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뇌의 구조는 복잡합니다. 뇌는 대략 850억 개의 신경세포, 즉 뉴런으로 구성돼 있죠. 뉴런은 제각기 시냅스라 불리는 연결 부위들로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는데, 이런 시냅스가 또 수백조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뇌의 절반을 뚝 떼어 내고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뇌 절반 제거한 여자아이
1993년, 조디 밀러(Jody Miller)는 3살이었습니다. 그녀는 갑작스런 발작을 겪었습니다. 치료를 위해 존스홉킨스병원으로 옮겨졌는데요. 조디의 병명은 라스무센 뇌염(Rasmussen Encephalitis)이란 희귀병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의 자료에 따르면 이 병은 주로 10세 이하의 어린이에게 나타납니다. 대뇌의 반구에 만성 염증(뇌염)이 생깁니다. 이 환자들은 통제되지 않은 전기적 장애로 경련 발작을 빈번하게 겪습니다.
조디도 우뇌에 이상이 생겨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발작을 자주 겪었습니다. 왼쪽 뇌에는 심각한 마비가 찾아왔는데요. 알려진 모든 치료법에 실패하자, 의사들은 뇌의 절반을 외과적 수술로 제거하는 반구절제술(hemispherectomy)을 시행합니다.
놀랍게도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조디는 발작이 멈췄고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수술 직후 그녀의 몸 왼쪽에 마비가 생겼지만 이후 꾸준히 물리 치료를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조디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일상을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책 <내가 처음 뇌를 열었을 때>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옵니다. 제니퍼는 여섯 살 때 처음 이상 증상을 겪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공포에 질려 부모에게 뛰어들었는데요. 낯선 사람이 쫓아온다며 환영을 보기도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나타나는 발작은 점차 빈도수가 잦아졌습니다. 급기야 하루에 수 차례씩 발생했습니다. 제니퍼는 MRI 검사도 받아봤지만 뇌에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24시간 내내 뇌파도(EEG)로 뇌파를 확인하는 검사를 받기도 했는데요. 입원 중이던 어느 날 아침, 제니퍼는 갑작스럽게 또 발작을 일으켰고 그 순간 정상적으로 움직이던 뇌파가 드문드문 끊기더니 확 솟구쳤습니다. 이는 뇌전증성 전기 스파크였습니다.
하지만 보통 뇌전증이라고 하면 바닥에 쓰러질 정도로 팔다리가 떨리는 증상을 겪는데요. 제니퍼의 경우 강력한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신경외과 전문의이자 신경과학자인 라홀 잔디얼 박사에 따르면 공포감은 발작 전 나타나는 전조증상(aura) 즉, 측두엽이 보내는 경고 신호라고 합니다. 제니퍼의 뇌전증은 무척 드문 종류였죠.
처음엔 약을 처방받았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뇌에서는 뇌 부정맥(brain arrhythmia) 발작이 측두엽에서 주변부로 퍼져나갔습니다. 우반구 전체에 폭풍이 휘몰아치며 번개를 치고, 반대편 좌반구를 지나 빠져나갔다가 다시 앞 뒤로 난반사 됐습니다. 이에 발작을 억제하려고 혈관에 가장 센 진정제를 넣었지만, 호흡을 조절하는 뇌 신호마저 잦아들어 산소 호흡기까지 써야 했습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의사들은 최후의 수단을 선택합니다. 제니퍼의 우반구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이었습니다.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 스파크는 종양처럼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는 특정 부위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우반구 전체에서 무작위로 일어났기 때문에 이 수술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입니다.
제니퍼 역시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마비 증상은 여전했지만 발작이 멈췄습니다. 학교도 다시 다니게 됐죠. 수술 후 3년이 지나고 제니퍼는 정상적으로 걷게 됐습니다. 심지어 축구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했다고 하네요.
없어진 뇌 역할을 남은 뇌가 수행해
한쪽 뇌가 담당하던 신체의 여러 영역들이 있었을텐데, 뇌가 사라진 뒤에도 어떻게 그 기능이 어느 정도 유지됐던 걸까요?
<Neurology>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1975년에서 2001년 사이 반구절제술을 받은 111명의 어린이 중 86%가 발작이 없어지거나 약물이 필요하지 않은 수준의 발작을 경험했습니다. 제거된 뇌의 반대쪽 신체에 부분적으로 마비가 있었지만, 수술 후 어린이들은 대부분 일상을 회복했습니다. 약간의 신체 장애가 발생했지만 피아노, 골프, 탁구를 즐길 수 있을 정도여서 중증은 아니었습니다. 라홀 잔디얼 박사 역시 자신의 저서 <내가 처음 뇌를 열었을 때>에서 "반구절제술이 '최후의 도박'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며 "이 수술을 받은 아동 96%가 뇌전증 발작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상당히 줄었을 뿐 아니라 기억, 지력, 성격, 심지어 유머 감각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생겼다"고 전했습니다.
한쪽 뇌를 제거했어도 여전히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뇌의 '신경 가소성' 능력 때문입니다. 신경 과학에서 '뇌의 재창조 능력'을 일컫는 말인데요. 뇌는 잃어버린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연결 경로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부 아동들은 해당 반구가 관장하는 신체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우반구가 아닌 좌반구를 제거하는 수술은 특히나 그렇다고 하는데요. 좌반구에 전두엽과 두정엽에서 측두엽을 분리하는 가쪽 고랑(sylvian fissure) 위쪽에는 '브로카 영역(Broca’s area)'과 '베르니케 영역(Wernicke's area)'이 자리합니다. 브로카 영역은 말을, 베르니케 영역은 대화 내용을 이해하는 곳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인기에 이 두 영역들을 잃으면 그 충격은 더욱 큰데요. 어린 아이들의 경우 남은 우반구에서 대화와 언어 이해 능력이 개발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책 <내가 처음 뇌를 열었을 때>에는 제니퍼가 받은 뇌 일부 제거 수술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나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신경외과 전문의이자 신경과학자인 라홀 잔디얼 박사가 직접 집도한 수술이었기에 생생한 이야기가 담길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뇌의 신경가소성을 기르는 방법, 뇌 건강 유지법 등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가 수술실에서 만났던 여러 환자의 뇌가 어떻게 각기 다른지, 우리가 그 동안 뇌와 관련해 '과학적 사실'이라고 믿었던 건 진짜 맞는지, 그 진위 여부까지 밝혀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