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2등'? 업적 비해 덜 유명한 과학자들
'만년 2등'? 업적 비해 덜 유명한 과학자들
  • 강지희
  • 승인 2018.02.08 17:55
  • 조회수 7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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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출처 : KBS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수년 전 얘기긴 한데요. 개그맨 박성광은 <개그콘서트> 코너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에서 이런 유행어를 남겼습니다. 어떤 곳이든 1등만 기억하고 2등 이하는 잊거나 취급도 안 하는 세상을 풍자하는 말이죠.

 

과학계도 예외는 아닌 걸까요? 많은 과학자들이 자신만의 업적을 '먼저' 이룸으로써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남깁니다. 그런데 어떤 과학자들은 이름을 날린 과학자들로 인해 2등이 되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게 누굴까요? 제가 한 번 조명해보겠습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

 

左라이프니츠, 右뉴턴. 출처: The Great Courses Daily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포함한 물리학과 수학 이론을 발견한 과학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신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뉴턴과 엄청난 이론 다툼을 벌였던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라이프니츠였습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여러 이론으로 경쟁 관계였지만 대표적으로 미적분학 이론에서 크게 다투기도 했다는군요.

 

책 <수학자를 알면 공식이 보인다>를 보면 미적분은 근대 수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론인데요. 라이프니츠는 미적분을 발견해 물리 법칙에 적용시킨 수학자입니다. 하지만 뉴턴도 이 법칙을 발견하면서 누가 먼저 발견했느냐, 누가 이 이론을 표절했느냐에 대해 분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종호의 책 <천재를 이긴 천재들>를 보면 뉴턴은 오직 자신만이 미적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미적분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1684년 라이프니츠가 자신의 미적분법을 발표한 이후에도 큰 마찰은 없었죠.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대립을 그린 그림. 출처 : Fickr

하지만 라이프니츠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던 스위스의 수학자 드 뒤리에가 1699년 라이프니츠가 뉴턴의 미적분을 도용했다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 마찰을 촉발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역으로 뉴턴이야말로 자신의 연구 업적을 도용했다고 주장했는데요. 뉴턴을 포함한 수학자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토마스 데 파도바의 책 <라이프니츠, 뉴턴, 그리고 시간의 발명>에 따르면 이들의 분쟁 사에서 제일 문제가 된 건 뉴턴도 라이프니츠도 아닌 뉴턴을 신봉하던 뉴턴주의자들이었습니다. 뉴턴주의자들은 라이프니츠가 뉴턴의 이론을 베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딜 가나 극성 팬이 문제. 출처 : MBC News

특히 극단적인 뉴턴 신봉자였던 니콜라 피티오 드 뒬리에는 라이프니츠가 뉴턴의 이론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것이라며 라이프니츠를 비난했다고 합니다. 피티오는 뉴턴과 사이가 안 좋아진 이후에도 라이프니츠를 비난했죠. 

 

다른 학자들도 라이프니츠의 이론이 뉴턴 이론의 모조품에 불과하다고 비난했습니다. 결국 뉴턴 진영과 라이프니츠 진영의 싸움은 더욱 거세지고 말았습니다.

 

뉴턴이 왕립학회의 회장이 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수많은 야심가들이 뉴턴에게 몰려들었습니다. 1713년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표절했다는 비난이 담긴 보고서에 왕립학회의 직인이 찍히고 만 것입니다.

 

이 분쟁은 라이프니츠가 사망하면서 끝이 났습니다. 조엘 레비의 책 <과학자들의 대결>에 따르면 뉴턴은 라이프니츠 사후에도 "라이프니츠의 처신에 대한 자신의 응수 때문에 그의 심장이 망가졌다"고 말하며 악감정을 버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수치 미분. 출처 : Wikipedia

하지만 <라이프니츠, 뉴턴, 그리고 시간의 발명>에 따르면 라이프니츠의 비판은 뉴턴 물리학에 묻히고 말았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은 모두 뉴턴 물리학의 성공에 기여했다는 분석인데요. James Stewart의 책 <미분적분학Ⅰ>에 따르면 라이프니츠가 발표한 미적분학 이론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도함수를 찾는 표기법과 규칙을 확립했다고 합니다. 적분 기호 인테그랄(∫)도 라이프니츠가 도입했다고 하죠. 라이프니츠는 우리에게 준 영향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에디슨과 테슬라

 

左에디슨, 右테슬라. 출처 : medium.com

토마스 에디슨은 직류 전기 기술을 도입해 일상 생활에 전기를 쓸 수 있도록 한 과학자이자 사업가입니다. 하지만 전기 때문에 에디슨은 한 과학자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바로 ‘니콜라 테슬라’였습니다.

