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순서]
세레스(Ceres), 팔라스(Pallas), 주노(Juno), 그리고 베스타(Vesta). 이들은 최초로 발견된 소행성 4개의 이름들이다. 세레스는 2006년 8월 국제천문연맹(IAU, 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 총회에서 왜소행성(dwarf planet)으로 분류됐다. 세레스는 로마신화의 ‘농업과 곡물의 여신’, 팔라스는 그리스 신화의 ‘지혜의 여신’, 주노는 로마신화 주피터(Jupiter)의 아내로, ‘결혼한 여성의 수호신(그리스 신화의 헤라(Hera)에 해당함)’, 그리고 베스타는 로마신화에서 ‘난로, 가족의 여신’이다. 이처럼 이들은 모두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신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이다.
1801년 이탈리아 천문학자 주세페 피아치(Giuseppe Piazzi)가 발견한 세레스는 처음에는 행성으로 생각됐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태양계 행성들이 태양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따라 분포한다는 티티우스-보데(Titius–Bode)의 법칙에 따라 화성과 목성 사이에 새로운 행성이 존재할 것으로 예측하고 발견을 위한 탐사 관측에 집중하고 있었다.
1801년 1월 1일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팔레르모(Palermo) 천문대의 천문대장 피아치는 황소자리 부근에서 별처럼 생겼으나 움직이고 있는 신천체를 발견했고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는 궤도 계산을 통해 이 이동천체가 화성과 목성 사이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세레스의 크기는 지름 약 1,000km 정도로 달의 크기의 1/3도 안 됐다. 세레스가 발견된 이듬해 팔라스, 1804년 주노, 그리고 1807년 베스타가 연달아 발견됐다. 따라서 이들은 처음에는 작은 행성들(minor planets 혹은 small planets)로 불렸다.
1781년 천왕성을 발견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관측 천문학자 중 하나였던 윌리엄 허셸(William Herschel)은 1802년 두 번째 소행성인 팔라스가 발견되고 얼마 후 소행성(asteroid)이란 용어를 제안했다. 이는 ‘별과 같은’, ‘별처럼 생긴’이란 의미의 그리스어 ἀστεροειδής(혹은 asteroeidēs)에서 따온 것이다.
허셸이 그 용어를 제안한 직후에는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1851년 영국의 왕립천문학회(Royal Astronomical Society)는 당시까지 소행성의 발견 개수가 10개가 넘어가고 발견 속도 또한 증가함에 따라 기존의 행성 체계와는 다른 분류법이 필요하게 됐다. 이에 따라 그 명명법도 달라졌다.1) 1852년 이탈리아 천문학자 안니발레 데가스파리스(Annibale de Gasparis)가 20번째 소행성 마살리아(Massalia)를 발견하자 이름과 동시에 발견된 순서에 따른 번호가 함께 명명되기 시작했다.
사실 1807년 네 번째 소행성 베스타가 발견된 이후 8년 동안 더 이상 추가 발견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은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더 이상 신천체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탐사 관측을 중단했다.
그러나 독일의 아마추어 천문학자 칼 루드비히 헨케(Karl Ludwig Hencke)는 1830년도부터 추가로 소행성을 발견하기 위한 독자적인 관측을 실시했다. 15년만인 1845년 12월, 즉 당시에 마지막 소행성이었던 베스타 발견 이후 39년만에 5번째 소행성 아스트레아(Astrea)를 발견했다.2) 또한 그는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1847년 7월 6번째 소행성 헤베(Hebe)를 발견했다. 이어서 같은 해 8월과 10월 각각 영국의 천문학자 존 러셀 하인드(John Russell Hind)에 의해 7번째 소행성 이리스(Iris)와 8번째 소행성 플로라(Flora)가 발견됐고 이후 1800년대 후반까지 매년 최소 1개의 소행성이 발견됐다.
소행성 아스트레아와 헤베는 각각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과 ‘청춘의 여신’에서 따온 이름이고, 소행성 이리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무지개의 여신’에서 소행성 플로라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꽃의 여신’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으로 이는 최초로 발견된 소행성인 세레스의 명명법 전통(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을 따른 것이다.
독일의 천문학자 막스 볼프(Max Wolf)는 소행성 발견 초기에 큰 획을 그은 사람으로 그는 장시간 노출을 주고 천체사진을 촬영하면 소행성이 선(streak)으로 나오는 현상을 이용했다. 1891년 소행성 323 브루시아(Brucia)를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그는 모두 248개의 소행성을 발견했고 1906년에는 최초로 목성 트로얀(Trojan) 소행성인 588 아킬레우스(Achilles)를 발견했다.
