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봤는데 또 까먹는 '안면인식장애' 왜?
어제 봤는데 또 까먹는 '안면인식장애' 왜?
  • 강지희
  • 승인 2019.09.03 23:20
  • 조회수 100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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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과인가요?

사과 아닙니다. 원펀맨도 아닙니다.
사과 아닙니다.

한 환자가 위의 그림을 보고 남긴 답입니다. 이 그림은 칼 세이건의 책 <에덴의 용>에서 활용된 그림을 재구성한 건데요. 이 그림이 먹는 '사과'라고 인식한 환자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특이한 결함을 나타냈습니다. 심지어 가족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했죠. 의사가 그에게 위의 그림을 보여주자 환자는 역시 '사과를 그린 것이냐'고 되물었습니다.

 

환자는 얼굴의 입 부분이 사과에 난 상처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운데의 코는 사과의 꼭지가 접혀들어간 것 같다고 답했죠. 두 눈은 사과에 벌레 먹은 구멍 두 개로 인식했는데요. 특이한 건 이 환자가 집이나 기타 무생물을 그린 그림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맞혔다는 겁니다.

아무 것도 안 보여...안 보여... 출처: pixabay
아무 것도 안 보여...안 보여... 출처: pixabay

이 환자는 '안면인식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안면실인증'이라고도 부릅니다. 뇌의 일부가 손상돼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증상을 갖게 됐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5천~1만여 명의 얼굴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면인식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한 사람의 얼굴도 구분하기 힘듭니다. 심지어 몇 년 동안 오래 지낸 사람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측두엽의 손상으로 발생해

측두엽은 바로 뇌의 노란색 표지 부분. 출처: fotolia
측두엽은 바로 뇌의 노란색 표지 부분. 출처: fotolia

안면인식장애는 측두엽이 손상돼 발생합니다. 측두엽은 청각 자극와 시각 자극을 담당하는 뇌 영역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환자도 측두엽이 손상된 환자입니다. 과학자들은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오른쪽 측두엽이 손상되면 비언어적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고 왼쪽 측두엽이 손상되면 언어를 다루는 기억을 상실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측두엽 그 중에서 '방추이랑'이라는 영역이 손상되면 안면인식장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방추이랑은 측두엽의 아랫부분에 있으며 척추와 두개골이 연결되는 부위에서 멀지 않습니다. 얼굴을 인식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방추형 얼굴 영역'이라고도 부르죠. 안면인식장애는 뇌졸중 또는 두부외상이 방추이랑을 손상시켜 발생할 수도 있지만 유전적으로 물려받기도 합니다. 전 세계 2%의 사람들이 안면인식장애를 갖고 있죠.

 

정상적인 노화 과정에서도 가벼운 안면인식장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익숙했던 얼굴도 점차 알아보기 힘들어 합니다.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도 잘 인식하지 못하기 시작합니다. 방추이랑을 두뇌의 다른 영역과 연결해주는 신경전도로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하기 때문이죠. 참고로 신경전도로는 백질로 된 신경 통로를 말합니다. 나이가 든 사람들 중 일부는 이 가벼운 안면인식장애 때문에 사람의 표정 중 놀람, 행복, 혐오와 같은 감정은 알아볼 수 있지만 슬픔, 두려움, 분노 등은 알아채기 어려워 합니다.

 

이 사람들, 어떻게 살아갈까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타인을 알아보기 위해 특별한 방법에 의존합니다. 얼굴 대신 목소리나 머리카락, 걸음걸이, 복장 등으로 사람을 구별하죠. 어떤 사람은 입은 옷을 기억해뒀다 가족을 구분합니다.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 자신과 일하는 사람들을 알아보기 위해 특정 몸짓이나 자세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죠.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 올리버 색스 박사도 안면인식장애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색스 박사는 모임을 주최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이름표를 달게 했다고 합니다. 

 

안면인식장애를 가진 유명인은?

브래드 피트와 루이스 캐럴도 안면인식장애가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브래드 피트와 루이스 캐럴도 안면인식장애가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배우 브래드 피트는 "나는 선천적 안면인식장애가 있는지 모른다"고 고백해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선천적 안면인식장애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입니다.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초면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뇌졸중 또는 뇌종양 등으로 발생한 후천적 안면인식장애에 비해 증상이 훨씬 가볍고 CT나 MRI에서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유명한 작가 겸 수학자 루이스 캐럴도 안면인식장애가 있었다고 합니다. 루이스 캐럴은 어제 런던에서 같이 식사를 한 사람들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해 초면처럼 대했다고 하는데요. 루이스 캐럴은 자신의 안면인식장애 때문에 얼굴을 고정시킬 수 있는 사진에 관심을 많이 보였습니다. 

 

##참고자료##

 

  • 존 메디나 <젊어지는 두뇌 습관>
  • 칼 세이건 <에덴의 용>
  • 가카키 류스케 <뇌 안에 잠든 기억력을 깨워라>
  • 웬디 스즈키 <체육관으로 간 뇌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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