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형성하는 원리 최초로 규명
기억을 형성하는 원리 최초로 규명
  • 이웃집과학자
  • 승인 2021.07.1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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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총장 이광형) 생명과학과 한진희 교수 연구팀이 무수히 많은 뉴런과 이들 사이의 시냅스 연결로 구성된 복잡한 신경 네트워크에서 기억을 인코딩하는 뉴런이 선택되는 근본 원리를 규명했습니다.

 

KAIST 생명과학과 정이레 연구원이 제1 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는 네이처 출판 그룹의 오픈 액세스(Open-access)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6월 24일 字로 게재됐는데요. (논문명: Synaptic plasticity-dependent competition rule influences memory formation)

 

과거의 경험은 기억이라는 형태로 뇌에 저장되고 나중에 불러옵니다. 이러한 기억은 뇌 전체에 걸쳐 극히 적은 수의 뉴런들에 인코딩되고 저장된다고 알려져 있죠. 하지만 이 뉴런들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원리에 의해 선택되는 것인지는 불확실합니다. 이 질문을 해결하는 것은 신경과학의 미해결 난제 중 하나인 기억이 뇌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규명하는 것으로서 학문적으로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에 막대한 사회, 경제적 파급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세기 훨씬 이전에 캐나다의 신경심리학자 도널드 올딩 헤브(Donald O. Hebb)는 그의 유명한 저서인 ‘행동의 조직화(The Organization of Behavior)’ (1949) 에서 두 뉴런이 시간상으로 동시에 활성화되면 이 두 뉴런 사이의 시냅스 연결이 강화될 것이라는 시냅스 가소성(synaptic plasticity)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이후 실험을 통해 학습으로 특정 시냅스에서 실제로 장기 강화(long-term potentiation, 이하 LTP)가 일어난다는 것이 증명됐습니다. 

강하게 서로 연결된 뉴런 집합체 형성을 통한 기억형성.  출처 : KAIST
강하게 서로 연결된 뉴런 집합체 형성을 통한 기억형성. 출처 : KAIST

이 발견 이후, LTP가 기억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생각돼 왔지만, LTP가 기억을 인코딩하는 뉴런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지금까지 규명된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를 규명하기 위해 생쥐 뇌 편도체(amygdala) 부위에서 자연적인 학습 조건에서 LTP가 발생하지 않는 시냅스를 광유전학 기술을 이용해서 특정 패턴으로 자극함으로써 인위적으로 그 시냅스 연결을 강하게 만들거나 혹은 약하게 조작하고 이때 기억을 인코딩하는 뉴런이 달라지는지 연구팀은 조사했습니다. 

 

먼저, 생쥐가 공포스러운 경험을 하기 전에 이 시냅스를 미리 자극해서 LTP가 일어나게 했을 때, 원래는 기억과 상관없었던 이 시냅스에 기억이 인코딩되고 LTP가 일어난 뉴런이 주변 다른 뉴런에 비해 매우 높은 확률로 선택적으로 기억 인코딩에 참여함을 발견했는데요. 하지만, 학습하고 난 바로 직후에 이 시냅스를 다시 광유전학 기술로 인위적으로 자극해서 이 시냅스 연결을 약하게 했을 때 더는 이 시냅스와 뉴런에 기억이 인코딩되지 않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시냅스 강도 조절 메커니즘에 의한 기억저장 뉴런 선택. 학습 직후 일부 뉴런의 시냅스 강도를 조작하면 기억은 그대로지만, 그 기억을 인코딩하는 뉴런이 변경됨. 출처 : KAIST
시냅스 강도 조절 메커니즘에 의한 기억저장 뉴런 선택. 학습 직후 일부 뉴런의 시냅스 강도를 조작하면 기억은 그대로지만, 그 기억을 인코딩하는 뉴런이 변경됨. 출처 : KAIST

반대로, 정상적으로 생쥐가 공포스러운 경험을 하고 난 바로 직후에 LTP 자극을 통해 이 시냅스 연결을 인위적으로 강하게 했을 때 놀랍게도 LTP를 조작해준 이 시냅스에 공포 기억이 인코딩되고 주변 다른 뉴런들에 비해 LTP를 발생시킨 이 뉴런에 선택적으로 인코딩됨을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시냅스 강도를 인위적으로 조작했을 때 기억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그 기억을 인코딩하는 뉴런이 변경됨을 증명한 것입니다.

 

한진희 교수는 “LTP에 의해 뉴런들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패턴이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경험과 연관된 특이적인 세포 집합체(cell assembly)가 뇌에서 새롭게 만들어진다”며 “이렇게 강하게 서로 연결된 뉴런들의 형성이 뇌에서 기억이 형성되는 원리임을 규명한 것”이라고 이번 연구 결과중요성을 설명했습니다.

 

#연구개요

1. 연구배경

기억은 뇌의 여러 영역에 걸쳐 분산되어 있으며, 특이적인 뉴런들과 시냅스들에 인코딩되어 있다. 이 뉴런들과 시냅스들에 물리적 변화가 일어나 기억이 저장되며, 추후 기억의 회상 과정 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이 뉴런들과 시냅스들을 기억 엔그램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기억 엔그램의 형성 과정은 학습 시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학습 시점에 CREB 단백질을 많이 발현하고 있거나 세포의 흥분성이 증가 된 뉴런이 주면의 그렇지 않은 뉴런들에 비해 기억 엔그램에 잘 참여한다는 것이 밝혀져 왔다.

시냅스 장기 강화 (Long-term plasticity, LTP)와 시냅스 장기 약화 (Long-term depression, LTD)와 같은 시냅스 가소성 (synaptic plasticity) 과정은 뉴런과 뉴런 사이의 시냅스의 전달 강도를 장기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기억을 저장하는 중요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으로 알려져왔다.

