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믿는 과학자, "함정 걸린 탐정 같아"
쉽게 믿는 과학자, "함정 걸린 탐정 같아"
  • 이웃집편집장
  • 승인 2017.10.2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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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병아리가 되지 못 한 달걀, 하드보일드 라이프

 

소설<말타의 매>와 과학자의 의심, 그리고 믿음에 대하여

 

살면서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믿음일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적 믿음의 가치에 대해 배우며 자랐지만, 성인이 되면서 가장 먼저 배우도록 강요받는 것은 "아무도 믿지 마라"는 격언이다. 믿음이 두터울수록, 그것이 배반당할 때 져야 하는 무게가 무겁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 최소한으로 마음을 주며 내가 받는 상처를 최소화하는 것이 현대인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방어와 합리가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논리인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사는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먼저 취하지 않으면 뺏기고, 먼저 날을 세우지 않으면 내가 당하는 '헬조선'에 살고 있지 않은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섞이고, 내가 잃은 만큼 누군가에게서 빼앗는 것이 생존의 덕목으로 여겨지는 사회, 경쟁만이 최고의 성과를 보장하는 만능열쇠로 통하는 사회, 그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다.

 

하드보일드 앤 빌리프 (Hard-boiled & Belief)

 

하드보일드 문학은 우리 삶의 비정한 부분을 극대화시킨 지점에서 태어난다. 폭력과 불법과 배신이 일상화된 도시의 뒷골목이 하드보일드 문학의 단골 장소이다. 하드보일드 문학이 다루는 뒷골목은 마치 도시의 악(惡)을 농축시킨 에센스이기도 한데, 아마 하드보일드 문학이 20세기 문학사에서 빛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하드보일드가 다른 어떤 순문학보다도 우리 삶의 부조리를 잘 조명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드보일드라는 문학사의 봉우리 중 가장 높은 봉우리에는 대실 해밋(Dashiell Hammett)이 위치하고 있다.

 

Frank Miller의 <Hard-boiled>

하드보일드(hard-boiled)라는 단어의 어원은 여러 가지로 추정되지만, 공신력 있는 자료에 의하면 '하드보일드'는 주도면밀한 당구 선수를 "완숙 달걀(hard-bolied egg)"이라고 부르던 1920년대 초반 뉴욕 속어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당구에서 시작된 '하드보일드'는 문학에서 냉정함과 비정함이라는 뜻이 더해지며 쓰이게 되었고, 브로드웨이에 의해 온 미국으로 '하드보일드'라는 단어가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1]. 물론 이 '하드보일드의 역사'에도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고 하지만, '하드보일드'에 대한 내 해석은 이렇다. 따뜻한 어미 닭의 배에서 나온 달걀은 매우 연하고 깨지기 쉬운 상태이다.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노란 내용물은 쉽게 흘러내리며, 더 이상 그 달걀에서 병아리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끓는 물이라는 시련에 단련된 달걀은, 결코 병아리가 될 수 없더라도 더 이상 쉽게 깨지지 않는다. 달걀 표면에 금이 가더라도 내용물은 흐르지 않는다. 스스로 단단하게 뭉쳐 있을 뿐이다. 노란 병아리가 되고, 스스로 자상한 어미 닭이 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나는 깨지지 않는다. 그것이 하드보일드다.

 

1941년 영화화된 <말타의 매>의 한 장면

대실 해밋이 그리고 있는 것은 그런 세계다. 주인공은 따뜻한 가정을 이룰 수 없고,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미인과 잠자리를 같이 할지언정 그녀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말타의 매>에서 탐정 샘 스페이드는 사랑을 직업 원칙에 앞에 둔다면 손해를 볼 것이라고 말한다. 하드보일드 한 남자에겐 사랑이 주는 따뜻함보다는 손해를 보아 상처받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말타의 매>의 탐정 샘 스페이드가 사랑과 우정과 같이 믿어야 할 것을 믿지 않게 된 사람이라면, <데인 가의 저주>에서 탐정 콘티넨털 OP는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을 믿는 사이비 종교의 신자들과 맞선다. 이처럼 하드보일드의 세계에선 믿어야 할 것과 믿지 않아야 할 것이 서로 뒤바뀌고 뒤섞이며 믿음의 가치를 땅 속 깊은 곳에 처박는다.

 

그러나 하드보일드 문학은 역설적이게도 비정한 현실의 반대편, 달처럼 손에 닿지 않는 곳에 고고히 떠 있는 믿음의 세계를 갈망한다[2]. 병아리가 되지 못 한 달걀은 병아리와 닭의 세계를 외면하는 척하지만, 그 빛의 세계를 곁눈질로 훔쳐본다. 대실 해밋의 인물 샘 스페이드나 콘티넨털 OP는 그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드보일드 문학을 읽는 우리는 그렇다. 우리는 믿음과 배신이 교차하는 세계에서 온전한 믿음의 세계를 그리기 때문이다.