아킬레우스는 그리스신화 속 ‘트로이 전쟁에 등장하는 영웅’으로 우리가 흔희 “아킬레스 건”이라고 부르는 발뒤꿈치 부분도 여기에서 따온 단어이다. 독일의 천문학자 칼 구스타프 위트(Carl Gustav Witt)가 1898년 발견한 최초의 근지구소행성 433 에로스(Eros)도 그리스신화 ‘사랑의 신’에서 따온 것처럼 소행성 발견 초창기에는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대(Main-belt)에 위치하지 않고 특이한 궤도를 갖는 소행성에 대해서는 남성의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1923년 소행성의 누적 발견개수가 1,000개가 넘어가고 최초로 발견됐다가 추가 관측을 못하고 궤도가 확정되지 못한 채 잃어버리는 소행성이 발생하게 되자 천문학자들은 새로운 소행성 명명법을 고민했다. 1925년부터 발견년도+영문자+(숫자) 조합의 방법을 사용하게 됐다. 즉 소행성을 새롭게 발견해서 국제소행성센터(MPC, Minor Planet Center)에 보고한 뒤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소행성으로 확인되면 임시지정번호(provisional designation)라는 것을 부여 받는다.
예를 들면 1999 JU3 소행성의 경우, 맨 앞의 1999는 발견된 년도를 의미하고, 첫 번째 영문자는 발견된 월(month)을 의미하는데 한 달을 전반기(1일-15일)와 후반기(16일-말일)로 나눈 뒤에 A부터 Y까지 24개의 영문자를 순서대로 사용한다(영문자 I는 숫자 1과 혼동이 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음). 즉, 발견년도 뒤에 A가 붙으면 해당 소행성은 1월 전반기, B는 1월 후반기, J는 5월 전반기, Y는 12월 후반기에 발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소행성 1999 JU3라는 임시지정번호만 보고도 이 소행성은 1999년 5월 전반기에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두 번째 영문자와 숫자의 조합은 해당월 전반기 혹은 후반기에 발견된 소행성의 누적개수를 의미한다. 가장 먼저 발견된 소행성은 A를 붙이고, 25번째로 발견된 소행성에는 Z를 붙인 후(이 경우에도 알파벳 I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후에 추가로 발견된 소행성이 있으면 순서대로 숫자를 붙인다. 예를 들면, 1999년 5월 상반기에 25번째로 발견된 소행성은 1999 JZ, 26번째로 발견된 소행성은 1999 JA1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27번째는 B1, 50번째로 발견된 소행성은 Z1, 51번째는 A2, 52번째는 B2.. 이런 식이다. 즉 1999 JU3는 1999년 5월 상반기(J)에, 70번째(U3)로 발견된 소행성이다.
임시지정번호가 부여된 소행성이 보통 4번의 충(opposition)에서의 추가 관측이 이뤄져 궤도가 확정되면 영구적인 지정번호(permanent designation)라고도 불리는 고유번호(number)를 부여받는다.5) 과거 소행성 발견 초기에는 발견된 순서대로 번호가 붙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궤도가 확정된 순서대로 고유번호를 붙인다. 소행성 1999 JU3의 경우 고유번호는 162173번이다. 2019년 12월 현재까지 발견된 소행성은 모두 약 85만개가 넘는데, 그 중에서 약 60%가 넘는 54만개 정도가 고유번호가 부여됐다.6)
또한 고유번호가 부여된 소행성의 경우 발견자에게 해당 소행성의 이름을 제안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데7), 발견자는 소행성의 이름과 의미, 그리고 그 이유 등을 국제천문연맹에 제안하게 되고 소천체명명위원회(Working Group for Small Bodies Nomenclature)8)에서 최종 승인이 이뤄진다.
국제천문연맹에서는 소행성의 이름을 지을 때 아래와 같이 몇가지 규칙을 정해놓았다.9)
- 영문자 16자 이내(16 characters or less in length)
- 가능하면 1개의 단어를 선호함(preferably one word)
- 발음하기 용이하고 불쾌하지 않은 단어(의미)(pronounceable (in some language), non-offensive)
- 기존에 존재하는 소행성 및 행성 위성의 이름10)과 유사하지 않음(not too similar to an existing name of a Minor Planet or natural Planetary satellite)
- 동물의 이름이나 상업적인(광고 목적의) 이름은 불가(names of pet animals are discouraged, names of a purely or principally commercial nature are not allowed.)