하지만 시냅스 가소성과 기억 엔그램이 형성되는 과정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기술적 한계로 인해 보고된 바가 없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광유전학적 기술을 이용하여, 시냅스 가소성을 조절하면서 기억 엔그램 형성의 변화 양상을 관찰하였다.

 

 2. 연구내용

본 연구팀은 기억의 형성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생쥐의 청각 공포 조건화를 이용했다. 중립자극인 소리와 무조건자극인 전기 충격을 동시에 주면, 이후 소리만으로도 생쥐의 공포 반응이 나오게 된다. 쉽게 강한 연합 기억을 만들 수 있고, 관련된 신경 회로도 잘 알려져 있어서 많은 연구자들이 학습 패러다임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프라이밍이라는 개념은 시냅스에 일어난 한 사건이 학습과 같이 추후 발생할 시냅스 장기 강화와 관련된 사건에 의해 더 쉽게 그 시냅스에 시냅스 장기 강화가 발생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본 연구에서는 프라이밍을 일으키는 광유전학적 자극 방식을 찾았고, 그 결과 청각 공포 조건화에 의해 특정 시냅스에서 시냅스 장기 강화가 일어나도록 유도하였다.

또한 프라이밍과 청각 공포 조건화 학습으로 인해 시냅스 장기 강화가 유도된 시냅스의 활성을 이후 기억 회상 시험에서 조작하였다. 그 시냅스를 활성화시켰을 때 청각 공포 기억이 회상되었고, 반대로 비활성화시키거나 약화시켰을 때는 정상적인 회상을 방해하였다. 이 결과는 프라이밍된 시냅스가 청각 공포 조건화 학습에 의한 청각 공포 기억 엔그램에 참여했음을 의미한다.

공초점 형광 현미경 이미징을 통해서 기억 회상 시 활성화되는 뉴런들을 관찰하였다. 이는 다른 그룹에서도 기억 엔그램을 시각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되어온 방법이다. 이를 통해 프라이밍 자극을 받은 뉴런들이 그렇지 않은 이웃한 다른 뉴런들보다 기억 회상 시 더 많이 활성화되었음을 관찰하였다. 이 결과는 시냅스에 주어진 프라이밍 자극이 시냅스 전 뉴런으로 기억 엔그램에 참여하게 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학습 직후 시냅스 장기 강화를 약화시키는 자극을 가했을 때, 기억 회상 시 활성화되는 뉴런들의 패턴이 프라이밍을 하지 않은 경우와 유사하게 관찰되었다. 반대로 프라이밍 없이 학습 직후에 시냅스 장기 강화를 유도했을 경우에는 프라이밍 자극이 주어졌을 때와 유사하게 시냅스 장기 강화가 유도된 뉴런들이 그렇지 않은 뉴런들보다 기억 회상 시 더 많이 활성화되었다. 이 결과는 학습 직후의 시냅스 장기 강화 여부가 기억 엔그램에 참여하는 뉴런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임을 의미한다.

 이상의 모든 이미징 실험에서 여러 자극 조건을 주더라도 기억 회상 시 활성화되는 뉴런의 개수는 일정했다. 이는 기억 엔그램의 크기는 변하지 프라이밍이나 시냅스 강화 여부에 따라 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3. 기대효과

 본 연구를 통해 기억 엔그램에 참여하는 뉴런들이 어떻게 결정되고, 언제 결정되는지에 관한 신경과학적 이해가 증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억 형성 과정에 대한 증진된 이해를 기반으로 기억 형성 과정에 이상이 생긴 정신 질환인 치매나 조현병의 치료법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용어 설명

1. 편도체 (Amygdala)

대뇌의 측두엽 쪽 변연계에 존재하는 아몬드 모양의 뇌 부위이다. 감정 조절과 공포 및 불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정과 관련된 기억을 인코딩하는 역할을 한다.

2. 시냅스 가소성 (Synaptic plasticity)

뉴런과 뉴런을 이어주는 시냅스에서 신호 전달 강도가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시냅스의 전달 강도의 강화가 지속되는 장기 강화 (LTP, long-term plasticity), 반대로 전달 강도가 약화되는 장기 약화 (LTD, long-term depression) 등이 포함된다. 이 중 장기 강화(LTP)는 시냅스에서 기억을 저장하는 메커니즘으로 여겨진다.

3. 광유전학 (Optogenetics)

빛을 이용하여 뉴런의 활성을 조절하는 신경생물학 기술이다. 채널로돕신(channelrhodopsin)이나 할로로돕신(halorhodopsin)과 같이 빛에 의해 작동하는 광-반응 단백질을 동물의 뇌세포에 발현한 뒤, 실시간으로 빛을 조사하여 뉴런의 활성을 조절하는 기술이다.

4. 기억 엔그램 (Memory engram)

기억을 표상하는 뉴런들의 네트워크. 뉴런과 뉴런의 연결 부위인 시냅스로 구성되어 있다. 

5. 청각 공포 조건화 (Auditory fear conditioning) 

원래는 공포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중립자극인 소리와 공포 반응을 유발할 수 있는 무조건자극인 전기 자극을 동시에 줌으로써 두 자극 간의 연합 기억이 생기게 하는 행동 패러다임이다. 조건화 학습 이후 소리만으로도 공포 반응이 유발되며, 이때 소리를 조건자극이라 한다.

6. 프라이밍 (Priming)

한 시점의 시냅스에서의 사건이 뒤이어 일어나는 사건에 영향을 미쳐 시냅스 장기 강화가 일어나기 쉽게 만드는 현상으로, 여러 뇌 영역에서 관찰되는 시냅스 메타-가소성(metaplasticity)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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