 

신의 그림자를 쫓으며

 

<말타의 매>의 탐정 샘 스페이드가 범죄 뒤에 숨어 있는 음모와 계획을 캐는 탐정이라면, 과학자는 자연이 인간의 지각 너머에 숨겨 놓은 진리를 찾는 탐정일 것이다. 탐정이 범인의 뒤를 쫓는다면, 과학자는 신의 그림자를 쫓는다. 학부를 졸업한 학생이 대학원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배우도록 요구되는 태도는 '하드보일드함'이다. 지도교수의 권위를 인정하되 지도교수를 쉽게 믿지 않아야 하고, 발표된 논문을 존중하되 논문에서 주장하는 바를 쉽게 믿지 않아야 한다. 쉽게 믿는 과학자는 용의주도한 범인이 남긴 덫에 걸려 헤매는 탐정과 같은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과학자는 회의주의자다.

 

쿠르트 괴델 (Kurt Gödel)

물론 과학자라고 해서 모든 것을 합리적 사고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접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합리적 사고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 안에 있지만, 극히 소수의 문제들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 안에 있다. 이것은 유명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증명된 것이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하면 어떤 논리 체계가 모순되지 않다면 그 체계 안에는 참인데도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있으며, 그 논리 체계는 스스로 자신이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고 한다. 즉, 우리의 합리적 사고라는 것은 늘 어떤 정도의 한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물리학자로서 불완전성 정리에 의한 좌절을 겪은 적은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물리학의 대부분의 문제는 증명 가능하고, 풀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물리학자에게 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증명과 풀이가 불가능한 문제를 만난다는 것은 매우 큰 행운일 것이다. 그것 자체로 엄청난 발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양자역학에서 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풀 수 없는 문제를 발견한 것은 <네이처>라는 과학계 최고 권위 저널에 실릴 만한 업적이다[3,4]. 내가 물리학자로 살면서 '본질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어쨌든 나는 넓디넓은 자연 어딘가에 내가 답할 수 없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아야 할 것인가. 당장 내가 이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하더라도, 다음의 문제를 풀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그리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자신의 믿음을 끊임 없이 시험대 위에 올려 놓는다. 내가 내 이론을, 내 발견을 믿을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한다. 내 첫 번째 가설을 반박할 수 있는 반박 가설을 마련하고, 새로운 증거를 모아 가설과 반박 가설 둘 중의 하나를 부순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의심 끝에 믿는 일이다. 아무 것도 믿을 수 없을 때는, 역설적으로 아무 것도 믿지 않으며 우직하게 나아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담금질

 

믿어야 할 것은 믿지 않고, 믿지 않아야 할 것은 믿는 세상이다. '하드보일드'가 더 이상 문학이 아닌, 우리의 삶이 되어 버린 '하드보일드 라이프'에서 우리의 믿음은 있어야 할 곳에 없고, 없어야 할 곳에 있다. 믿음이 술 취한 사람처럼 이 자리와 저 자리를 갈팡질팡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모루 위에 올려놓는 일일 것이다. 대장간에서 벌겋게 달궈진 쇠를 두드려 담금질하는 것은 쇠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모루 위에서 쇠를 두드리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그 쇠는 더욱 단단해져 좋은 연장이 될 것이다. 믿음도 마찬가지다. 대뜸 믿을 것이 아니라, 내 믿음을 모루 위에서 담금질할수록 그 믿음은 견고해져 갈 것이다. 만약 내가 가진 믿음이 없어야 할 곳에 있던 거짓 믿음이라면 믿음의 담금질 아래에서 그 믿음은 무너져 사라질 것이고, 만약 내가 가진 믿음이 있어야 할 곳에 없었더라면, 담금질하려던 망치는 빈 모루 위에서 당황하여 어딘가에 버려져 있던 믿음을 바삐 찾아 모루 위를 채울 것이다.

 

[1] Peter Tamony, "The Origin of 'Hard-Boiled'", American Speech 12 (4) 258-261 (1937).
[2] 박현주, 비정함을 배신 않는 ‘하드보일드’ 세계, 한겨레 (2012).
[3] Davide Castelvecchi, "Paradox at the heart of mathematics makes physics problem unanswerable", Nature (2015).
[4] Cubitt, T. S., Perez-Garcia, D. & Wolf, M. M. "Undecidability of the spectral gap", Nature 528, 207–211 (2015).

 

<외부 기고 콘텐츠는 이웃집과학자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물리학자 J(seokjaeyoo.nano@gmail.com)

빛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사랑하는 예술과 과학 이야기

원문 출처 : https://brunch.co.kr/@beyond-here/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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