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유전자 도핑' 시대, "이미 왔다"
올림픽 '유전자 도핑' 시대, "이미 왔다"
  • 이승아
  • 승인 2018.01.18 11:14
  • 조회수 7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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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동계 올림픽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는 사실 말고도 여타 다른 올림픽과 비교했을 때 조금 더 특별(?)합니다. 지난해 12월 IOC 집행위원회가 세계반도핑기구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러시아의 올림픽 참가 자격을 박탈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선수들의 약물 도핑입니다. 

 

도핑이란?

 

체육학대사전에 따르면 도핑은 신체 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신경이나 근육에 작용하는 자극제나 진정제를 사용하는 걸 의미합니다.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가 어떤 물질을 섭취해 생리적 조건을 인공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 성적을 향상시키는 걸 말합니다. 당연히 부정 행위이고, 금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공적으로 뭔가를 이용한 게 아니라 '유전자'를 아예 다르게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유전자 편집이 가능해진 지금, 경기에 유리한 유전자를 가진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타고난 유전자? 돌연변이?

 

남다른 유전자. 출처:national geographic

경기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 '변이'가 존재한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실제로 이런 일종의 '돌연변이'를 가졌던 선수가 있습니다. 덕분에 올림픽 크로스 컨트리 경기에서 메달을 무려 일곱 차례나 땄다고 합니다. 핀란드의 크로스컨트리 선수 에로 멘티란타(Eero Mäntyranta)인데요. 'EPOR' 유전자 변이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크로스 컨트리는 스키의 마라톤이라 불리는 종목입니다. 주변의 지형을 이용해 평지, 오르막길, 내리막길 등으로 구성된 코스를 완주해야 합니다. 이 선수가 가진 유전자 돌연변이는 그가 일반 사람에 비해 적혈구를 많이 만들게 했습니다. 적혈구는 산소를 운반하는 세포인데요. 이게 늘어났으니 남들보다 산소 운반 능력이 당연히 높았을 겁니다. 

 

이 유전자 덕분에 당연히 남들보다 훨씬 기록을 세우기 수월했습니다. 3번의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 등 총 7개의 메달을 땄습니다. 세계 챔피언십에서 금메달 2개를 포함한 다섯 개의 메달을 획득합니다. 

 

타고난 근육! 출처:Joint Base Langley-Eustis

슈퍼 아기와 이중 근육

 

2000년 베를린의 샤리테 병원 신생아실에서 조금 무겁고, 몸부림이 심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 신생아의 근육은 다른 아기들과 조금 달랐는데요. 이두박근과 장딴지가 겉보기에도 '불룩'했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앱스타인의 책 <스포츠 유전자>에 따르면 이 아기를 초음파 검사한 결과, 근육 양이 역대 최고 수준을 넘어서고 지방은 역대 최저 수준보다 더 적었습니다. 다른 면은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네 살이 되자 아이는 수평으로 팔을 쭉 펴고 3kg의 덤벨을 수월하게 들어올렸습니다. 팔 다리의 근육이 또래 아이들보다 두 배에 달하는 이중 근육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괴력은 그 집안의 내력이었다고 하는데요. 외삼촌, 외할아버지, 엄마까지 모두 힘이 셌습니다. 

 

주인공 슈퍼아기입니다. 출처:newyorker

이 아이를 담당했던 샤리테 병원의 소아 신경과 의사 마르쿠스 슈엘케는 존스 홉킨스의 유전학자 이세진에게 연락했습니다. 이세진 박사는 미 하버드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하고 존스 홉킨스 의대 교수로 재직 중인데요. 당시 이세진은 근육 위축증처럼 근육이 소모되는 질병의 치료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연구 중 미오스타틴이라는 단백질을 찾았습니다. 이 단백질은 근육의 성장을 '멈추게'하는 신호를 보냅니다. 이 단백질을 못만든다면 근육의 성장이 멈추지 않겠죠.

