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어' 어쩌다 눈 소실됐나?
'동굴어' 어쩌다 눈 소실됐나?
  • 한다희
  • 승인 2018.06.12 14:50
  • 조회수 3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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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테트라'라는 민물고기가 있습니다. 멕시코의 강과 개울에서 물벌레를 잡아먹으며 무리 지어 사는 물고기인데요. 몸길이는 최대 12cm 정도로 작은 편이고 엷은 갈색을 띱니다.

 

이 물고기들은 200~300만 년 전 동굴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빛이 들지 않는 캄캄한 동굴 속에서 멕시코 테트라는 표층수에서 살 때와는 다른 양상으로 진화합니다.

 

동굴에 사는 멕시코 테트라(cavefish, Astyanax mexicanus)는 '장님 물고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눈이 없기 때문인데요. 여기서 장님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어서 저희는 '동굴어'라는 표현을 사용하겠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눈 쓸 일은 없을 테니 눈을 좀 떼셔야겠습니다' 억지 부렸을 물고기들도 없었을 텐데 어찌된 영문일까요.

 

범인..? 출처:
범인..? 출처: '드래곤볼' 갈무리

동굴어는 표층수에 사는 멕시코 테트라와 여러 측면에서 현저히 다릅니다. 동굴어는 눈도 없고 몸 색깔도 속이 비칠 정도로 투명하고 옅은 분홍빛을 띱니다. 무리 지어 살지도 않습니다. 잠을 자지도 않고 과잉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어쩐지 불안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둘은 유사한 게놈을 공유합니다. 서로 교배도 가능하죠. 

 

그래서 기존 연구들은 눈이 소실된 과정을 관련 유전자에 생긴 돌연변이로 설명하고자 노력했는데요. 쉽지 않았습니다. 최근 미국국립보건원은 메릴랜드 대학 윌리엄 제프리 교수, 리 마 박사후연구원과 함께 이를 후생유전학적인 측면에서 규명했습니다.

 

표층수에 사는 멕시코 테트라와 동굴어 출처: The cavefish genome reveals candidate genes for eye loss
표층수에 사는 멕시코 테트라와 동굴어. 출처: The cavefish genome reveals candidate genes for eye loss

후성 조절(epigenetic regulation)이란 유전자의 발현이 일시적 혹은 가역적으로 스위치처럼 꺼지거나 켜지는 과정을 말합니다. DNA 염기서열에 생긴 영구적인 변화인 돌연변이와는 다른 메커니즘인데요. 생물체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세포들이 모두 같은 유전자 정보를 갖고 있지만, 각자 고유한 기능과 형태를 갖는 이유를 설명하는 메커니즘이기도 합니다.

 

연구팀에 따르면 동굴어는 DNMT3B라고 불리는 DNA 메틸 전이효소 수치가 높습니다. 그리고 눈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에서 DNA 메틸화가 많이 발견됐는데요. DNA 메틸화는 후성유전학적 변화 기작 중 하나로, 유전자의 프로모터에 일어나는 메틸화는 해당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NIH
후성유전학의 기본 원리. 출처: NIH

DNA 메틸 전이효소(DNA methyltransferase, DNMT)는 DNA 메틸화 기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메틸화된 DNA는 메틸기 결합단백질(methyl-binding protein, MBD)의 결합을 유도합니다. MBD는 히스톤 탈아세틸효소와 히스톤 메틸 전이효소를 유도하는데요. 히스톤의 변형은 염색질의 변형으로 이어져, 결국 해당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된 겁니다.

 

한편, DNMT3B 유전자가 과발현한 제브라 피쉬는 눈 관련 유전자의 활성이 높았고, 결과적으로 큰 눈을 갖게 됐습니다. 다시 말해 동굴어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증가한 DNMT3B가 눈 관련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출처: UCSF school of medicine
DNA가 메틸화되면 해당 유전자의 발현을 막습니다. 출처: UCSF school of medicine

제프리 교수는 "이번 연구는 유전자 하나가 수많은 하류 유전자(downstream gene)을 동시에 억제함으로써 동굴어에서 어떻게 실명을 일으켰는지 보여준다"며, "억제된 유전자 대부분 사람도 공유하고 있는 유전자로, 안질환을 이해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Nature ecology & evolution> 5월 28일 논문으로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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