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구조, 사실 "훔친 아이디어"
DNA 구조, 사실 "훔친 아이디어"
  • 함예솔
  • 승인 2021.02.01 19:20
  • 조회수 8646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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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여자는 이 일을 할 수 없어!”

 

석탄, 바이러스, DNA의 공통점을 아시나요? 각각의 주요 분자 구조를 모두 한 사람이 밝혀냈다는 겁니다. 그 주인공은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입니다. 

여성이 과학을 하기 위해선 많은 난관을 뚫어야 했던 시절. 출처: Wikimedia Commons
로절린드는 여성이란 이유로 숱한 난관을 견뎌야 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프랭클린은 여성이었습니다. 1900년대 초중반 당시, 특히나 과학계에는 “안 돼! 여자는 이 일을 할 수 없어”라는 말이 상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과학적 통찰과 지식에 대한 갈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그녀는 박사 학위 논문으로 석탄의 분자 구조에 대한 획기적인 연구를 수행해냅니다. 이후 킹스 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에서 DNA 구조를 연구하게 됩니다. 그녀는 X-선 회절의 지식을 이에 적용했고 분자 구조의 중요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프랭클린이 DNA 구조와 유전의 분자적 기초를 발견하기 직전이었습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결정적인 이미지를 또 다른 박사 과정 학생이었던 레이몬드 고슬링(Raymond Gosling)이 촬영했는데요. 이 사진을 프랭클린의 동료였던 모리스 윌킨스(Maurice Wilkins)가 프랭클린의 동의 없이 왓슨에게 보여줍니다. 이후 1953년 왓슨과 크릭은 DNA에 대한 그 유명한 이중나선 모델을 발표했습니다.

DNA 샘플에 X-선을 겨냥한 프랭클린의 실험 설정도. 이를 통해 DNA 분자의 이중 나선 구조를 암시하는 '사진 51'을 만들어냈다. 출처:Wikimedia Commons
DNA 샘플에 X-선을 겨냥한 프랭클린의 실험 설정도. 이를 통해 DNA 분자의 이중 나선 구조를 암시하는 '사진 51'을 만들어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프랭클린은 "모델화를 위해 철저한 과학적 증거를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결국 그녀는 왓슨 그리고 크릭과 갈등을 빚었고, 1953년 킹스 칼리지 런던을 떠나 덜 유명한 버벡컬리지(Birkbeck College)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자리를 옮긴 프랭클린은 여성의 경력을 증진시켜준다고 잘 알려진 X-선 결정학자인 존 버널(John Bernal)과 합류해 살아있는 생물의 또 다른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분자인 RNA의 구조를 특징짓는 연구를 이어나갔습니다. 성차별을 견뎌가며 과학적 능력을 발휘하던 그녀는 1956년, 35세에 난소암 진단을 받습니다. 그녀는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1956년과 1957년 두 해에 걸쳐 무려 6개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1958년 4월, 37세에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됐습니다. 반면 왓슨과 크릭, 그리고 모리스 윌킨스는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 됩니다.

포즈 잡는 왓슨과 크릭. 출처:  케임브리지대 의학연구원 분자생물학실험실(MRC-LMB)
포즈 잡는 왓슨과 크릭. 출처: 케임브리지대 의학연구원 분자생물학실험실(MRC-LMB)

“여학생에게 장학금을 낭비할 순 없네”

 

과학계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았던 여성이 과연 프랭클린일 뿐이었을까요? 책 <인생, 자기만의 실험실>의 저자이자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에 여성으로선 최초로 총재가 된 리타 콜웰(Rita Colwell)에 따르면 그녀 역시 교수에게 “여학생에게 장학금을 낭비할 순 없네”란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요.

리타 콜웰. 출처: the University of Maryland College Park
리타 콜웰. 출처: the University of Maryland College Park

그녀는 콜레라의 원인균이 자연 환경에 잠복해 있다가 적절한 조건이 갖춰지면 감염성을 띠게 된다고 처음으로 주장했습니다. 일부 과학자는 부정적으로 반응했고요. 심지어 그녀는 과학계에서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일부 남성 학자들은 연구 결과를 비판하고 강연 도중 말을 끊거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조롱하며 괴롭혔습니다. 콜웰 박사는 여성 과학자로서 자신이 발견한 것을 학계 동료들에게 이해시키려면 스무 번 이상 증명해야 했다고 회상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8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하며 자신의 연구를 증명하고, 증명하고 또 증명해야 했습니다. 

리타 콜웰. 출처: Purdue University
리타 콜웰. 출처: Purdue University

하지만 캐나다 퀘벡시에서 열린 학회에서 한 영국인 남성은 "저런 인형 같이 귀여운 새가 우리를 인도하는군요"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학회에서는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관계자가 술에 취해 "리타는 그냥 어린 소녀일 뿐이야"라고 웅얼댔습니다. 콜웰 박사에게 논문지도를 받던 대학원생들은 여성 교수에게 논문 지도를 받는다며 놀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여성 과학자로서 자신이 발견한 것을 학계 동료들에게 이해시키려면 스무 번 이상 증명해야 했다. 출처: Michael Fincham, Maryland Sea Grant.
여성 과학자로서 자신이 발견한 것을 학계 동료들에게 이해시키려면 스무 번 이상 증명해야 했다. 출처: Michael Fincham, Maryland Sea Grant.

