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잘라 편집하는 시대
유전자 잘라 편집하는 시대
  • 이승아
  • 승인 2017.10.31 12:59
  • 조회수 2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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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과학 기술이 있습니다. 유전자를 자르거나 붙일 수 있어 유전자 가위라고 불립니다. CRISPR로 표기하죠.

 

<사이언스>는 2013년 그 해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적 성과로, 2014년 <MIT 테크놀로지리뷰>가 크리스퍼를 이용한 유전자 교정을 10대 혁신 기술로 선정했습니다. <사이언스>는 2015년 또 다시 크리스퍼 기술을 중요한 10대 발견으로 꼽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언급했죠.

 

이렇게 중요한 발견이라면 노벨상을 탈법도 한데요.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생체시계에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유전자를 '편집'하는 이 기술은 여전히 가장 충격적이고, 중요한 연구 성과입니다. 기본 원리와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에 대해 우선 지난 콘텐츠를 통해 자세히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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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설계도 게놈 편집의 세계. 출처: 바다출판사

3세대라고 하면 1세대, 2세대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3세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는 거죠. 1세대, 2세대와는 뭐가 다른지 그리고 실제로 과학자들이 유전자 편집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건지 알아볼까요? 일본 <NHK> 방송에서 이를 꼼꼼하게 영상으로 기록하고 후에 이를 책으로 냈는데요. <생명의 설계도 게놈편집의 시대> 책을 따라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전자 재조합과 뭐가 다르지?

 

유전자를 잘라낸다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유전자 '재조합'입니다. 언뜻 들으면 유전자 재조합이라는 말은 유전자를 잘라내 특정 유전자를 파괴하거나(knockout) 삽입(knockin)한다는 게놈 편집과 차이가 없어보입니다. 

 

유전자 재조합은 '한 생물의 세포에 있는 유용한 유전자를 다른 생물의 세포에 주입해 새로운 성질로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당뇨병에 필요한 인슐린을 대장균이나 효모에서 얻는다거나 제초제에 강한 콩, 해충에 강한 옥수수 등이 그 재조합의 잘 알려진 예시입니다. 

 

유전자를 재조합해 해충에 강한 옥수수를 만들었습니다. 출처: planetsave

유전자 재조합은 '어디'에 새로운 유전자를 넣을지 정확한 위치를 지정할 수 없습니다. 유전자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는 건 당연합니다. 잘못된 위치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혹은 두 개나 세 개가 끼어들어갈 수도 있죠. 어쩌다 성공하길 바라며 끊임없이 실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에서 유전자 재조합으로 파란 장미를 개발했는데요. 이 성공에 이르기까지 14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수천, 수만 번의 시도 끝에 '우연'히 성공하는 순간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거죠. 

 

이에 비해 게놈 편집은 목표로 삼은 부분만 정확히 잘라내고 그 위치에 원하는 유전자를 투입할 수 있습니다. 유전자를 조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폭 줍니다.

 

1세대, 그리고 2세대

 

이런 유전자 재조합 기술은 1970년대 처음 나왔습니다. 이 기술 이후로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한 1세대, 2세대가 있었기에 지금의 3세대도 나올 수 있었습니다.

 

1세대 입니다. 출처: 바다출판사

게놈 편집 1세대 기술은 징크 핑거 뉴클레아제(Zinc Finger Nuclease, ZFN)입니다. 약 20년 전에 등장했습니다. 이 징크 핑거라는 단백질이 세포에 들어가 수많은 유전자 중 편집하려는 DNA 염기서열과 결합합니다. 결합하면 제한 효소가 DNA를 잘라내고, 유전자의 작동이 멈추게 되는 거죠. 하나의 징크 핑거 단백질은 3개의 염기를 인식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전 좀 더 좋아진 2세대입니다. 출처: 바다출판사

2세대는 2010년경에 등장한 탈렌(Transcription Activator-Like Effector Nuclease, TALEN)입니다. 1세대와 가장 큰 차이점은 조금 더 섬세해졌다는 겁니다. 1세대 징크핑거는 3개의 염기에 하나씩 결합했는데 탈렌의 TAL리피트는 하나의 염기에 하나씩 결합합니다. 익숙해질 때까진 좀 까다롭지만 징크 핑거에 비해 목표 유전자를 더 정확하게 절단할 수 있게 된 거죠.