- 정치인과 군인, 그리고 관련 사건의 이름은 인물 사후, 해당 사건 발생 100년 이후에 명명 가능(The names of individuals or events principally known for political or military activities are unsuitable until 100 years after the death of the individual or the occurrence of the event)
뿐만 아니라 목성과의 1:1 궤도 공명을 이루는 목성 트로얀(Trojan) 소행성의 경우 트로얀 전쟁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이름을 붙일 것, 해왕성의 궤도를 가로지르거나 근처에 있는 소행성의 경우 지하(사후)세계(underworld)와 관련있는 신화 속 이름을 붙일 것, 해왕성의 궤도보다 훨씬 멀리에 존재하는 소행성의 경우 창조(creation)와 관련있는 신화 속 이름을 붙일 것, 근지구소행성의 경우 고대 신화(mythological)와 관련된 이름을 붙일 것이란 권고 사항이 있다. 위에서 예를 든 근지구소행성 (162173) 1999 JU3의 경우 그 이름은 일본 신화 속 바다 깊은 곳 보물이 있는 곳으로 나오는 “용궁(龍宮, Dragon Palace)”이라는 일본어 발음인 류구(Ryugu)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11)
이렇게 이름이 부여된 소행성은 2019년 12월 현재 약 21,000개로 고유번호가 부여된 소행성 중에 4%에도 못미친다. 소행성 이름 중에 재밌는 것 몇 개를 살펴본다면 소설, 영화, 뮤지컬로 유명한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Jean Valjean)이 감옥에 갇혔을 때 죄수번호가 24601번인데, 고유번호 24601번을 갖는 소행성에 발장(Valjea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고유번호 2037번을 갖는 소행성의 이름은 트라이팍셉탈리스(Tripaxeptalis)인데 이는 순전히 만들어진 단어로서 그 발음을 트라이팍스-셉트앨리스(triPax-septAlice)라고 나눠서 한다면 3을 뜻하는 트라이(tri-)와 7을 뜻하는 셉트(sept-)가 각각 팍스(Pax)와 앨리스(Alice)의 앞에 나오게 된다. 이는 팍스라는 이름의 가진 소행성 팍스의 고유번호가 679번, 앨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소행성의 고유번호가 291번으로 그 고유번호에 각각 3과 7을 곱하면 둘 다 2037이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 얼마나 기발한 작명인가!)
유명 영화배우 이름도 많이 등장하는데 소행성 9007번은 제임스본드(James Bond)의 이름을, 소행성 12818번은 톰 행크스(Tomhanks)의 이름을, 소행성 3768번에는 마릴린 먼로(Monroe)의 이름을 붙였다. 이 밖에 비틀즈, 모차르트, 베토벤이라는 이름의 소행성도 있다.
1998년 우리나라 사람(이태형 천문우주기획 대표)이 최초로 발견한 소행성은 고유번호가 23880번이고 이름은 통일(Tongil)이다. 2000년도 초반 한국천문연구원 보현산천문대 1.8미터 망원경을 이용하여 소행성 탐사를 수행하였고 많은 소행성을 발견했다. 그 중 가장 처음으로 고유번호를 부여받은 34666번 소행성에는 보현산(Bohyunsan)이란 이름을 부여했고, 나머지는 최무선, 이천, 장영실, 이순지, 허준, 홍대용, 김정호, 이원철, 유방택, 서호수와 같이 우리나라 역대 위인 및 과학기술자들의 이름을 붙였다.
지난 2018년 8월 칠레, 호주, 남아공 관측소에서 운영하는 지름 1.6m급 외계행성탐색시스템(KMTNet, Korea Microlensing Telescope Network) 망원경 3기로 국내최초로 발견한 근지구소행성 2018 PM28과 지구위협소행성 2018 PP29의 경우에는 아직 고유번호가 부여되지 않았고, 임시지정번호(provisional designation)만 정해진 상태이므로 아직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두 개 모두 그 궤도가 근지구소행성에 해당하고 있어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국제천문연맹에서는 고대 신화(mythological)와 관련된 이름을 붙일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 추후 궤도가 확정되어 고유번호를 부여 받게 되면 과연 어떤 이름이 붙게 될까?
글: 김명진(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 이학 박사)
現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 선임연구원
前 한국천문연구원 행성과학그룹 박사후연구원
##참고자료##
2) 칼 루드비히 헨케는 드리센(Driesen)에 있는 개인 관측소에서 소행성 아스트레아를 발견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프로이센(Prussia) 왕국의 왕은 그에게 1,200마르크(Mark)를 연금으로 제공하였음.
3) 무한한 별의 분포에서는 밤하늘이 어두워지지 않고 밝게 빛날 것이라고 하는 ‘올버스 패러독’를 1823년 발표한 독일의 과학자로 소행성들이 과거 행성의 파편일 것으로 예측함.
4) 그리스어로 100을 hekaton이라고 하는데 이는 소행성 100번째 발견을 기념하기 위함.
5) 근지구소행성(NEA, Near-Earth Asteroid)의 경우 2-3번의 충(opposition) 관측만으로도 고유번호가 부여되기도 함.
6) https://minorplanetcenter.net/data
7) 소행성 발견자에게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한은 고유번호가 부여되고 난 뒤 10년간 유효함. 그 이후에 해당 소행성의 명명권은 국제천문연맹이 갖게 됨.
8) 과거 소천체 명명위원회(CSBN, Committee for Small Bodies Nomenclature)라고 불렸음.
9) https://www.iau.org/public/themes/naming/#minorplanets
10) https://minorplanetcenter.net//iau/lists/MPNames.html
11) https://global.jaxa.jp/press/2015/10/20151005_ryugu.html
12) https://www.kasi.re.kr/kor/publication/post/newsMaterial/11846
13) 두 개의 소행성 모두 임시지정번호(provisional designation)가 2018 P로 시작하므로 2018년 8월 1-15일 사이에 발견된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