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와 시의 공통점?!(feat. 하이데거)
물리와 시의 공통점?!(feat. 하이데거)
  • 이웃집편집장
  • 승인 2017.09.11 10:36
  • 조회수 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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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말해지지 않은 것들

 

물리학과 시에 대하여

 

'물리학'이라는 단어와 '시'라는 단어를 나란히 놓아 '물리학과 시'라는 조합을 만들어 놓으면,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이 들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물리학은 이성의 우물로부터 퍼올린 것인 반면, 시는 감성의 우물로부터 퍼올린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리학과 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 것은 비단 우리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양자역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폴 디랙과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핵물리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나눈 대화에서는 저명한 물리학자 또한 시에 대해 이질감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랙은 오펜하이머가 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의 목표는 어려운 것을 간단하게 만들어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걸세. 시의 목표는 간단한 걸 이해 못하게 말하는 걸세. 두 가지는 양립할 수 없네(The aim of science is to make difficult things understandable in a simpler way; the aim of poetry is to state simple things in an incomprehensible way. The two are incompatible.)

 

도약의 순간

 

Paul Dirac, Robert Millikan and J. Robert Oppenheimer (1935) [1]

디랙의 말에 대해 오펜하이머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삶을 통해 디랙의 의견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했다. 오펜하이머는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아마추어 수준 이상의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다재다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받은 명예박사 학위기인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물리학자로서 뱃사람이고 철학자, 마술가(馬術家)이며 언어학자이고 요리인이며 좋은 와인과 시의 애호가" 그는 그의 내부에서 물리학과 철학과 시와 같은 인문학을 양립시킨 인물이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물리학과 시가 양립할 수 없다는 디랙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물리학과 시 양쪽에서 오펜하이머보다 한참 모자라겠지만, 어쨌든 나는 시를 좋아하는 물리학자다.

 

그렇다면, 무엇이 오펜하이머의 내면에서 물리학과 시라는 이질적인 (또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가지를 양립하게 했을까. 나는 물리학과 시는 모두 우리를 도약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펜하이머는 말한다.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터널을 통해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터널 반대편이 계속 위쪽으로 이어져 있는지, 아니면 출구가 있기는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시인이 시를 쓸 때, 자신이 쓴 시가 어디로 향하는지 시인 자신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물리학자는 연구를 통해 미래로 도약하며, 시인은 시작을 통해 '이곳 너머'로 도약한다. 물리학과 시 모두 우리를 다른 곳으로 도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과학의 목표는 어려운 것을 간단하게 만들어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걸세. 시의 목표는 간단한 걸 이해 못하게 말하는 걸세"라는 디랙의 말의 두 번째 문장도 시에 대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사실 시는 간단한 걸 이해 못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는 우리 삶에 대하여, 우리 세상에 대하여, 온갖 것들이 가진 진리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그리고 우리의 세상은 수수께끼 같은 것이다. 불가해한 삶과 세상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시는 미지의 영역에 있는 무언가를 번역하여 우리가 그것을 조금이라도 손에 움켜쥘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시의 목표가 간단한 걸 어렵게 말하는 것이라는 디랙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말하는 일

 

Martin Heidegger

모든 위대한 시인은 오직 단 하나의 유일한 시로부터 시를 짓는다. 그가 어느 정도로 이 유일한 시에 내맡겨져, 그 속에서 어느 정도로 시 짓는 말함을 담을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위대함이 가늠된다. 한 시인의 시는 말해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2].

 

시인이 시를 쓰는 일에 대해 하이데거는 한 번도 말해지지 않았던 시를 찾기 위해 시인은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는 하이데거의 말을 빌어 말한다. 물리학은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말하는 일이고, 발견되지 않은 일들을 발견하는 일이다. 모든 물리학자는 자연의 법칙, 불변하고 유일한 그것을 탐구한다. 디랙이나 오펜하이머처럼 위대한 물리학자들은 수많은 법칙들 중 가장 중요한 법칙들을 발견했기 때문에 위대한 물리학자로 기억된다. 다만, 그들조차도 자연을 인간의 언어로 완전히 번역하지 못했다. 그들은 무한한 자연의 신비 중 한 단면만을 살펴봤을 뿐이다. 자연은, 아마도, 영원히 미지의 무언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퍼올려도 퍼올려도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물리학자가 아무리 자연을 탐구해도 자연의 비밀은 결코 인간에게 완전히 드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리학과 시 모두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말하는 일이다. 방법이 다를 뿐이다. 물리학은 정교한 수학적 언어로 단 하나의 해석만 존재할 수 있는 말을 하지만, 시는 아름다운 시어로 여러 해석이 존재할 수 있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고여 있는 영원한 우물에서 물을 퍼올린다. 그들이 퍼올린 물은 우리의 삶을 어떤 형태로든 더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 것이다. 그것이 물리학자와 시인이 하는 일이다.

 

[1] Caltech Archives
[2] Jonathan Rée, In defence of Heidegger, Prospect Magazine
[3] 읽어볼 만한 글: 사이언스타임즈 기사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38) 오펜하이머>, 한국일보 기사 <폴 디랙>
[4] 김동규, <철학의 모비딕: 예술, 존재, 하이데거>에서 인용. 원문은 하이데거 전집 12권 <unterwegs zur sprache>

 

<외부 기고 콘텐츠는 이웃집과학자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물리학자 J(seokjaeyoo.nano@gmail.com)

빛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사랑하는 예술과 과학 이야기

원문 출처 : https://brunch.co.kr/@beyond-here/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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