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용감한 것도 '병'
지나치게 용감한 것도 '병'
  • 함예솔
  • 승인 2020.08.27 18:05
  • 조회수 4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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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분노의 질주 속 한 장면.
영화 분노의 질주 속 한 장면.

영화 <분노의 질주> 속 한 장면. 등장 인물들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태연합니다. 현실에서도 이렇게 유난히 겁이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요. 용감하다는 칭찬을 듣기도 하지만 때로는 비보를 접하기도 합니다. 

책 <이기적 감정>에 따르면 공포를 너무 적게 느끼는 사람들을 가리켜 '과소공포증'에 걸렸다고 부릅니다. 과소공포증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심각한 질환이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치료가 진행되는 경우도 드물다고 합니다. 과소공포증 환자들은 불안 전문 진료소를 찾지 않습니다. 대신 실험 비행체, 위험한 변경 지대, 전쟁이나 사회운동의 최전선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나쁜 감정은 생존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다?! 누르면 구매링크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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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위험의 기미가 보이면 불안을 느끼고 그 상황을 피하려 합니다. 향후 비슷한 상황에 닥칠 경우에도 똑같이 반응할 확률이 높죠. 불안은 우리를 보호하는 심리적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책 <이기적 감정>의 저자이자 진화의학을 개척한 랜돌프 M.네스(Randolph M. Nesse) 교수는 "이러한 불안은 유용한 반응"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그는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생명과학대학원 교수이자 '진화와 의학 연구센터' 소장입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고소공포증 생긴다?! 

 

적당한 불안은 유용한 반응이지만, 불안이 지나치게 많을 경우에도 문제입니다. 미국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일시적 걱정이나 두려움 이상으로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고 심해져 일상 생활을 할 수 없을 경우 '불안장애'로 분류합니다. 불안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위험의 기미만 보여도 식은땀이 나고 맥박이 빨라집니다. 평생을 놓고 볼 때 전체 인구의 약 30%가 의학적으로 진단 가능한 불안장애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불안장애에는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각종 공포증이 포함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소공포증도 불안장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요. 흔히 고소공포증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본 사람에게 생길 가능성이 높을 것 같지만 다른 분석도 있어 눈에 띕니다.

불안장애 중 하나로 분류되는 고소공포증. 출처: AdobeStock
불안장애 중 하나로 분류되는 고소공포증. 출처: AdobeStock

뉴질랜드 오타고대학교(University of Otago) 사회 및 예방의학과의 리치 풀턴(Richie Poulton) 교수가 <Behaviour Research and Therapy>에 게재한 연구에 따르면 어릴 적 추락사고를 경험해본 아이들이 오히려 높은 곳에서의 공포를 적게 느꼈다고 합니다. 

 

풀턴은 5세에서 9세까지의 아이들 중 높은 데서 떨어져 다친 적이 있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비교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18세가 됐을 때 고소공포증 환자가 될 가능성을 조사했습니다. 

어릴 때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경험 있으면 고소공포증 걸릴까? 출처: AdobeStock
어릴 때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경험 있으면 고소공포증 걸릴까? 출처: AdobeStock

어린 시절 낙하 사고를 '경험한' 집단에서는 중증 고소공포증 환자의 비율이 전체의 2%였습니다. 반면 낙하 사고를 경험하지 않은 집단에서는 그 비율이 7%로 오히려 더 높았습니다. 경미한 고소공포증까지 통계에 포함시킨 경우 차이는 더 확연해졌는데요. 결과적으로 어린 시절 낙하 사고를 당한 집단에서 고소공포증 환자가 7배나 더 적었습니다.

 

이에 대해 심리학과 랜돌프 M.네스(Randolph M. Nesse) 교수는 "어린 시절 공포를 너무 적게 느껴서 추락 사고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 못했던 아이들은 18세에 이르러서도 공포를 너무 적게 느낀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시 말해, 추락 사고로 다쳐본 아이들은 18세 이후에도 공포를 적게 느낀다는 건데요. 이어 그는 과도한 면역 반응이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지만 면역 부족 또한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면서 "불안 결핍도 병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화론으로 바라본 공포증

 

사실 높은 곳, 뱀, 거미를 무서워 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습니다. 반면 책, 나무, 꽃, 나비를 지나치게 무서워 하는 환자는 쉽게 찾아볼 수 없습니다. 칼, 전선, 알약, 화학물질, 오토바이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한 것들인데 이런 것에 공포를 느끼는 환자도 드물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에 대해 랜돌프 M.네스(Randolph M. Nesse) 교수는 '진화적 질문'이라고 말했는데요. 그는 아래 표에서처럼 여러 종류의 불안장애를 각기 다른 위험한 상황과 짝지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공포의 감정 중 한 두가지는 인간에게 내장된 자동적인 반응이지만 가장 흔한 공포의 감정들은 선천적인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출처: 책 '이기적 감정'
출처: 책 '이기적 감정'

예를 들어 뱀에 대한 공포는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심리학자 수전 미네커(Susan Mineka)가 <Animal Learning & Behavior>에 게재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뱀에 대한 공포를 빠르게 학습하는 구조를 가졌니다. 연구에 따르면 실험실에서 자란 아기 원숭이들은 먹이를 얻기 위해 뱀 장난감을 넘어다니며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아기 원숭이들에게 다른 원숭이가 그것과 똑같이 생긴 뱀 장난감을 보고 겁에 질려 달아나는 동영상을 보여준 뒤로 원숭이들은 줄곧 그 뱀을 무서워 합니다. 하지만 다른 원숭이가 꽃을 보고 명백한 공포를 드러내며 달아나는 동영상을 보여줬을 땐, 아기 원숭이들이 꽃에 공포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동물의 뇌는 특정한 단서들에 대해 훨씬 빠르게 공포를 학습하도록 만들어진 듯 보입니다. 

뱀 무서워... 출처: AdobeStock
뱀 무서워... 출처: AdobeStock

심지어 학습된 공포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고 하는데요. <Zeitschrift für Tierpsychologie>에 게재된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찌르레기에게 조작된 동영상을 보여줬습니다. 그러자 자신들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는 꿀빨이새를 두려워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불필요한 공포는 다른 찌르레기 여섯 마리에게 전달됐습니다. 따라서 거미나 뱀을 무서워하는 부모는 자녀들에게 그 공포를 물려줄 가능성이 존재하는 셈이죠. 

나쁜 감정은 생존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다?! 누르면 구매링크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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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기적 감정>는 불안과 같이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나쁜 감정이 어떻게 자연선택에서 살아남았는지 말해줍니다. 감정은 당신의 행복엔 관심이 없고 단지 유전자를 위한 것이라고 말이죠. 우울증이나 조현병 같은 정신장애를 진화생물학을 이용해 설명하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줍니다. 자연선택은 왜 인간에게서 감정을 제거하지 않은 채 남겨둔 걸까요?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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