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 묘하게 안도'하는 이유?!
'실패에 묘하게 안도'하는 이유?!
  • 이웃집편집장
  • 승인 2017.11.24 18:43
  • 조회수 24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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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실패에 묘하게 안도하다

심리학에서의 자기 불구화(self-handicapping)에 대해

 

실패란 두려워할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각종 크고 작은 실패들에 대처하는 경이로운 심리적 전략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실패라는 놈더러 올 테면 와보라는 듯, 사람들은 실패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무마시킬 만반의 준비를 벌써부터 갖추고 있다. 일찍이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그토록 강조했던 것이 바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 아니었던가. 

 

사람들은 실패했다는 현실을 의식 저 너머에 억압(repression)시켜버리거나, 사실은 자신 탓이 아니었다며 그 책임을 다른 것에 투사(projection)하길 좋아한다. 혹은 자신이 원래 바라던 목표는 그것이 아니었다며, 만약 그 일이 성공했어도 별로 좋지 않았을 거라며 합리화(rationalization)하는 데 익숙하다. 여기서 한 가지 잊지 않아야 할 것은 프로이트는 방어기제를 ‘무의식’ 차원에서 작동하는 기제로 여겼다는 점이다. 그렇다. 우리는 굳이 의식하지 않고도 능숙하게 ‘실패’를 쳐내는데 익숙한 전문가들이다.

 

다시 한 번 말하자. 실패란 그다지 두려운 일이 아니다. 그 무수한 실패들에서 나름의 이유를 찾고 자신을 토닥이며 살아갈 길을 찾아내는 데 우리는 가히 천재적인 소질을 보유하고 있다. 대신 진정으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실패 그 자체보다는, 실패에 ‘직면’하는 일이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느니 다른 사정이 있었다느니 핑계부터 찾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실패’가 맞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실패라는 것이 잘 납득되지도 않는 터라 실패의 원인을 냉정히 따져보며 다음 기회를 차분히 기다리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상담자들이 항상 내담자들에게 주장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도 바로 ‘현실에의 직시’다. 억압하고 어설픈 이유들로 무마하기보다는 일단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패를 정면으로 받아 드는 것에는 ‘대가’가 있다. 실패 후의 교훈은 우리의 미래에 분명 유익하지만 그 과정에는 대단한 심적 고통이 동반된다. 일단 괴롭고 우울하다. 슬프다. 창피하기도 하고 분하다. 도대체 왜 나는 안 되는 건지 싶어서 좌절스럽다. 앞으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짓누른다. 시간이 약이라고,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면 어느덧 괜찮아진다지만 마음의 짐을 다루는 데 능숙하지 못하여 자칫 장기화된 우울과 비관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생을 포기하겠다는 극단적인 선택마저 뒤따를 수 있다. 

 

그래서 억압하고,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나름의 핑계 거리들을 찾아내는 방어기제들의 존재가 우리에게 마냥 불행한 것이 아니다. 고통스러운 실패를 다독여주는, 일종의 심리적 진통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방어기제들이다.

 

한편 심리학에서 알려진 '자기 불구화 전략(self-handicapping strategy)'은 실패로부터 유발되는 각종 마음의 고통들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힘겨울 수 있는지, 그래서 그것을 막고자 우리가 어디까지 대담해질 수 있는지를 방증하는 좋은 사례다. 

 

자기 불구화 전략이란 다른 말로 ‘핑계(구실) 만들기 전략’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예견 가능한 실패에 대해 의식적 ‧ 무의식적으로 사전에 다양한 핑계들을 만들어두는 행위다. 가령 내일 당장의 시험을 앞두고 시험공부를 하기 위한 장소를 선택한다고 하자. 비록 내일 시험에 대한 자신은 없지만, 공부를 하지 않을 수도 없어 하루 동안 어디에서 공부할지를 고민해보게 되었다. 당신은 집중하기 좋은 조용한 도서관과 다소 시끌벅적한 카페 가운데 어느 곳을 선택하게 될까?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면 이 상황에서 당연히 카페보다는 도서관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것이 단 1점이라도 시험 점수를 올리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더 나은 선택지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이 아닌 카페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시끌벅적한 카페에서 공부를 한 뒤에라야 시험을 보고 난 후,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에 대해 ‘공부했던 장소가 시끄러워 공부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는 핑계를 가져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원래 카페에서 공부하면 더 잘되는 경향이 있다든가, 적당한 소음이 오히려 학습 효율에 유리하다는 등의 기타 변수는 배제하자. 여기에서 핵심은 ‘구실’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가 일부러 실패를 초래하는 행동에 다가서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는 실패의 책임을 스스로가 아닌 다른 곳에 돌려, 자기가치감을 보호하려는 행위로, ‘자기 구실화 전략’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연애에 무척이나 서툴렀던 스무 살 무렵,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다면 용기를 내어 먼저 다가가라는 그 ‘간단한’ 것이 잘 안 됐다. 눈 딱 감고, 차라도 한 잔 하자고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련만 1시간 가까이 썼다 지웠다 하며 만들어 둔 그 한 줄을 전하는 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한 번은 미루고 미루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아침에 눈을 뜨며 오늘만은 반드시 상대에게 내 마음을 전하겠노라고 다짐을 한 날이 있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또 나는 미루고 미뤘다. 한 시간, 두 시간 계속해서 시간은 흘러가고 나의 마음은 무척이나 초조했다. ‘딱 30분만 더 있다가 보낼까?’ 하며 계속해서 결단을 미루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시간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면서도 일부러 나는 스스로를 자꾸만 바쁘게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평소에 미루고 있던 예습 ‧ 복습에 열을 올리거나 과제를 하는 데 집중했다. 그간 연락하지 않던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을 걸어 오랜 시간 동안 안부를 주고받기도 하고 집에 와서는 평소 안 하던 대청소를 하겠다고 열심이었다. 

 

그렇게 애꿎은 다른 일들만 하다가, 나는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바빠서’, ‘오늘따라 유독 일이 많아서’ 연락을 할 수 없었다고, 핑계거리에 숨어들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나는 순간의 자존심을 지켰고 실패로부터 나를 보호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로 혹시 모를 가능성을 버렸다. 여기에 대해 나는 한동안 탄식했고, 자책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무언가를 얻고, 잃었던 선택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더 이상 스스로를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선택에 따라 무언가를 얻고, 또 잃었으므로. 즉, 선택에 대한 책임을 졌으므로. 다만 그 이후 나는 '다음에는 다른 선택을 해보자'는 다짐을 남겨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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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합리화나 핑계는 비겁한가? 아니면 실패의 고통으로부터 나를 어루만져주는 자기 치유의 과정인가? 결국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는 선택일 뿐이다. 딱히 옳고 그름을 따질 것은 없다. 실패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도, 마음의 고통을 떠안는 한이 있더라도 한 걸음 내딛어 보는 것도 결국 무언가를 얻고, 무언가를 잃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기를 바라는가에 따라 매 순간의 선택이 달라질 뿐이다. 그러니 어설픈 비난도, 한쪽에의 강요도 삼갈 일이다. 비합리적인 것은 없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그 사실만 기억하면 될 일이다.

 

허용회 심리학 강사(yonghheo@gmail.com)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대학원 졸업

원문 출처 : https://brunch.co.kr/@yonghheo/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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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섭 2019-09-22 15: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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