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투명하고 손 위에 둥둥 떠있는 것 같은 물질입니다.
이 물질은 CG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마치 SF 영화에 나올 법한 생김새를 띠는데요. 이 물질은 '에어로겔'입니다. 대체 뭘까요?
에어로겔이 뭔가요?
간단하게 얘기하면 '겔에 액체 대신 기체가 채워진 것'을 에어로겔이라고 합니다. 천체물리학자 찰스 리우의 저서 <누구나 천문학>을 보면 에어로겔 혹은 '얼음 연기(frozen smoke)'라고 부르는 이 물질은 고체이며 반투명한 거품 물질입니다. 99.8%까지 미세한 빈 공간, 즉 공기로 돼 있습니다. 에어로겔의 나머지 0.2%를 구성하는 물질로는 실리콘, 탄소 혹은 산화알루미늄과 같은 여러 물질을 사용할 수 있어요. 에어로겔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고체 물질 중 가장 가볍지만 열 차단 속성이 뛰어나고 구조 강도를 지닙니다.
오늘은 실리카(SiO2)로 만든 '실리카 에어로겔'을 중심으로 알려드릴게요. 실리카 에어로겔 또한 사이사이의 공기구멍 덕분에 아주 가볍습니다. 밀도를 0.003g/cm^3까지 줄일수 있다고 하니 어마어마하죠? 참고로 가벼운 포장용 스티로폼의 밀도는 0.015g/cm^3이니 스티로폼의 1/5 수준입니다. 들어도 들고있는 느낌이 나지 않을 것 같아요. NASA 홈페이지에 따르면 '좋은 스티로폼을 만지는 느낌'이라고 하네요.
이런 구조 덕분에 에어로겔은 여러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열성이 우수하며(0.005W/mK), 전기가 통하지 않는 좋은 절연체입니다.(k=1.0~2.0) 또한 미세한 구멍이 많고 표면적이 넓죠. 단열성이 얼마나 좋은지 에어로겔에 초콜릿을 놓고 아래서 토치로 가열해도 멀쩡합니다. 심지어 위를 만질수도 있어요.
에어로겔, 어떻게 만드나요?
에어로겔이 형성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journal of materials processing technology>에 실린 논문 'Silica aerogel; synthesis, properties and characterization'을 참고해 알려드릴게요.
에어로겔의 99.8%는 구멍, 즉 공기라고 말씀드렸죠? 틀을 이루는 나머지 0.2%는 SiO2가 엉기듯 붙어있는 겁니다. 참고로 유리나 실리카겔을 구성하는 것도 SiO2에요.
이 그림은 SiO2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구조를 나타냅니다. SiO2로 만들 수 있는 형태들도 표시돼 있죠. 걸쭉한 용액을 젖은 겔(wet gel)로 만들었다가 젖은 겔의 사이를 채우고 있는 액체를 날려 에어로겔(aerogel)을 만드는 과정을 따라가볼까요?
1. SiO2 겔 만들기
TMOS나 TEOS와 메탄올, 물, 암모니아를 정량으로 넣고 저어요. TMOS의 구조는 아래와 같아요. 실리카 주변을 O가 감싸고 있죠? TEOS는 네 가지에 CH3가 하나씩 더 붙어있는 형태입니다.
충분히 저으면 TMOS와 물이 반응해서 SiO2를 형성해요. 따라서 겔 상태의 실리카가 만들어지는데요. 용액을 틀에 붓고 '겔' 형성을 기다립니다. 그 다음으로 깨끗한 메탄올을 갈아주며 며칠이 지나면 불순물 없는 겔이 형성돼요.
위 사진은 겔 형성 과정을 전자현미경으로 찍은 사진인데, 동글동글하게 엉겨붙는 게 보이시죠? 이 사이는 액체로 채워져 있습니다. TMOS의 경우에는 메탄올을 사용해요.
2. 겔을 에어로겔로
이제 '겔'을 만들었습니다. 이 다음으로 겔을 더 강하게 만드는 '에이징(aging)'이라는 작업을 합니다. 깨끗한 메탄올을 붓고 며칠 기다리는 거죠. 한 번씩 메탄올을 갈아주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불순물이 제거돼요.
불순물이 제거된 겔은 '초임계건조(Super critical dry)'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액체 상태의 이산화탄소를 넣고 고온, 고압 조건에서 말리는 건데요.
주변부 둥근 홈들 보이시나요? 기계를 닫은 후에는 이 구멍들을 모두 나사로 조이는데요. 고온, 고압 조건을 견뎌내기 위한 것입니다. 고온 고압을 걸어주면 이산화탄소는 '초임계유체(supercritical fluid)' 상태가 되는데요. 이 덕분에 겔이 수축하지 않을 수 있죠. 젤리가 말라붙으면 쪼그라들고 크기가 작아지는데요. 이산화탄소와 고온·고압 조건이 쪼그라드는 걸 막는 거에요.
이제 실리카 에어로겔이 다 만들어졌습니다!
에어로겔은 겔과 다르다
겔은 묵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묵은 말랑말랑하고 잘 휘어지죠? 에어로겔은 그렇지 않습니다. 액체와 고체 사이인 겔과는 달리 에어로겔은 고체입니다. 따라서 충격을 주면 깨집니다. 아래 영상을 보시면 마치 돌을 쪼개듯 쪼개지는 모습을 보실 수 있어요.
에어로겔은 어디에 쓰나?
에어로겔은 가벼울 뿐아니라 방열, 흡습성 등이 겔보다 훨씬 좋죠. 따라서 에어로겔은 방수, 방화 소재로 각광받고 있는데요.
이렇게 잘게 쪼갠 에어로겔을 손에 비비면 어떻게 될까요.
물이 묻지 않고 흘러내리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방수, 방화 소재로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나중엔 에어로겔 페인트를 집에 바르는 날이 올지 궁금하네요.
위 영상에 나온 에어로겔은 그래핀 에어로겔이 아닙니다
최근 한 해외 매체에서 만든 영상이 SNS에 공유되며 '이 물질이 그래핀 에어로겔'이라는 제목과 설명으로 잘못된 정보를 전했는데요. 사실이 아닙니다. 그래핀 에어로겔은 검은색이거든요.
그래핀 에어로겔 또한 가벼운 밀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높은 전기전도성으로 각광받고 있는데요. 이웃님들은 헷갈리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