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좌우〮 분리하면 어떻게 될까
뇌를 좌우〮 분리하면 어떻게 될까
  • 함예솔
  • 승인 2021.10.12 23:55
  • 조회수 1619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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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반구와 우반구 잇는 '뇌량' 절단

 

1962년 뇌전증으로 고통받던 48세의 남성 W. J.는 뇌량 절단술을 받았습니다. 뇌전증 발작 증상 때문이었습니다. 뇌량은 뇌의 좌반구와 우반구를 이어주는 인체 구조물입니다. 이 수술이 시행될 당시 학자들은 뇌량이 두 반구 사이에서 온갖 학습적 전이가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을 알아낸 상태였습니다.

뇌의 좌반구와 우반구를 이어주는 뇌량. 출처: 책 '뇌 과학의 모든 역사'
뇌의 좌반구와 우반구를 이어주는 뇌량. 출처: 책 '뇌 과학의 모든 역사'

이 수술은 인지 신경과학자인 마이크 가자니가(Mike Gazzaniga)가 진행했습니다. 수술 6주 후 가자니가는 W. J.를 대상으로 연구를 시작합니다. 뇌량 절단술을 받은 환자 연구는 근본적인 뇌 작동 원리를 발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죠.

시야의 왼편에 망막신호들은 뇌의 우반구로, 시야의 오른편 신호들은 뇌의 좌반구로. 출처: Wikimedia Commons
시야의 왼편에 망막신호들은 뇌의 우반구로, 시야의 오른편 신호들은 뇌의 좌반구로. 출처: Wikimedia Commons

처음에는 이 환자의 왼쪽 또는 오른쪽 시야에만 깜빡이는 그림을 띄워 한쪽 반구의 뇌만 이를 인지하도록 하는 단순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참고로 시야의 왼편에 속하는 망막신호들은 뇌의 우반구로, 시야의 오른편에 속하는 신호들은 뇌의 좌반구로 보내집니다. 뇌의 어느 한쪽에만 시각적 자극을 가하는 작업이 가능한 이유입니다.  

첫 번째 검사에서 가자니가는 W. J.의 오른쪽 시야에 상자를 짧게 보여줬습니다. 그러자 W. J.는 상자가 보인다고 답했습니다. 오른쪽 시야에만 상자를 보여줬기 때문에 이는 좌반구에서만 탐지할 수 있었는데요.

 

그렇다면 왼쪽 시야에만 상자를 보여줬을 땐 어땠을까요? W. J.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요?

 

언어능력, 좌반구만 전담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뇌의 좌반구가 언어통제를 담당한다는 사실입니다. 덕분에 좌반구가 기능하는 오른쪽 시야로 상자를 보여준 후 질문했을 땐 가자니가가 물음에 답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가자니가는 이러한 현상의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우반구에 언어 통제를 담당하는 영역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뇌의 우반구에서는 정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인지를 말입니다.

 

이번에는 사물들이 그려진 카드 한 벌을 그에게 보여주며 화면에 제시된 그림이 어떤 것이었는지 추측해 손가락으로 가리켜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자 W. J.는 우측 뇌가 통제하는 왼손으로 자신이 화면에서 보았던 그림을 똑바로 가리켰습니다. 이는 W. J.의 뇌 각 반구가 서로 완전히 독립된 존재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한쪽은 말을 할 수 있고 다른 쪽은 할 수 없지만 양쪽 다 듣고, 보고, 주어진 사물을 인식할 수 있으며 물음에 적절한 답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언어능력은 좌반구에만 국한된 걸까요? 우반구도 이따금씩 글로 적힌 단어들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환자는 단순한 질문에 우반구를 통해 언어적으로 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뇌량을 제거했음에도 뇌의 특정 부위에선 정보 간 전이가 일어나는 듯 보였습니다.

언어능력은 좌반구에만 국한될까? 출처: AdobeStock
언어능력은 좌반구에만 국한될까? 출처: AdobeStock

한편 W. J.는 수술 후 일상에서도 신기한 일들을 겪었는데요. 처음 몇 달 동안 W. J는 이따금씩 두 쪽 뇌 사이에서 갈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가 바지를 입거나 벨트를 차려고 할 때 두 손이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던 건데요. 실험에 참여할 때에도 두 손이 서로 과제를 마치려고 경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종종 다른 쪽 손이 답하는 것을 막는 일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다행히 이러한 갈등은 점차 잦아들게 됐고 W. J.는 이내 정상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우반구가 한 일을 좌반구는 모른다?!