 

슈엘케와 이세진 박사는 과학자들과 함께 이 아이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언론은 '슈퍼아기'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아이의 혈액엔 미오스타틴 단백질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슈퍼아기의 엄마는 미오스타틴 돌연변이와 정상 미오스타틴 유전자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어요. 보통 사람보다 근육이 발달했을 가능성이 높은데요. 그녀의 직업은 육상선수였다고 합니다. 근육을 제외하면 아이와 엄마 건강에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근육이 발달한 생쥐(좌). 출처 :keith weller

이후 미오스타틴의 활동을 억제하는 분자를 개발했는데요. 생쥐에게 이 분자를 두 번 주사했더니 2번 만에 근육량이 60% 증가했다고 합니다. 2012년엔 폐경기 여성에게 실험했는데 근육량이 크게 증가했다고 전해집니다.

 

유전자 도핑 시대 "이미 왔다"

 

근육 발달과 관련된 유전자를 찾고 증가시키는 방법을 찾아낸 이 연구들은 스포츠 계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스포츠 유전자> 책에 따르면 이세진 박사가 처음 미오스타틴을 발견하고, 이 돌연변이를 가진 생쥐를 발견했을 때 수 많은 운동선수들이 편지를 보내왔다고 합니다. 근육을 만드는 성장인자를 생산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펜실베니아 대학교 리 스위니 교수도 온갖 편지와 전화에 시달렸다고 하죠. 고등학교 레슬링 코치, 축구 코치가 자신의 팀원이 실험 대상자가 되겠다고 기꺼이 자원했지만 연구진은 거절했다고 합니다.

 

근육이 필요해! 출처:maxpixel

이렇게 스포츠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유전자가 존재합니다. 멘티란타나 슈퍼아기처럼 타고날 수도 있지만 이런 유전자가 정말 있다면 이를 이용한 도핑도 상상해볼 법 합니다. 

 

책을 쓴 데이비드 앱스타인은 유전자 도핑 시대는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밝혔습니다. 2006년 독일 육상코치 토마스 슈프링스타인이 미성년자에게 경기력 향상 약물을 제공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는데요. 코치가 적혈구 생산을 촉진하는 '전이 유전자'를 전달하는데 쓰이는 빈혈약 레폭시젠을 구하려 했다는 증거가 나왔습니다. 북경 올림픽 전에 유전자 요법을 제공한다고 광고하는 중국 회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유전자 치료란 병을 치료하기 위해 환자 특정 세포의 유전 정보를 변형시키는 기술을 말합니다. 이 때 병의 치료가 아니라 기능 강화를 위해 유전 정보를 변형시키면 유전자 도핑이 되는 거죠. 

 

지금까지 도핑은 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해당 단백질을 주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즉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신호 단백질을 몸에 넣었죠. 유전자 도핑은 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조작해 '몸'이 자체적으로 신호 단백질을 많이 만들어내게 하는 겁니다. 이런 유전자 도핑은 외부 물질 투입 없이 우리 몸이 자체적으로 그런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발견이 매우 어렵다는 게 무서운 점 중 하나입니다. 

 

세계반도핑기구에서 금지하는 '방법'에 유전자 도핑이 들어가 있군요. 출처:세계반도핑기구공식홈페이지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2005년 스웨덴에서 유전자 도핑에 관한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유전자 도핑(gene doping)의 방법으로 유전체의 기본 단위가 되는 핵산(nucleic acid) 또는 핵산 유사체의 중합체, 유전자 편집제제, 정상세포 혹은 변이를 일으킨 세포 등 세 가지를 금하고 있습니다.

 

당시 연구를 맡았던 이세진 박사는 스포츠 기자들에게 자신의 연구를 잘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기술 자체도 아직 나와있지 않은데 운동선수들이 기술을 남용하려는 의향이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위축증 환자를 위한 것이니 스테로이드가 스포츠계에 추문을 일으켰던 식으로 미오스타틴 치료가 오점을 남기지 않길 바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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