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달 '38만 4,400km' 사이를 채우는 예술
지구와 달 '38만 4,400km' 사이를 채우는 예술
  • 이웃집편집장
  • 승인 2017.08.28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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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출처: pixabay

원제 : 마음 속에 달 매달기

 

하늘이 맑은 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보름달을 보면 이상하게 기분이 설렌다. 보름달에 나도 모르게 설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난히 밝은 밤길이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에 마음이 설렐 수도 있고, 한 달에 하루밖에 보지 못 하는 보름달을 운 좋게 봤다는 마음에 설렐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달을 보는 경험이 내게 유난히 설레는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달은 늘 머리 위에 떠 있지만, 실제로 도달할 수 없는 '이 곳 너머'의 세계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본다는 것은 다른 세계를 엿보는 일과 같다. 게다가 보름달이 뜰 때면, 달의 이런저런 음영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달은 땅과 가까워진다. 때문에 보름달을 보면 무척이나 설레는 것이다.

 

샤갈의 <Circus Rider> 출처: http://www.artic.edu/aic/collections/artwork/118614

어린 시절의 나는 달과 별이라는 '이곳 너머'의 세계에 이끌려 과학자의 꿈을 품었고, 결국엔 (달과 별과는 상관없는 분야를 연구하지만, 어쨌든) 물리학자가 되었다. 물론 '이곳 너머'에 이끌린 사람은 내가 처음은 아니었다. 역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너머'에 이끌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달이라는 '이곳 너머'에 이끌린 사람들은 소설을 썼고(쥘 베른, <지구에서 달까지>), 그림을 그렸고(샤갈, <The Circus Rider>), 음악을 만들었으며(드뷔시, <Clair de Lune>), 달로 유인 우주선을 보냈다(20세기 NASA의 과학자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영국 작가 서머싯 몸 또한 '이곳 너머'에 이끌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의 대표작 <달과 6펜스>에서 달은 예술가의 운명에, 6펜스 동전은 소시민의 평범한 삶에 비유된다. 달이 '이 곳 너머'의 상징임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비유이다. 서머싯 몸이 자신 내면의 예술가를 극한까지 몰아붙여서 낳은 인물이 바로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다. 

 

스트릭랜드는 극단적으로 달을 쫓는 사람이다. 자신의 달을 쫓기 위해 윤리와 도덕까지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아내를 버리거나, 은인의 아내를 탐하거나. 그의 앞에서는 사회의 어떤 잣대도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1]

 

소설 '달과 6펜스' 출처: Wikimedia Commons

그렇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 스트릭랜드는 정을 주기가 어려운 인물이다. 어떻게든 독자의 애정을 얻을 수밖에 없는 주인공이라는 특권적 위치에 있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그에게 깊은 정을 주지 못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윤리가 그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사실 서머싯 몸은 독자의 사랑을 받으려고 스트릭랜드를 창조한 것은 아니다. <달과 6펜스>의 여러 가지 소설적 장치로 미루어볼 때, 스트릭랜드는 눈가리개를 하고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경주마처럼 달을 향해 달리는 인물의 상징이다. 작가 서머싯 몸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스트릭랜드라는 비범한 천재조차도 그가 마음속 하늘에 달아놓은 달에 닿기 위해서는 경주마처럼 달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예술에 닿고 싶다면, 최선을 다해 예술을 위해 달려야 한다. 경주마처럼 시야 안에 예술 이외의 것은 놓지 않아야 한다.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 출처: waxingapocalyptic.com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평균 38만 4,400km라고 한다. 그러니까, 땅에 떨어져 있는 6펜스 동전과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달 사이의 거리가 그만큼 된다는 것이다. 38만 4,400km는 무척 먼 거리이다. 지구에서 쏘아 보낸 레이저 빛이 다시 되돌아오는 데에도 2.564초나 걸리는 거리이고, 지구의 크기가 1만 2,700km이니까 지구와 달 사이에는 지구를 30개나 넣고도 공간이 약간 남는다. 

 

우리의 발이 땅에 묶여 있고, 머리 위 달이 우리가 닿으려는 이상 또는 예술이라면, 우리는 그곳에 닿기 위해 그 먼 거리를 아등바등 여행해야 한다.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의 경우, 달에 닿기 위해 예술 이외의 모든 것을 외면하고 필사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달과 6펜스>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 <달과 6펜스>는 비범한 천재를 경외하기 위해 쓰인 소설이 아니라, 달에 닿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한 인물에 대한 동정심과 동병상련에서 쓰인 소설이다.

