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138억 년 전에 시작됐습니다. 현재 통용되는 우주론에 따르면 팽창하는 우주를 거꾸로 추적해 138억 년 전으로 되돌아갈 경우 온도와 밀도가 무한대인 특이점(Singularity), '빅뱅'에 도달합니다.
이 특이점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이 무너지는 시공간의 한 지점'으로 정의되는데요. 이 고온고압 상태의 특이점이 어느 날 갑자기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우주로 진화했다는 설명입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빅뱅은 어떤 물질이 폭발했다기 보다는 공간 자체의 급속한 팽창이라고 할 수 있죠.
이유야 어쨌든 이 특이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빠르게 확장시켰습니다. 급속한 팽창 이후 우주는 식기 시작했고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CMB)라 불리는 흔적을 남겨놓았죠. 우주배경복사는 우주에 거의 고르게 분포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빅뱅우주론의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CMB)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CMB)는 빅뱅으로부터 약 38만년 후 우주의 온도가 약 3,000K일 때 원자가 생성되면서 물질과 분리돼 우주로 퍼져나간 빛입니다. 138억년 전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Big Bang)에서 나온 빛의 흔적입니다.
그나저나, 대체 우주의 시작인 빅뱅 이전엔 뭐가 있었을까요?
시간 이전의 시간?!
이 질문은 물리학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인과율(Causality)'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그 일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쓰러진 나무가 도로에 있다고 가정해보죠. 이 나무는 아마 거센 폭풍우 때문에 쓰러졌거나 자동차가 들이박아 쓰러졌는지 모릅니다. 인과율에 따르면 시공간에서 누군가 총에 맞은 시점은 총알이 발사된 시점보다 시간적으로 앞설 수 없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아주 작은 구성요소로 이뤄진 양자세계에서는 별다른 원인 없이도 뭔가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서던 퀸즈랜드대 박사과정 Jake Clark 등에 따르면 먼 과거, 우주 전체가 마치 원자처럼 미시적인 세계에 놓여있었다면, 빅뱅이 발생하는 데 영향을 준 원인 따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빅뱅은 우주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도 흐르게 만들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빅뱅 이전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옥스퍼드대 수학과 마르쿠스 듀 소토이(Marcus du Sautoy) 교수의 책 <우리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 것 대해>을 보면 시간과 공간은 하나의 좌표, 즉 '시공간 세트'로 엮여 있습니다. 때문에 공간이 있어야 시간도 흐릅니다. 둘 중 하나를 따로 창조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즉, 시간과 공간이 빅뱅과 함께 탄생했다면 '빅뱅 이전'이라는 말은 의미를 상실합니다.
'빅뱅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은 엄밀하게 따지면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 아니라 '잘못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빅뱅 이전'이라는 말에는 '빅뱅이 일어나기 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는 전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빅뱅이 일어나면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전'이라는 단어가 의미를 잃습니다.
빅뱅은 별이 수축돼 블랙홀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꾸로 돌린 것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빅뱅에 시간적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르다가 결국 멈추게 될 거라는 분석입니다. 시간은 빅뱅이 일어나면서 비로소 흐르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지식의 경계에 대해
시공간의 특이점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최후의 종착지입니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그 너머의 무엇인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의문을 가집니다. 사실 현재까지 과학자들도 무엇이 빅뱅을 일으키게 했는지 확실히 답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일부 과학자들은 지금의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이 무한 반복되는 빅뱅 중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존재합니다.
책 <우리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에는 '빅뱅 이전엔 뭐가 있었을까?'와 같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지식이 존재하는지 그 한계에 대해 탐구합니다. 지금의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 이전의 '부모 우주'가 존재했을까요? 다중 우주라는 개념은 어쩌다 만들어지게 됐을까요? 우주는 언제까지 팽창할까요? 블랙홀은 정말 완전히 검은색일까요?
'알려진 지식(Known Knowns)'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진 지식이고 '알려진 미지(Known Unknowns)'는 모른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식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지식, 즉 '알려지지 않은 미지(unknown unknowns)'도 존재한다.
- 책 <우리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中
이 책의 저자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뒤를 이어 과학대중화사업(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의 책임자인 시모니 석좌교수(Simonyi Chair)로 부임한 마르쿠스 듀 소토이입니다. 그는 '알려진 지식'의 영역을 지나 '알려진 미지'의 영역을 탐구합니다. 답할 수 없는 질문에 직면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책에 눈여겨볼 만한 답변들이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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