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즉 브리튼을 통일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엑스칼리버 등 '전설의 검'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어쩌면 '전설의 검'의 비밀은 잘 만들어진 강철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세기 들어서야 '강철'에 대한 과학적 이해 시작
인류가 강철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물리학이나 화학, 천문학에 대한 성취를 이뤄진 19세기에도 철과 강철은 '경험'에 의해 만들 수 있었죠.
20세기 이후에야 강철에 대한 체계적인 개념이 정립됐는데요. 이전 수천 년 동안 강철을 제조하는 방법은 '신비로운 마법'으로 여겨지거나, 장인의 가문에 전해지는 '비밀스런 기예'였습니다. 수 많은 경험을 통해 알아낸 직관에 따른 '감'과 기나긴 '기다림', 그리고 로또에 당첨되는 수준의 '운'이 장인의 강철 제조 비법의 전부였습니다.
20세기 전의 인류는 강철이 철과 탄소의 합금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숯의 형태를 띠는 탄소를 철에 열을 가하고 모양을 가다듬는 연료로만 생각했던 것인데요. 탄소는 철의 결정 안에 들어가는 재료입니다. 강철은 철에 0.2~0.4%의 탄소를 섞어 만듭니다.
철의 제련 과정 중에 탄소가 조금만 더 들어가도 강철을 만들 수 없습니다. 철에 너무 많은 탄소가 들어가면, 예를 들어 철에 탄소가 4%만 들어가도 합금은 매우 부서지기 쉬워져 무기나 도구를 만들기에 적절하지 않게 되죠.
'전설의 검' 비밀은 잘 만든 강철
불 속에는 탄소가 아주 많기 때문에 무기로 쓸 만한 강철을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불 속에 철을 정해진 시간보다 오래 넣어두면 합금의 탄소 함량이 높아지기 때문인데요. 이런 합금으로 만든 칼을 들고 전쟁에 나섰다간 칼이 바로 쪼개져 목이 남아나지 않겠죠.
'감'과 '운', '경험' 등으로 만든어진 강철 제조 비법은 많은 전설들을 양산했습니다. 로마가 물러나고 게르만족이 바다를 건너 영국으로 침공해오는 6세기 경, 켈트족의 영국 지배를 공고히 하고 브리튼을 통일한 것으로 알려진 아서왕의 전설에서도 강철 제조 비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서왕이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들었던 전설의 검인 엑스칼리버는 마법의 힘이 있다고도 하고 영국의 통치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어설픈 제련 과정으로 만들어진 칼들이 전투에서 부러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요.
이런 시대에 알맞은 탄소 함량을 가진 강철검을 휘두르면 상대의 칼과 갑옷을 모두 부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영국 UCL 기계공학과의 마크 미오도닉 교수는 "아서왕의 엑스칼리버는 혼란을 종식키시며 문명의 지배를 의미하는 강철검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일본의 사무라이칼도 대표적인 강철검 가운데 하나입니다. 뛰어난 사무라이였던 야마토 타케루는 자신의 칼인 '아마노무라쿠모노쓰루기'로 바람을 통제하고 적을 쓸어버렸다고 하죠. '아마노무라쿠모노쓰루기'는 하늘의 구름을 모으는 칼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야마토 타케루의 칼도 신화를 걷어내고 보면 뛰어난 강철 제련 기술을 가진 일본의 기술력이 보이는데요. 사무라이칼의 비밀은 탄소 함량이 높아 날카롭지만 잘 부러지는 강철과 탄소 함량이 낮아 무디지만 부러지지 않는 강철을 적절히 섞은 데 있습니다. 사무라이들은 저탄소 강철로 칼 중심부를 채우고 칼날은 고탄소 강철로 용접했습니다.
고탄소 강철을 저탄소 강철에 덧씌우는 방법으로, 사무라이들은 부러지지 않으면서도 날카로운 칼을 만든 것인데요. 부서지는 칼날은 다시 제련을 통해 가다듬었습니다
15세기까지 강철 제련 기술로 만든 사무라이 칼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칼이었다고 합니다. 20세기에 과학으로서의 야금학이 발달하기까지 일본은 그 우수함을 유지했습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어떤 국가도 일본보다 더 단단하고 강한 강철을 만들어내지 못했으니까요.
##참고자료##
마크 미오도닉, <사소한 것들의 과학>, 윤신영, MID,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