 

달에서 땅까지, 38만 4400km의 추락

 

<달과 6펜스>의 소설적 세계에서 '지금 여기'의 우리의 삶으로 돌아오자. 달에 닿기 위한 스트릭랜드의 몸부림을 생각하면, 우리가 달에 닿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그것은 소설적 과장이라고 치자. 만약 우리가 어떻게든 달에 닿을 수 있다고 가정할 때, 더 심각하게 다가오는 사실은 서울의 하늘에서 달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빌딩들이 시야를 가리고, 빽빽한 가로등이 달빛을 가린다. 그도 아니라면 내가 달을 보려고 고개를 든 날이 하필이면 구름 낀 흐린 날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비참한 현실들이 내 눈 앞을 가린다. 꿈을 꾸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누군가만 누릴 수 있는 특권처럼 생각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다. 달을 보지 못 하는데 어떻게 달을 꿈꾸고 그것을 향해 달릴 수 있다는 것일까. 그런가 하면, 6펜스 동전이 달인 척 하늘에 매달려 우리를 미혹할 때도 있다. 달빛에 매혹돼서 열심히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가 매혹된 것이 달빛이 아니라 6펜스 동전에 비친 가로등 불빛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도 있다. '지금 여기' 우리의 하늘은 무척이나 초라하고 적막하다.

 

6펜스 출처: fotolia

나의 경우, 학자로서의 삶이 달이라면, 서른 살 청년으로서의 삶은 6펜스 동전이다.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는 일은 늘 좋은데, 고개를 내려 땅에 떨어진 6펜스를 보면 달과 땅의 거리를 직면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이곳 너머 달의 세계를 보는 일이 현실을 외면하는 팔자 좋은 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달을 바라보고 그곳을 가리켜야 한다. 달을 가리키는 사람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달을 꿈꾸지 않는다. 예술가와 학자들이 달을 가리키는 사람일 것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달을 보는 이에게 달을 가리키는 일을 멈추고 땅에 떨어진 6펜스를 주우라 한다. 달을 가리켜야 할 이들이 6펜스를 가리킬 때, 하늘에는 달 대신 동그란 6펜스 동전이 반짝일 뿐이다. 보름달 대신 6펜스 동전이 하늘에 뜨는 밤하늘 아래, 달을 가리켜야 하는 누군가는 내가 달을 가리켜야 할지, 6펜스 동전을 주워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달을 가리키자니 6펜스를 주우라는 말을 거부하기 어렵고, 달을 외면하자니 마음에 품었던 꿈이 그들을 찌른다. 그렇게 그들은 매일매일 달과 지상에 놓인 6펜스 사이 38만 4,400km의 거리를 추락한다.

 

비단 예술가와 학자와 같은 이들만 38만 4,400km의 추락을 연거푸 겪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나름의 꿈을 꾸었고, 우리 마음속 하늘에 그것을 달로서 매달아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달을 쳐다보고, 다시 지상에 놓인 6펜스를 쳐다볼 때마다 우리 모두는 38만 4,400km의 추락을 겪는다. 비참한 추락이 오늘날 우리의 일상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곳 너머'에 대한 우리의 꿈을 마음속에 달로 매달아 놓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달로부터 지상까지 추락하는 일이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달이 뜨지 않는 밤의 정적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는 매일매일의 추락은 지독한 밤의 정적을 물리치는 값이다.

 

 

각주

 

[1] 하지만 그가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겠다며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아내를 버리고 가출하기 전까지 스트릭랜드는 누구보다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마 그는 참고 참는 사람이지만, 한계에 달하면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의 정수리 위에 걸려 있는 달을 외면하고 외면하려 평생을 노력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달을 외면하기 어려워졌을 것이고, 그때부터 그는 달을 맹목적으로 쫓기 시작했을 것이다.

 

 

[2] 사실, 학자와 예술가가 모두 창조하는 이들이라고 하나로 묶는 것은 예술가들에게 조금 미안한 일이다. 어쨌든 학자들은 그들이 가진 실용성으로 인해 예술가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고, 연극을 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예술가들에겐 달과 6펜스 사이의 추락이 더욱 빈번할 것이다.

 

 

<외부 기고 콘텐츠는 이웃집과학자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물리학자 J(seokjaeyoo.nano@gmail.com)

 빛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사랑하는 예술과 과학 이야기

원문 출처 : https://brunch.co.kr/@beyond-her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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