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버트런드 러셀, 핵무기 폐기 주장했다
아인슈타인·버트런드 러셀, 핵무기 폐기 주장했다
  • 이상진
  • 승인 2018.12.28 08:35
  • 조회수 438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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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섬에서 이루어지는 핵폭발 실험장면. 출처:pixabay
비키니섬에서 이루어지는 핵폭발 실험 장면. 출처: pixabay

1954년 3월, 당시 미국이 만든 가장 강력한 수소폭탄인 '캐슬 브라보'가 마셜 제도에 위치한 비키니 환초에서 열꽃을 피워냅니다. '캐슬 브라보'의 폭발력은 15메가톤이었습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보다 1,000배 이상 강력했죠. 

 

소련의 수소폭탄보다 미국이 우위를 보인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실험이었는데요. 이로 인해 비키니 환초의 섬 한 개가 완전히 증발해버렸고, 실험장소로부터 9천여 킬로미터 떨어진 미국 테네시 주까지 방사성 낙진이 날아갔습니다. '캐슬 브라보'는 무려 7천 평방마일이라는 범위에 죽음의 재를 뿌렸어요. 참고로 환초란 섬이 해수면 아래로 완전히 침강하면서 산호초만으로 이루어진 둥근 고리모양의 산호도를 가리킵니다.

 

이 소식은 과학계뿐만 아니라 지식인 사회 전체를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핵폭탄의 위험성을 경고해왔습니다.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던 과학계 거성의 경고는 '캐슬 브라보'의 등장으로 마침내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핵무기의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출처:pixabay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핵무기의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출처: pixabay

영국의 논리학자이자 철학자요, 또 수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던 버트런드 러셀이 아인슈타인의 주장에 가장 먼저 동조했는데요. 철학와 문학 등의 지식인 사회에서 아인슈타인만큼 유명인이었던 러셀은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했죠. 

 

러셀은 처음엔 아인슈타인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요. 하지만 비키니 환초의 진상을 안 뒤에는 아인슈타인이 지병으로 작고하기 불과 몇 주 전에, 그와 함께 핵폭탄의 위험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로 결심합니다. 

 

죽음의 낙원, 비키니 환초

 

비키니 환초는 1946년에서 1958년까지 미국의 핵실험 장소로 쓰였어요. 비키니 환초는 1944년 일본이 마셜 제도에서 철수한 뒤 미국이 접수한 섬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아름다운 이국적 자연 환경을 가진 비키니 환초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뻔했으나, 미국이 냉전시기 동안 소련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비키니 환초를 핵실험 장소로 쓰기로 결심하고 원주민들을 롱게리크 환초로 강제이주 시킵니다. 

 

그 뒤 미국은 비키니 환초에서 1946년 7월부터 1958년까지 모두 67건의 핵실험을 하는데요. 현재까지 비키니환초에는 대규모 핵실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흉터'가 수소폭탄 '캐슬 브라보'로 비키니 환초의 북서쪽 만에 만들어진 대규모 구덩이입니다. 

 

 

과학계 대표인사들이 참여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

 

1955년에 앨버트 아인슈타인과 버트런드 러셀이 주도한 선언은 훗날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이 선언에 서명하며 참여했는데요.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막스 보른과 세실 플랭크 파월, 퍼시 윌리엄스 브리지먼,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라이너스 칼 폴링과 장 프리테리크 졸리오-퀴리,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허먼 조지프 멀러,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조셉 롭블라트 등 당대 대표 지식인들이었죠.  

 

이들은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미국·영국·프랑스·소련·중국·캐나다 등 6개국 정상들에게 보냈습니다.

 

“우리 과학자들은 인류가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현실을 직시하며 회의를 연다. 대량살상무기 개발로 얼마나 큰 위기에 빠질지 예측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중략) 수소폭탄이 사용된다면 절멸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 폭발로 죽는 것은 아주 순식간. 그 여파로 남은 이들은 서서히 신체가 파괴된다. (중략) 우리들은 모든 분쟁해결을 위한 평화적인 방법을 강구할 것을 촉구한다.”

-1955년 7월 9일 런던, 러셀·아인슈타인 선언-

 

러셀·아인슈타인 선언, 퍼그워시 회의로 이어져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의 정신을 이어받은 일련의 과학자들은 핵무기의 개발과 함께 발생할 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모임을 가지는데요. 바로 '퍼그워시 회의'입니다. 

 

1957년 7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기반으로 첫 번째 '퍼그워시 회의'가 열립니다. 회의에는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각국의 과학자들이 핵무기로 인류가 위협받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 등 10개국의 22명의 과학자들이 참석했죠.

 

꾸준한 활동을 이어온 퍼그워시 회의는 창립 멤버였던 조셉 롯블라트와 공동으로 지난 1995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65개국에 지부가 있는데요. 매년 각국을 순회하며 회의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마스카와 도시히데,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 김범수, 서울:동아시아, 2017.

세계유튜브핫이슈, 일반인은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섬 [ep 1.비키니 섬 ], YouTube, 2018.

Roman Styran, Bertrand Russell - Press Conference on Nuclear Weapons - Caxton Hall, London, 9 July 1955, YouTub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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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kwon Jun 2019-09-29 17:05:59
아인슈타인은 1955년에 사망합니다. 57년 퍼그워시 회의에 참석할순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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