도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하네요.

 

독한 로페즈

 

하지만 여기서 끝났다면 이웃집과학자에 소개하지 않았을 겁니다. 과학 실험에서 중요한 건 '재현'입니다. 같은 조건에서 다시 실험했을 때 같은 결과를 얻었는가 입니다. 

 

그래서 실험을 총 몇 번 했냐고요? 한 번, 두 번, 세 번. 출처: pixabay

네, 예상하신대로 로페즈는 다시 귀진드기를 귓속에 넣었습니다. 처음엔 앞선 실험과 비슷하게 움직였지만 2주가 지나자 진드기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 실험보다 활동기간도 짧아졌습니다. 로페즈는 '면역이 생긴걸까?'라는 가설을 세우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실험했습니다. 증상이 약해졌고, 그는 진드기에 대한 면역이 생긴다는 추측을 검증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로버트 로페즈! 출처: 이그노벨상공식홈페이지(Improbable)

이 연구 결과는 1993년 미국 수의학회 저널에 '진드기와 인간에 대하여'라는 이름으로 실립니다. 이듬해인 1994년 이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아, 물론 그냥 노벨상은 아닙니다. 다시는 반복될 수 없고, 반복해선 안되는 연구에 수여하는 이른바 괴짜 노벨상, 이그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언뜻 보기엔 웃음이 나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호기심과 실험 정신이 없었다면 고양이 귀진드기가 인간에게 옮을 수 있다는 것과 감염 증상, 기간, 면역 등 이후 사례에 대해 언제 알게 됐을지 또 모르는 일입니다.

 

<매드 사이언스 북>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과학의 진정한 영웅은 종종 얼간이처럼 보이는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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