 

3세대 '크리스퍼 캐스9'

 

3세대 기술 크리스퍼(CRISPR) 캐스9은 새로운 세대의 유전자 가위입니다.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제니퍼 다우드나 박사와 스웨덴의 우메오 대학에 소속된 에마뉘엘 샤르팡디에 박사 연구팀의 합동 연구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전까지 유전자 편집기술과 완전히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 캐스9. 출처: 바다출판사

크리스퍼 캐스9은 가이드 RNA, DNA를 절단하는 효소 Cas9으로 만들어져있습니다. 가이드 RNA는 약 20개 정도의 염기서열로 구성됐습니다. 이 RNA가 목표하는 지점의 DNA와 상보적으로 결합하면 효소가 이 부위를 절단합니다. DNA가 망가졌으니 우리 몸은 다시 복구하겠죠? 그럼 또 효소가 그 부위를 자릅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원래대로 복구하지 못하는 '복구 오류'가 발생합니다. 즉 원래 DNA 서열과 달라지는 거죠. 그럼 유전자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일을 유전자 녹아웃(knockout)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때 이 자리에 넣고 싶은 새로운 유전자를 크리스퍼 캐스9과 함께 넣어주면 복구하는 과정에서 그 자리에 이 유전자가 들어가게 됩니다. 

 

CRISPR작동원리, 출처: UC Berkely, Mint Research

3세대 유전자 가위는 1세대의 낮은 절단 성공률, 부정확한 DNA 서열 절단의 단점과 2세대의 높은 DNA변이 생성 확률이라는 단점을 모두 보완했습니다. 제작도 쉽고, 작업 과정도 간단해졌습니다. 책은 이런 간편함이 크리스퍼 캐스9의 폭발적인 공급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유전자 가위 '돈으로 산다?!'

 

이 특별한 가위가 가지고 싶으신가요? 원하신다면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NPO 법인이 운영하는 애드진(addgene)회사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회원 가입을 마치고 상품소개 페이지에서 크리스퍼 캐스9의 구조, 제작한 연구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하면 끝입니다. 가격은 1개당 65달러, 물론 연구를 위해 구매할 때의 가격입니다. 상업적 목적으로 샘플을 구매하려면 100배 이상의 가격을 주고 제작자나 연구기관에 정식으로 의뢰해야 합니다.

 

마이너스 80도의 냉장고라서 빨리 보여주고 닫을게요. 출처: 바다출판사

애드진이 보관하고 있는 크리스퍼 캐스9의 수는 100종이 넘는다고 합니다. 전 세계 과학자가 더 좋은 성능의 유전자 가위를 만들기 위해 경쟁하고, 그 결과물을 애드진에 기탁하는 거죠. 덕분에 유전자 가위가 필요한 과학자는 그 샘플을 싸게 구입할 수 있고, 이를 개발한 연구자는 자신의 결과물을 광고하고 유통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했습니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해 낸 건 케네스 판, 멀리나 판, 벤지 천이라는 3명의 중국계 미국인이라고 합니다. 마치 아마존처럼 최신 게놈 편집 도구를 모아놓고 주문을 받아 배송합니다. 하루 평균 200여 건의 주문이 들어오고, 38개국에 배송하고 있다고 합니다.

 

간단해요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그거 내려놓으세요. 출처: shutterstock

연구자는 어떻게 유전자를 '편집'할까요? 공상과학 영화 속 부글거리는 플라스크를 떠올리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과정은 간단합니다. 세포에 크리스퍼 캐스9을 뿌리고 세포 온도를 37도에 맞춘 뒤 2~3일 정도 인큐베이터(세포 배양장치)에 넣어두면 끝! 2분도 채 걸리지 않아 이 과정을 찍으려던 카메라맨이 당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나온 이후 3세대 가위가 나오기까지 수 십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DNA 염기 서열을 분석하고 효소를 붙여 자르는 거죠. 하지만 원리를 안다고 해도 세포를 '인간의 뜻'대로 조작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의 몸이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하게 설계됐는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크리스퍼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기술로 찬양하고, 배아 유전자 편집으로 맞춤형 인간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기도 합니다. 새로운 가위를 손에 얻게 됐으니 제대로 알고 '약'으로 쓰일 수 있도록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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