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족 화가 뇌에는 '특별 지도' 있다
구족 화가 뇌에는 '특별 지도' 있다
  • 강지희
  • 승인 2019.10.04 08:00
  • 조회수 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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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Longstaff의 작업 모습. 출처: MPFA

영국의 화가 Peter Longstaff는 양팔이 없습니다. Longstaff는 어머니가 임신 도중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하면서 1961년 팔이 없는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Longstaff는 스스로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Longstaff의 가족들은 팔이 없단 이유로 Longstaff가 남들과 다르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Longstaff는 노퍽에서 농장 일을 하는 삼촌에게서 영감을 받아 20년 간 자신의 돼지 농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했습니다. Longstaff는 자신의 발로 농장 일을 했습니다. 장화를 신으면 트랙터를 운전하거나 농장에서 작업을 할 때 방해받을 수 있기에 매년 겨울 맨발로 농장 일을 합니다. 매년 겨울마다 발이 얼고 진흙투성이가 되지만 Longstaff는 스스로가 야외 활동을 좋아하고 장사가 나름대로 잘되기 때문에 자신이 농장 일을 하는 것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Peter Longstaff가 그린 그림. 출처: MFPA
Peter Longstaff가 그린 그림. 출처: MFPA

그런데 1990년대 말 값싼 외국산 베이컨 수입이 번창하면서 Longstaff의 돼지 농장 사업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Longstaff는 직업을 잃었지만 어린 아들이 있어 새로운 직업을 구해야 했는데요. Longstaff는 유년 시절 그림과 사진에 관심을 가졌던 일을 회상하며 미술과 사진 강좌를 등록했습니다. Longstaff는 발가락으로 붓을 쥐어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죠. Longstaff는 똑같이 탈리도마이드로 양팔을 잃은 친구로부터 조언을 얻어 자신의 그림을 영국 구족회화협회(MFPA)의 화가 Tom Yandell에게 그림을 제출했고 2002년 협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Longstaff는 예술가로서 새로운 경력을 쌓기 시작합니다. MFPA의 설립자 Erich Stegmann는 "팔이 없는 화가들이 전문 화가로서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하겠다"는 철학을 가졌는데요. Longstaff는 전문화가가 되기 위해 노퍽에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발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구족화가. 출처: flickr
발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구족화가. 출처: flickr

Longstaff처럼 양팔이 없는 화가들을 '구족화가'라고 부릅니다. 이 화가들은 팔 대신 발이나 입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한국에도 구족화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오순이 단국대 교수가 있습니다. 

오순이 교수. 출처: 단국대학교 홈페이지
오순이 교수. 출처: 단국대학교 홈페이지

오순이 교수는 어릴 때 집 앞 철길에서 놀다가 열차에 치여 팔을 잃었습니다. 오 교수는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선생님께 그림을 그리라고 권유를 받았는데요. 이를 계기로 발로 붓을 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피나는 노력 끝에 오순이 교수는 단국대학교 동양화과에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 항저우 중국미술학원에 유학해 수묵화를 공부했죠. 오순이 교수는 수많은 노력 끝에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고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동양화전공 초빙교수로 당당히 임용됐습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신경과학연구소 과학자 Tamar Makin의 연구진은 Peter Longstaff을 포함해 발가락을 이용하는 구족화가들의 뇌를 fMRI로 스캔해 분석했는데요. <Cell Reports>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발가락을 이용하는 구족화가들의 뇌 영역에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손가락 지도'와 유사한 '발가락 지도'가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손가락 움직임을 담당하는 영역은?

뇌는 영역마다 담당하는 부위가 다르다. 출처: pixabay
뇌는 영역마다 담당하는 부위가 다르다. 출처: pixabay

뇌를 구성하는 세포들은 구획별로 일정한 기능을 합니다. 이런 기능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뇌 지도'로 부릅니다. 손가락, 발가락, 몸통, 얼굴 등의 감각을 맡는 부위, 운동을 담당하는 부위, 또한 시각, 청각과 같은 감각이나 감정을 담당하는 부위, 논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부위들이 각각 독립돼 있죠. 뇌 지도에서는 이런 뇌의 부위들을 '브로드만 영역'이라는 단위로 구분합니다. 신체 감각을 담당하는 중추 부위는 1, 2, 3입니다. 운동을 담당하는 부위는 4, 5, 6 이런 식으로 분류합니다.

 

브로드만 1, 2, 3 영역은 일차 체감각 영역이라고 부릅니다. 일차 체감각 영역은 피질 척수로를 구성하는 영역 중 하나인데요. 피아니스트나 화가의 섬세한 손동작은 이 피질척수로에서 나옵니다. 피질척수로는 전전두엽의 운동 계획과 보완운동영역의 운동 조절 과정을 관장합니다. 운동 출력이 일차 운동 피질로 전달되기 전에 운동 목적에 맞게 운동 방향과 힘의 정도를 세부적으로 조절합니다.

 

피질척수로를 구성하는 신피질 영역으로는 일차 체감각 영역, 일차 운동 피질, 전운동영역, 보완운동영역 등이 있는데요. 피질척수로는 이처럼 다양한 운동피질 및 감각피질과 연결돼 정확하고 섬세한 손가락 운동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발가락만 움직인다면?

실험을 위해 발을 자극해보겠습니다. 출처: pixabay
실험을 위해 발을 자극해보겠습니다. 출처: pixabay

연구진은 발가락을 사용하는 구족화가 2명의 발가락을 살짝 자극면서 화가들의 뇌를 fMRI로 스캔했습니다. 이 구족화가들은 그림 뿐만 아니라 글을 쓸 때, 집안일, 전화와 같은 실생활을 할 때도 발가락을 적극 사용하는데요. 연구진은 두 명의 구족화가들과 손을 사용하는 대조군 참가자 21명의 뇌를 비교했습니다.

 

비교한 결과 구족화가들의 발가락을 건드리면 발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극적으로 활성화됐다고 합니다. 반면 대조군 참가자들의 뇌는 전혀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손을 움직이는 사람들일 경우 발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뇌 영역에서 발가락의 움직임이 큰 지분을 차지하지 않는데요. 구족화가들은 발가락에 자극을 받으면 발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크게 활성화했다고 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구족화가들의 발가락을 자극하면 발을 담당하는 영역 뿐만 아니라 손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영역까지 활성화됐습니다. 팔이 없음에도 말이죠. 화가들의 뇌에서 활성화한 '발가락 지도'는 손을 쓰는 사람들의 '손가락 지도'와 매우 유사했다고 합니다. 연구진은 구족화가들의 뇌가 발가락을 ‘손’으로 인지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연구진 중 한 명이자 제 1저자인 Harriet Dempsey-Jones는 "우리의 뇌에 있는 신체 지도는 반드시 고정돼 있지 않으며 언제든지 조정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연구진은 또한 이 연구가 뇌 가소성과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뇌 가소성이란 중추신경계의 손상 후 뇌가 재구성 혹은 재배치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신경가소성'이라고도 부르죠. Makin은 "우리 연구는 뇌의 자연 가소성의 극단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연구진 중 한 명인 Daan Wesselink는 "연구에 참여한 두 구족화가는 어린 시절부터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렸다. 성인이 되면 뇌가 더 고정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갑자기 발을 쓴다고 뇌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의했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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