 

<과학자들의 대결>에 따르면 니콜라 테슬라는 교류 전기를 발명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니콜라 테슬라는 에디슨의 조수로 고용되어 연구를 하게 되었죠. 하지만 에디슨은 테슬라의 아이디어를 인정해주지 않고 오직 직류 전기에만 집중을 한 탓에 테슬라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테슬라와 에디슨의 관계는 에디슨이 구두 계약을 어기면서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구두 계약의 내용은 테슬라가 터빈의 설계를 개선하면 미화 5만 달러를 주겠다는 내용이었는데요. 과제를 마치고 온 테슬라에게 돌아온 것은 에디슨의 농담 한 마디뿐이었다고 합니다. “테슬라, 자네는 미국식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나 보네.”

 

직류전기(DC)와 교류전기(AC)의 차이. 출처 : elprocus.com

테슬라는 에디슨의 곁을 떠난 후, 스스로 교류 전기를 발명하고 이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직류 전기는 높은 전압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지만, 교류 전기는 훨씬 낮은 전압으로 변환할 수 있어 안전했죠. 게다가 교류 전기는 직류 전기보다 더 먼 거리로 전송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전기의자. 출처 : massappeal.com

에디슨은 이를 보고 해럴드 브라운을 고용했습니다. 에디슨과 브라운은 직류 전기가 교류 전기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개 한 마리를 직류 전기로 고문한 뒤에 교류 전기로 죽여서 교류 전기가 직류 전기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브라운은 교류 전기를 이용해 사형에 사용하는 전기의자를 고안하기까지 했죠.

 

하지만 에디슨과 브라운의 작전은 모두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류 시스템이 더 우수하고 저렴했기 때문에 결국 에디슨의 사업인 제너럴 일렉트릭은 결국 교류 전기의 특허권에 대한 상호 실시 계약을 맺음으로써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니콜라 테슬라의 특허 중 하나인 테슬라 코일. 출처 : Tesla Memorial Society

황진명과 김유항의 책 <과학과 인문학의 탱고>에 따르면 테슬라는 약 700건의 특허를 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테슬라의 발명은 모두 실패로 끝나 테슬라는 빈털터리가 됐고, 빚에 시달리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테슬라는 후대에까지 이런 기이한 아이디어들 때문에 업적이 잘 알려지지 않은 채 '괴짜',  ‘미친 과학자’라고만 불렸다고 합니다.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

 

왓슨과 크릭. 출처: physicsworld.com

DNA를 발견한 과학자라고 하면 왓슨과 크릭이 생각날 것입니다. 하지만 이 DNA를 발견한 연구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로잘린드 프랭클린’이었습니다.

 

이은희의 책 <하리하라의 바이오 사이언스>를 참고하면 프랭클린은 DNA의 다크 레이디(Dark Lady)라 불릴 정도로 생물학에 재능을 보인 여성 과학자였다고 합니다. 특히 DNA의 X선 회절 사진을 찍는데 매우 천부적인 실력을 가졌다고 하는군요.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그녀가 찍은 DNA X선 사진. 출처: University of Missouri - Kansas City

프랭클린은 여러 장의 DNA의 X선 회절 사진을 찍었는데요. 사진 중에서는 DNA의 구조에 대한 결정적인 힌트를 제공하는 사진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바로 영국의 킹스칼리지에서 같이 일하던 모리스 윌킨스와의 갈등이었습니다.

 

윌킨스는 프랭클린을 자신의 보조 연구원으로 생각했던 반면 프랭클린은 스스로를 '동료 연구자'라고 주장했습니다. 둘의 갈등과 적대감은 점점 고조됐습니다. 캐서린 쿨렌의 책 <천재들의 과학 노트>를 보면 그들은 같은 연구를 하면서도 정보 공유를 중단하기에 이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결국 기분이 크게 나빠진 윌킨스는 프랭클린의 허락도 없이 프랭클린이 찍은 DNA의 X선 회절 사진을 왓슨과 크릭에게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왓슨과 크린은 프랭클린의 사진에서 DNA가 이중 나선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DNA의 구조를 발견한 과학자는 왓슨과 크릭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캐서린 쿨렌의 책 <천재들의 과학 노트>에 따르면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아무런 업적을 인정받지 못한 채 요절하고 말았죠.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20세기에 만연한 성차별로 업적을 알리지 못한 비운의 여성 과학자 중 하나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외부 필진 콘텐츠는 이웃집과학자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웃집 필진 강지희(jihee0478@naver.com)

경희대학교 원예생명공학과·생물학과 4학년

이웃집대학생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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