이런 가운데서도 다수의 과학자들이 콜레라균이 인도 벵골만부터 미 북동부 체서피크만까지 전 세계 강 하구에서 자연 서식한다는 콜웰 박사의 주장에 동의했습니다. 그녀는 결국 전염병이 어떻게 전파되고 날씨 패턴과 기후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공위성을 이용해 전염병 발생 시기를 예측하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관한 이론을 도출해냈습니다. 그녀는 "동료 과학자와 의학계 연구자들을 설득하는 데 25년이 걸렸다"고 회상했습니다. "논문을 발표하고, 학회에서 강연하고, 또다시 논문을 발표하는 연옥에서 일했다"고 털어놓습니다. 

 

이처럼 그 시대, 미국의 과학연구소에서 일하는 여성 대부분은 석사 학위까지만 받을 수 있었고, 그마저도 대부분 남성 교수의 실질적 '하녀' 역할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MIT 여성 과학자들의 반란

 

과학기술 분야 세계 최고라 평가받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은 여성과학자들의 연구를 방해했습니다. 연구를 위한 학교 자원을 남성 학자들과 동일한 기준으로 공유하지 않은 겁니다. 1990년대 중반 MIT 분자생물학자 낸시 홉킨스는 남성보다 연구 공간이 좁고, 연봉과 연구비가 턱없이 낮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연구 목적으로 제브라피시 어항을 들여놓기 위해 실험실 공간을 확장하려했다가 학교 측에서 이를 가로막았던 일화는 유명한데요. 그녀는 1년 동안 직접 줄자를 들고 MIT 과학대학을 돌아다니며 각 실험실의 면적을 재봤습니다. 그 결과 선임 남성 교수는 평균 279제곱미터, 선임 여성 교수는 평균 186제곱미터의 크기만 갖고 있었습니다.

 

문제 의식을 느낀 홉킨스 박사를 주축으로 MIT 여성 교수들은 비밀 위원회를 결성했습니다. 1996년엔 150쪽에 이르는 보고서를 발표했는데요. 보고서에 따르면 과학대학의 여섯 학과 중 세 학과가 학부생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성 교수진 비율은 20년 간 8%에 묶여 있었습니다. 또한 남성 교수보다 여성 교수들의 연봉과 실험실 초기 정착 비용은 더 적었습니다. 강의 부담은 더 컸고요. 또한 종신 재직권을 가진 여성 교수의 절반 이상은 자녀가 없었습니다. 홉킨스와 교수들은 보고서에서 "대부분의 차별은 무의식적으로 이뤄졌다"고 분석했습니다.

 

MIT는 오늘날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봉급을 받습니다. 여성이 학과장에 취임하는 미국에서 몇 안 되는 대학 중 하나가 됐습니다. 이에 대해 리타 콜웰은 "MIT 혁명이 효과가 있었던 이유는 학계 최초로 여성들이 함께 봉기해 변화를 촉기 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세계적인 미생물학자이자 미국 국립과학재단 최초의 여성 총재를 지낸 리타 콜웰이 60년 가까이 남성 중심의 과학계에서 과학자로 살아남기 위해 겪어야 했던 수 많은 차별에 관한 기록입니다.
세계적인 미생물학자이자 미국 국립과학재단 최초의 여성 총재를 지낸 리타 콜웰이 여성과학자로서, 살아남기 위해 겪어야 했던 수 많은 차별에 관한 기록입니다.

책 '인생, 자기만의 실험실'은 세계적인 미생물학자이자 미국 국립과학재단 최초의 여성 총재를 지낸 리타 콜웰이 60년 가까이 남성 중심의 과학계에서 과학자로 살아남기 위해 겪어야 했던 수 많은 차별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녀는 여성 과학자에게 소수의 여성과 영향력 있는 남성으로 채워진 매우 보수적인 성향의 기관으로 남아있는 과학이란 산업 속에서, 여성 과학자가 기회의 문을 여는 방법에 대해 조언해줍니다.

 

콜웰 박사는 "오늘 날에도 여전히 많은 남성과 여성이 높은 수준의 과학을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은 Y염색체에 새겨져 있다고 믿는다"며 "여전히 성차별과의 전쟁에서 여성의 승리는 요원하다"고 전합니다.

 

그녀가 덤덤하게, 그러면서도 가열차게 비집고 들어가는 과학계의 모순들. 우리가 이 모순들을 제대로 알아야 결국 바꿀 수도, 종국엔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참고자료##

 

  • 리타 콜웰, 샤론 버치 맥그레인, "인생 자기만의 실험실", 머스트리드 북(2021)
  • Richard Gunderman, "Sexism pushed Rosalind Franklin toward the scientific sidelines during her short life, but her work still shines on her 100th birthday", The Convers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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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6 11:44:27
좋은기사 감사합니다

^^ 2021-02-09 11:48:51
여기서 정치타령하는 애들은 부모님이 부재하신가. 옛날 과학계에선 여성차별이 공공연 했고 때문에 능력있는 과학자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대우 받았으나 그것을 극복하고 모든이에게 평등하고 열려있는 과학계를 위해 노력하여 바꿨다라는 말을 왜 정치적으로 받아들이는 거지. 진짜 고질적 정치병 환자들은 구제가 안되는구나. 무슨 여성관련한 기사만 나오면 메 ... 갈 타령인지 진심으로 정신과 상담 한번만 받아보는걸 추천한다. 특히 닉네임 '이*'하고 '김**'씨^^

이게 2021-02-04 19:07:00
이게 뭔소리래? 과학저널인지 정치저널인지 참.

ㅁㄴㅇㄹ 2021-02-13 18:07:12
요즘은 여자라는 이유로 장학금이 나오는 추세인데 진학을 잘 안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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