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수학 배워서 어디에 쓰냐는 푸념은 어렵잖게 들을 수 있습니다. '쓸데 없어 보이는 수학 문제'로 몇 가지 꼽을 수 있는데요. 찢어진 달력, 기차 속도 구하기,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굳이 내려서 걷기 등등입니다.
그 중 가장 쓸모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소금물의 농도' 관련한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금물을 묽히고, 소금을 더 넣고, 혹은 다른 소금물과 섞기도 하죠. 일반 기업 적성검사 문제로도 종종 나옵니다. 그냥 처음부터 제대로 된 소금물을 만들 것이지 왜 자꾸 이리 녹이고 저리 섞고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걸까요?
사실 쓸 데가 있다
소금물 농도 문제의 '원리'는 쓰임새가 많습니다. 화학이나 생물학 등 실험을 하게 된다면 특정 농도의 용액을 자주 만들게 됩니다. 마치 밥을 먹을 때 수저를 쓰듯, 반응을 시킬 때 뿐 아니라 균을 키울 때, 기기 안에 넣을 때, 혹은 다른 용액의 농도를 확인할 때도 특정 농도를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왜 사서고생을 하는지 궁금해집니다. 소금물 농도 문제대로라면 왜 굳이 쓰려는 농도보다 고농도의 용액을 만드는 걸까요? 예를 들어 수용액을 이용한다고 하면, 매번 물에 가루를 딱 맞게 녹이는 게 덜 번거롭지 않을까요?
안타깝게도 더 번거롭습니다. 고체 시약의 무게를 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실험에 따라 다르지만, 소수점 아래 서너 자리수까지 정확하게 가루의 무게를 재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딱 원하는 만큼의 가루 무게를 재는 일은 익숙해져도 시간이 꽤 걸릴 정도로 번거로운 일이거든요. 대학교 신입생들이 듣는 일반화학실험실 등에 가면 저울 뒤로 줄을 길게 서있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험을 할 때는 저장 용액(Stock Solution)이라는 걸 종종 만들어둡니다. 저울에서 무게를 재는 것보다 액체에서 액체를 희석하는 게 훨씬 편하고 빠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10배 더 진한 용액을 만들어놓는다면, 10번 실험할 때 무게를 재는 수고를 한 번만 하면 됩니다.
그럼 액체로 보관해뒀을 때, 부피를 딱 맞게 취하는 건 쉬운 일일까요? 네, 저울에 비해 훨씬 쉽습니다. 마이크로 파이펫이라고 부르는 도구 등 덕분에 정확한 부피의 액체를 취하는 건 순식간에 가능해졌죠. 따라서 고농도로 만들어 놓습니다.
혹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도구가 궁금해지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저장용액은 실험실에만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일상에서도 저장용액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더치커피나 매실액기스의 원액을 물에 희석한다거나, 페인트에 물을 섞는 등이 모두 저장용액을 이용한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수용액으로 팔기도
이 외에도 '몇% 수용액 상태'로 파는 화합물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강한 산인 염산은 물에 최대한 녹여 포화상태를 만들었을 때 38%이기 때문에, 보통 30~38%의 염산 수용액 상태로 살 수 있습니다.
과학, 특히 실험하는 과학을 전공하는 경우 이런 문제를 숨쉬듯 마주하게 된다는 점에서 소금물 문제를 굳이 넣은 이유가 있었네요. 물론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을 설정할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