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과학자 3인방, '차별•편견' 극복했다
By 강지희
2016-10-14 16:55:26 3375
노벨상 2관왕 마리 퀴리

Marie_Curie-cropped <마리 퀴리 출처: The Mary Sue>


<위대한 여성 과학자 퀴리 부인>, <라듐을 발견한 마리 퀴리> 등의 위인전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마리 퀴리는 '라듐을 발견한 여성 과학자이자 최초로 노벨상을 두 번 받은 과학자'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위대한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우뚝 서기까지 여성으로서 만만찮은 시련을 극복해야 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니콜라 비트코프스키의 책 <딴짓의 재발견 – 두 번째 이야기>를 보면 그녀는 첫 번째 노벨상을 받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남편 피에르 퀴리와 라듐을 발견하는데 성공했지만, 정작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는 그녀의 남편의 이름만 거론되었습니다. 하지만 스웨덴 수학자 괴스타 미타그레플러의 반발 덕분에 마리 퀴리는 남편과 함께 노벨상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0601-matte <마리 퀴리를 조롱한 기사 출처: Marie Curie and the science of radioactivity>


남편이 죽은 후 그녀의 시련은 더욱 커졌습니다. 바바라 골드스미스의 책 <열정적인 천재 – 마리 퀴리>에는 그녀와 과학자 폴 랑주뱅 사이의 스캔들이 소개되는데요. 그녀는 랑주뱅과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편지가 랑주뱅의 부인 손에 들어가면서 언론에 공개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리 퀴리는 사람들에게 ‘타락한 여성’, ‘가정 파탄의 주범’ 그리고 ‘감히 남성 회원만 있는 과학 아카데미에 들어가려 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마리 퀴리는 언론과 사람들의 협박에 시달리면서 극심한 우울증까지 앓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딸 에브 퀴리의 책 <마담 퀴리>에 따르면 그녀는 건강이 나빠지는 데도 폴로늄의 방사에 대한 연구를 강행했고 라듐을 분리해 측정하는 방법을 발견합니다. 이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노벨상 최초로 상을 두 번이나 받은 과학자가 된 겁니다.

 

대담한 과학자 샤틀레 부인

608f886638_emilieduchatelet <샤틀레 부인의 초상화와 프랑스어로 번역된 프린키피아 출처: Sundays with Sam>


마리 퀴리 이전에도 성별 때문에 받는 시대적 압박을 이겨내고 연구에 매진한 여성 과학자들이 있습니다. 에밀리 뒤 샤틀레 부인은 과학, 여성의 권리에 관심이 많은 과학자였습니다. 전에 언급한 니콜라 비트코프스키의 책 <딴짓의 이야기 – 두번째 이야기>는 그녀를 뉴턴이 자신의 이론을 정리한 <프린키피아>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샤틀레 부인은 대담한 과학자였습니다.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책 <마담 사이언티스트>에서는 그녀가 살던 당시의 프랑스는 뉴턴의 과학이 엄청난 유행을 타고 있었다고 저술합니다. 동시에 프랑스가 적대하던 과학자가 있었으니 바로 뉴턴의 라이벌이자 ‘활력’의 개념을 넣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는 이론에 큰 기여를 한 라이프니츠였습니다.

샤틀레 부인은 라이프니츠의 이론을 지지했습니다. 나아가 그녀는 라이프니츠와 뉴턴의 생각을 통합하려 했다고 합니다. 홍성욱 박사의 <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에서는 프랑스의 과학 아카데미 회원들은 이런 그녀의 생각을 ‘여자의 변심’ 또는 ‘여성의 변덕’이라고 비난했죠. 그녀의 연인이자 뉴턴의 이론을 지지하던 철학자 볼테르는 ‘배신’이라며 분노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과학 아카데미의 서기는 그녀를 내심 낮잡아 보며 그녀에게 라이프니츠 이론의 오류를 지적하는 편지를 썼다고 하는데요. 오히려 그녀는 그의 주장이 왜 잘못되었는지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지적했습니다. 그녀는 수많은 비난을 무릅쓰면서도 죽을 때까지 자신의 연구와 저술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다시 <마담 사이언티스트>로 돌아가볼까요. 샤틀레 부인이 출판한 책 <뉴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는 그녀 이후의 과학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이론을 조합한 그녀의 책은 19세기의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이론부터 20세기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등의 과학에 기본적인 연구 도구로 쓰였다고 합니다.

 

혜성 같은 여자 캐롤라인 허셜

f5f2f9970d5849401f9b69c6244f0532 <별을 관측하고 있는 허셜 남매 출처: 핀터레스트>


이광식 박사의 책 <천문학 콘서트>은 윌리엄 허셜이 천왕성과 태양계의 운동, 그리고 우리 은하의 구조를 발견한 천문학자라고 전합니다. 허셜은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진행한 수많은 연구와 관찰을 토대로 다수의 성운과 혜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가 이런 활약을 하는 데에는 옆에서 항상 그를 도와주는 여동생이자 조수인 캐롤라인 허셜의 공이 컸습니다.

리처드 홈슨의 책 <경이의 시대>에 따르면 캐롤라인 허셜은 천연두로 얽은 얼굴과 작은 키, 그리고 조용한 성격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는 ‘너는 결혼할 가망이 없으니 가족을 부양하면서 살라.’는 말씀을 하셨고, 어머니와 큰 오빠는 그녀를 때리고 굶기는 등 구박을 하고 하인 취급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별을 관측하는 것을 엄청 좋아해 둘째 오빠이자 천문학자인 윌리엄 허셜과 같이 천문학 연구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허셜과 몇 시간 동안 별을 관측하면서 허셜이 불러주는 데이터를 꼼꼼히 기록하고 관찰 내용을 상세한 표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정리한 데이터들을 오빠에게 주면서 허셜이 성운과 행성 천왕성을 발견하는 데 큰 기여를 해주었다고 나옵니다.

그러다가 1786년 8월 1일, 그녀는 마침내 혼자 힘으로 큰곰자리와 머리털자리를 지나는 혜성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고 했습니다. 런던의 천문학자들은 ‘여성이 발견한 최초의 혜성’이라며 그녀를 영국 천문학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녀가 운이 좋아 혜성을 찾았다고 여겼지만 그녀는 1788년 12월에 혜성을 또 발견하면서 그녀의 연구가 운이 아닌 실력이라는 것을 증명했고 금상첨화로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명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천문학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죠. 그녀는 1786년부터 1797년까지 8개의 혜성을 발견했고 1835년에는 런던 왕립학회의 첫 여성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고 합니다.

female-scientist <출처: WEBNODE>


여성의 과학 개입이 거의 금기시 되었던 과거인데 지금도 여성이 과학자를 한다고 하면 어색하다고 여기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성별과 관계 없이 실력으로 인정받는 불굴의 개척자들이 나타나기 마련이죠. 남녀 구분 없이 더 많은 신진 과학자가 자신만의 활약을 펼치고 과학계에 한 획을 긋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학생 기자단 강지희(jihee0478@scientist.town)

이웃집과학자 명예의 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