N. G 여성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보고싶다면, 화면을 클릭해 해당 링크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출처: vimeo
N. G 여성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보고싶다면, 화면을 클릭해 해당 링크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출처: vimeo

가자니가는 N. G.라는 여성 환자를 대상으로 또 하나의 실험을 진행했는데요. 여성 환자의 왼쪽 시야에 누드 사진을 짧게 보여줘 우반구가 이를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좌반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부끄러운듯 히죽거리더니 끝내 웃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가자니가가 그녀에게 왜 웃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N. G는 대답합니다. 

 

모르겠어요. 선생님 기계가 참 웃기게 생겼네요

좌반구와 우반구를 분리한다는 것은 결국 마음을 분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양측의 뇌는 서로 약간 다른 능력과 관점을 가지고 각각의 뇌 반구는 그 자체만으로 마음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죠. 

좌반구와 우반구를 분리하면?! 출처: youtube/veronchiquita
좌반구와 우반구를 분리하면?! 출처: youtube/veronchiquita

N. G. 사례의 경우 좌반구는 농담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우반구는 이를 눈치챘고 웃음을 유발한 듯 보였습니다. 경험은 좌반구를 통해 접수됐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정서 반응을 우측 뇌가 만들어내는 듯 보였습니다.

 

가자니가는 P. S.란 젊은 남성 환자도 관찰했습니다. ‘일어서시오’, ‘스트레칭 하시오’, ‘웃으시오’ 같은 지시사항이 적힌 그림을 P. S.의 우반구에 제시하면 P. S.는 지시에 따랐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왜 그렇게 행동하냐고 묻자 그의 좌반구는 변명거리를 꾸며내 답했습니다. 가령, 스트레칭이 필요했다든지, 연구자들이 재미있다고 느꼈다고 말이죠.

 

또한 각각의 반구에 서로 다른 그림을 동시에 제시하고 P. S.에게 그와 관련된 카드를 짚도록 하자 양손이 각기 적합한 카드를 짚어냈습니다. 그에게 왜 왼손으로 그 카드를 골랐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우반구에 제시된 그림을 보지 못했던 좌반구는 두 카드 사이의 그럴싸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 두루뭉실하게 설명하려 애썼습니다.

 

N.G.나 P. S. 환자의 사례를 통해 가자니가는 좌반구에서는 우반구에서 이뤄지고 있는 추론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설명을 지어내려고 애쓰고 있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이에 대해 가자니가는 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인지 신경과학자 마이크 가자니가(Mike Gazzaniga). 출처: UC SANTA BARBARA
인지 신경과학자 마이크 가자니가(Mike Gazzaniga). 출처: UC SANTA BARBARA

 

 

 

“좌반구에게는 아무런 단서도 없었지만 모르겠다고 답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추측하고, 얼버무리고, 합리화하고, 인과관계를 찾으려 했지만 결국 언제나 상황에 적합한 답을 지어냈다. (…) 이것이 바로 우리의 뇌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이다. 뇌의 다양한 영역들과 주변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전해받고는 이를 종합하여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책 <뇌 과학의 모든 역사>는 천재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뇌를 규명하고 뇌의 기능을 증명하기 시작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행한 수 백년 간의 노력을 담아냈습니다. 과학자들은 뇌에 대해 어디까지 알아낸 걸까요? 어떤 실험을 설계해 뇌의 미스터리를 풀려고 시도했을까요?

뇌 과학의 모든 역사
뇌 과학의 모든 역사

뇌가 정말 기계라면 일반적으로 다른 기계들의 작동 기법을 알아내려 고 할 때 사용하는 방법 이외의 방식으로 작동 기법을 알아내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따라서 다른 모든 기계를 대할 때와 같은 방식만이 남게 된다. 즉 전체를 조각조각 분해해서 이들 각각이 어떤 일을 하는지 보고, 하나로 합쳐졌을 때에는 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 니콜라우스 스테노Nicolaus Steno, 《뇌에 관하여On the Brain》, 1669 

-책 '뇌 과학의 모든 역사' 中

 


##참고자료##

  • 푸른숲, 매튜 코브(Matthew cobb), 뇌 과학의 모든 역사(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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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우울 2021-10-14 09:25:02
정성껏 잘 쓴 기사네요.

니모닉코더 2021-10-14 23:42:43
마이크(Mike) 가자니가가 아니라 마이클(Michael) 가자니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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