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우주여행 한 영장류
최초로 우주여행 한 영장류
  • 함예솔
  • 승인 2021.03.09 18:25
  • 조회수 6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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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월 31일, 미국의 케이프 커낼버럴에서 로켓이 발사됐습니다. 이 로켓 안에는 최초로 우주에 나간 영장류가 타고 있었는데요. 햄(Ham)이라는 이름의 침팬지가 그 주인공입니다.

최초로 우주여행한 침팬지, 햄. 출처: Wikimedia Commons
영장류 최초로 우주여행 한 침팬지, 햄. 출처: Wikimedia Commons

1950년대 과학자들은 인간이 지구 밖으로 나갔을 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견뎌낼 수 있는지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957년 소련은 개 라이카(Laika)를 스푸트니크 2호에 실어 지구 궤도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수시간 후 궤도로 재진입하던 위성에서 온도 조절 시스템 오작동으로 추정되는 과열이 발생했고 라이카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당시 소련은 개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한 반면 미국은 인간과 가장 유사한 동물인 침팬지를 이용한 실험을 준비했습니다. 특히,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0년대 말까지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고 공표하며 우주비행에 있어 침팬지는 더 중요해졌습니다.

 

우주비행사 침팬지의 생애

우주 비행 당일, 그의 조련사 중 한명과 함께. 출처: NASA
우주 비행 당일, 그의 조련사 중 한명과 함께. 출처: NASA

햄은 1957년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중앙아프리카 카메룬의 열대 우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포획된 후 뉴멕시코의 홀로만 공군기지(Holloman Air Force Base)에 있는 침팬지들을 위한 우주 비행 학교에 보내졌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보상으로 바나나를 주고, 실패할 경우 전기 충격을 가하며 침팬지들에게 레버를 당기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이 훈련을 통해 선택된 침팬지들은 생명유지 시스템을 시험 받았고, 우주 비행 중에 장비가 작동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햄은 뛰어난 소질을 보이며 비행 전날 밤, 로켓에 탑승할 최종 후보에 올랐습니다.

 

1961년 1월 31일, 햄은 머큐리 레드스톤 로켓(Mercury-Redstone rocket)의 노즈콘 안에 있는 캡슐에 묶여 우주로 발사됐습니다. 로켓은 시속 9,000km였으며 251km고도에 도달했습니다. 전체 비행은 발사에서부터 귀환까지 16분이 걸렸습니다.

 

16분 동안 내내 햄은 레버를 당길 수 밖에 없었는데, 약 50번 레버를 끌어당겼고 그 중 2번은 정확하게 수행하지 못해 전기 충격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햄은 체온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설치된 약 16cm가량의 직장용 체온계를 착용한 채 이 일을 수행했습니다.

 

햄은 6.6분동안 자유낙하 하며 대략 14.7g의 중력 가속도를 경험했는데 이는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큰 수치였습니다. 생체 의학 데이터는 햄이 가속과 감속 때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영장류 행동 전문가인 제인구달(Jane Goodall)은 16분간의 비행 중 녹화된 햄의 영상과 사진들을 보았는데요. 이에 대해 침팬지의 표정에서 이러한 공포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햄은 무중력 상태였을 때에는 오히려 침착했습니다. 그리고 이 비행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물론 위기는 있었습니다. 탑승하고 있던 캡슐이 바다에 착수한 후 바닷물로 가득 차기 시작하면서 거의 익사할 뻔했기 때문인데요. 다행히 헬리콥터 수색 구조대가 제시간에 도착해 햄은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햄이 로켓 밖으로 나왔을 때 보상으로 받은 먹이는 사과였는데요. 햄은 사과를 걸신 들린 듯 먹어 치웠습니다.

1961년 우주비행을 끝낸 후 겁에 질려있던 햄이 사과를 향해 손을 뻗고 있다. 출처: National Archives
1961년 우주비행을 끝낸 후 겁에 질려있던 햄이 사과를 향해 손을 뻗고 있다. 출처: National Archives

우주비행 임무를 마친 햄은 워싱턴 D.C의 한 동물원에서 20년 동안 혼자 살았는데요. 사람들은 그에게 편지를 보냈고, 일부 사람들은 햄의 지문으로 서명이 된, 동물원 직원들이 작성한 답변을 받기도 했습니다. 1980년에 햄은 침팬지 무리와 함께 살기 위해 다른 동물원에 보내졌는데요. 1983년 2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됐습니다.

햄이 캡슐에서 빠져나온 후 수색 구조대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출처: NASA
햄이 캡슐에서 빠져나온 후 수색 구조대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출처: NASA

사후에 그의 몸을 전시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이는 대중들의 강한 항의로 인해 무산됐습니다. 대신 햄의 사체는 사후에 검시됐는데요. 뼈에서 피부를 벗겨내 화장을 한 뒤, 뉴 멕시코 알라모고도에 있는 우주 명예의 전당에 안장됐습니다. 햄의 뼈는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의료박물관에서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침팬지 우주비행사가 남긴 유산

 

당시 침팬지 햄의 우주비행은 성별, 종에 있어서 흥미로운 시사점을 안겨줍니다. 당시 침팬지들이 홀로만 공군기지에서 훈련을 받는 동안 여성들은 우주 비행에서 제외됐는데요. 이에 대해 머큐리 13 미션의 우주비행사 후보였던 여성 우주비행사 제리 콥(Jerrie Cob)은 “뉴멕시코에 우주비행을 위해 침팬지를 훈련시키는 ‘침팬지 칼리지’라는 곳이 있다는 걸 신문에서 읽었을 때 좀 터무니 없었다”며 “나는 적어도 우주비행을 위해 여성들이 이 훈련을 받도록 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우주에 가게 된다면 그녀는 침팬지 중 한 마리를 대신할 것이라고도 말이죠.

머큐리 13 미션의 우주비행사 후보였던 여성 우주비행사 제리 콥. 출처: NASA
머큐리 13 미션의 우주비행사 후보였던 여성 우주비행사 제리 콥. 출처: NASA

이 밖에도 1960년대 머큐리 프로그램의 우주비행사들은 침팬지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면서, 그들의 남성성을 위협받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머큐리호 우주비행사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탐 울프(Tom Wolfe)의 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1983년 영화 ‘필사의 도전(The Right Stuff)’의 한 장면에서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오는데요. “우리들 중 누구도 그들이 원숭이를 보내서 한 남자의 일을 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에게 하려는 것은 원숭이의 일을 하도록 한 남자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이죠.

 

물론 햄의 우주비행은 햄이 동물 이상의 무언가를 가진 존재처럼 보이도록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햄은 여전히 인간을 위협할 정도는 아닙니다. 햄이 우주비행을 마친지 불과 10주 후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Yuri Gagarin)이 4월 12일, 지구 궤도를 돌면서 드디어 우주에 간 최초의 인간이 됐습니다. 이후 11월 26일, 침팬지 에노스(Enos)는 첫 지구궤도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동물을 인간 경험의 대용물로 우주에 보내지는 않습니다. 동물 실험의 윤리적 문제 때문이죠.

보이저 호에 실린 '골든 레코드(Voyager Golden Record)' 출처: NASA
보이저 호에 실린 '골든 레코드(Voyager Golden Record)' 출처: NASA

대신 우주에는 여전히 침팬지의 흔적이 남아있는데요. 태양계를 너머 더 먼 우주로 나아가고 있는 보이저 호의 골든 레코드에 들어있는 야생 침팬지의 울음소리입니다. 어찌됐든, 우주비행의 역사 속에서 침팬지는 중요한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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