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
  • 이웃집편집장
  • 승인 2017.09.08 16:17
  • 조회수 6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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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가 포스트모던 사회구성주의자들을 '엿 먹인' 사건

 

 

위 링크는 앨런 소칼의 소위 '지적 사기 사건'에 대해 작가 클리포드 골드스타인이 설명해주는 동영상이다. (참고: 위키백과)

 

90년대 초중반, 과학지식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사회구성주의가 철학계에서 유행하여 인지의 불완전함에 따르는 지식의 상대성을 앞세워 과학 지식 또한 사회적 구성에 따른 상대적 지식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어 현실의 객관적 실체를 인정하는 실재론자들 및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따르는 과학자들과의 논쟁이 점점 격해지고 있었다.

 

앨런 소칼 출처: http://missingthesolstice.files.wordpress.com

당시 포스트모던 사회구성주의 철학 저널인 <Social Text>에서 과감하게 피어 리뷰를 생략하고 이 주제를 다룬 "과학 전쟁" 특별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뉴욕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이론물리학자 앨런 소칼이 거기에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편들어주는 척 아무말 대잔치를 해놓은 가짜 논문을 제출해서 게재된 뒤, <Lingua Franca>라는 다른 저널에서 이를 폭로한다.

 

100조 짐바브웨 달러 출처: http://jpkoning.blogspot.kr

이 일로 <Social Text>지는 1996년에 이그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참고로 이그노벨상은 노벨상 패러디 목적으로 "흉내낼 수 없거나 흉내내서는 안되는" 업적에 수여하는 상이다. 작년 상금은 10조 짐바브웨 달러이며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약 4달러 정도 된다.

 

"LITERATURE: The editors of the journal Social Text, for eagerly publishing research that they could not understand, that the author said was meaningless, and which claimed that reality does not exist. (문학상: Social Text 저널의 편집인은,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저자 본인이 아무 의미 없다고 말한, (편집인) 본인이 이해도 못한 연구를 기꺼이 출판하였기에 이 상을 수여함)"

 

사실, 소칼은 그 '논문' 내용 내내 '이건 가짜로 만든 아무말 대잔치다'라는 떡밥을 계속해서 던졌다고 한다.

 

영상에 나온 내용도,

 

"알튀세르가 바르게 말했듯이, '라캉은 결국 프로이드의 사상에 대해 그것이 필요로 하는 과학적 개념을 주었다.' 더 최근에는, 라캉의 <위상기하학>은 영화평론 및 에이즈(AIDS)에 대한 정신분석에도 성공적으로 적용되었다. 수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라캉이 말하길 구체의 최초 호몰로지 그룹은 사소한 것이며, 반면 다른 표면의 호몰로지는 심오하다. 또한 이 호몰로지는 1-2회 이상의 절단 이후 표면의 연결성 또는 단절성과 결부되어 있다."

 

...라고 하면서 이상한 말을 중간중간 많이 섞어넣었다(뒤의 'initial homology'는 라캉이 정말로 말했던 헛소리를 그대로 인용한거지만.).

 

그밖에도,

 

"It is not clear to me that complex number theory, which is a new and still quite speculative branch of mathematical physics...."

 

즉, 복소수 이론을 "수리물리학에서 새롭고 사변적인 분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학자가 이런 '가짜 논문'으로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을 글자 그대로 '엿먹이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출처: Wikimedia Commons

철학 하는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서 정말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할 때가 많은 것이, 원래의 개념을 비틀어 사용했다는 명시도 없이 원저자를 인용해서 개념 설명을 하면서 원뜻을 전혀 엉뚱하게 왜곡해버리곤 한다. 그런 과정에서 나오는 주장들이 가령 "뉴튼의 프린키피아는 강간 매뉴얼이다(Sandra Harding)"라든가, 또는 물리법칙에서의 기준계와 기호학에서의 행위자를 혼동하고서 "상대성 이론은 사회학적 함의를 갖는 이론이다(Bruno Latour)"라면서 개념을 섞어버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과학에서 특정 개념을 따와서 기본적인 개념 자체를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적용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애초에 원래의 의미와 다른 방식으로 (비유적으로 또는 analogy로) 사용되었다고 명시하든지 아니면 적어도 그게 무슨 뜻인지는 제대로 알고서 사용해야 독자나 청자가 오개념을 갖거나 본의를 오해하는 일 없이 분명한 의미 전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식으로 특정 기본 개념에 가치판단적인 개념을 섞어버리고서 원래의 개념을 왜곡해 버리는 것은 결국 말장난에 불과한 것 아닐까. 예를 들어,

 

"E=mc^2는 필요한 다른 속도에 비해 빛의 속도에 특권적 지위를 주어 우선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성차별적 공식이다." - Luce Irigaray

 

...와 같은 '아무말 대잔치'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노벨문학상 받은 앙리 베르그송 같은 사람도 아인슈타인이랑 "시간"의 개념에 대해 논쟁하다가 틀린 개념 갖고 망신이나 당하는 것 아니겠는가. 철학적 개념을 물리학적 법칙에 빗대서 설명하려는데, 원래의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틀리게 적용하는 바람에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무릇 과학에서는 특정 개념이 정해지면 그것을 왜곡하지 않고서 그 개념을 기초로 논리와 사고를 진행하게 된다. 그런데 그 기본적인 용어의 개념 자체를 왜곡해서 비틀어 버리면 그건 제로존 이론이나 지적설계론처럼 틀린 개념을 전제로 썰을 풀어나가는 아무말 대잔치가 될 수밖에 없다. 극단적 상대주의를 표방하는 특정 과학철학자들은 그것조차 하나의 '정당한 과학적 가설'로 취급하긴 하지만, 그것이 널리 받아들여지기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관련 읽을거리:
앨런 소칼이 소위 '지적 사기 사건'에 대해 홈페이지에 올린 소회
자연과학자-인문사회학자 학문적 불신의 늪에서 격렬 '전쟁' (한겨레 2005년 9월 22일)
과학논쟁: 과학전쟁(Science War)은 무엇인가? 정주일, [다른과학(5호)]

 

<외부 기고 콘텐츠는 이웃집과학자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칼 베르니케(byuldbyul@gmail.com)

미국 중부에 있는 까칠한 신경과학자

원문 출처 : http://wernickearea.tistory.com/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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