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메뚜기 박사, 거저리에 눈 떠
비정규직 메뚜기 박사, 거저리에 눈 떠
  • 함예솔
  • 승인 2018.12.31 06:55
  • 조회수 357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메뚜기여 나에게와라~~ 출처: 책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메뚜기여 나에게 오라. 출처: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아프리카 모리타니에 오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실제로 메뚜기떼 보면 이런느낌. 출처: 유튜브/BBC Earth
이렇게 나에게 올 줄 알았는데. 출처: 유튜브/BBC Earth

 

'메뚜기에게 먹히고 싶다'는 어릴적 꿈을 이루기 위해 서아프리카 모리타니에 왔다. 그런데 이게 웬걸, 60년 전 모리타니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래, 가장 극심한 가뭄이라니! 야생 메뚜기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늘 이런 식이지. 천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어버리는 똑똑한 메뚜기 녀석들.

 

먹성좋은 메뚜기들. 출처: 유튜브/BBC Earth
이런 메뚜기 때를 원했는데. 출처: 유튜브/BBC Earth

 

1987년부터 1988년까지는 사상 최대급의 사막 메뚜기떼가 출현해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큰 피해를 입혔다. 엄중한 사태라고 판단한 독일은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를 개시해 모리타니에 연구팀을 파견했다.

 

그런데 연구팀이 현지에 입국하자 메뚜기들은 바로 자취를 감췄다. 연구팀은 대규모 메뚜기떼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허탕만 친 채 입국할 수 밖에 없었다. 거액의 예산을 쓰고도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지 못한 연구자들은 정부의 신뢰를 잃었다. 지원도 끊겼다. 메뚜기가 메뚜기의 약점을 폭로할 수 있는, 메뚜기의 최대의 천척인 연구자를 피해 숨어버렸기 때문일까.

 

메뚜기, 이렇게 자세히 봐봤어? 출처: 책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뭘 보슈? 메뚜기 처음 보슈? 출처: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내게 허용된 모리타니 체류 허용 기간은 2년. 이 기간 안에 박사 후 연구원인 나는 곤충학자로서의 성과를 내야 한다. 그래야 비정규직에서 탈피해 일본 연구 기관에 취직도 하고 곤충학자로 먹고 살 수 있다. 통장 잔액은 앞을 길어야 1년. 내게도 이 대가뭄은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그런데 메뚜기가 없다. 메뚜기를 사육할 케이지를 30만 엔(한화 약 303만 원)이나 들여 만들었지만, 모리타니의 염분 가득한 바닷바람의 위력에 철망은 단 3개월 만에 모두 삭아버렸다. 

 

삭아버린 케이지 앞에서 망연자실한 마에노 고타로. 출처: 책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삭아버린 케이지 앞에서 망연자실한 마에노 고타로. 출처: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메뚜기도, 케이지도 없다. 방법은... 

 

가만, 그런데 꼭 메뚜기여야 해? 나는 우연히 메뚜기를 연구하기 시작해 지금껏 한 길만 걸어왔을 뿐이야. 여기 아프리카엔 메뚜기 말고도 흥미로운 곤충들이 많잖아! 외도뿐이다.. 삐뚤어질테야. 

 

메뚜기에서 거저리(darkling beetle)로 시선을 옮기다

 

거저리..  출처: 책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거저리 무리의 놀라운 비주얼. 출처: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지난 메뚜기 탐사 때 거저리를 한 양동기 가져왔다. 거저리는 일본 학회 발표에서도 관련 연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메뚜기와 달리 개체수는 많다. 구덩이 함정만 파도 천마리 단위의 거저리는 포획할 수 있다. 게다가 거저리는 채소든 곤충 사체든 가리지 않고 먹는다. 무엇보다 거저리는 메뚜기와 관련 있는 곤충이다. 메뚜기 퇴치를 위해서는 살충제를 살포하는데, 살포 후 살충제가 환경오염에 미친 정도를 거저리 수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저리는 날개가 퇴화해 날 수 없기 때문에 이동 범위가 한정돼 있다.

 

가만, 그런데 이 녀석들의 암수 판별은 대체 어떻게 하는거야? 

 

어머.. 너네 뭐하니?  출처: 책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어머.. 너네 뭐하니? 출처: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곤충 연구의 기본은 암컷과 수컷을 판별해 실험하는 것이다. 활동하는 시간대나 장소가 다른 경우가 있고, 특히 성충의 경우 교미를 하기 때문에 암수의 행동에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 대상인 거저리는 성충이므로 암수 구분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대체 거저리는 어째서 외관상 암수 구분이 불가능한 거야! 교미 중인 커플을 떼어내 매번 해부할 수도 없고 말이지.

 

일단 키워보자. 거저리에게 먹이로 스파게티와 채소 그리고 고양이 사료를 줬다. 공복으로 돌아다니던 거저리들은 스파게티를 배불리 먹으면 더 이상 돌아다니지 않고 그 자리에서 게으름을 피웠다. 그 중에선 과식해서 괴로운 듯 발을 움찔거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걱정이 돼 거저리를 집어 올려보니, 어머나!

 

평소에는 몸 안에 쏙 들어가있던 생식기가 밖으로 살짝 불거져 나왔다. 좀 더 자세히 보니 엉덩이 뿐 아니라 머리도 돌출돼 있었다. 머리를 몸 쪽으로 밀어넣으니, 엉덩이에서 생식기가 완전히 빠져나왔다. 배가 터질만큼 과식한 거저리가 먹이로 인해 부푼 내장 때문에 생식기나 머리를 밀어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거저리 자웅 판별법!  출처: 책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거저리 자웅 판별법! 출처: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곧바로 이 방법을 400마리에 적용해보니 거의 100% 확률로 암수 판별이 가능했다. 스파게티를 먹었을 땐 98%, 쌀을 먹었을 땐 98.1%였다. 놀라운 점은 그 중 암컷이 90%를 차지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렇게 외도의 맛을 알게 된 나는 거저리로 논문으로 쓸 수 있었다. 시간이 없는 거저리 곤충학자들이 거저리의 성별을 가리는 데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외도의 맛을 진정으로 알아버린 마에노 올드 고타로.  출처: 책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외도의 맛을 진정으로 알아버린 마에노 올드 고타로. 결국 논문까지 써버리다. 

 

메뚜기가 나타났다

 

메뚜기 샤워란 이런거지!  출처: 책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메뚜기 샤워란 이런거지! 출처: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드디어 고대하던 메뚜기 시즌이 도래했다. 거저리는 저리 던져놓고 본게임을 시작할 때다. 메뚜기 떼에 파묻히고 싶었던 어릴적 꿈을 실현할 시간이 왔다. 나는 간단한 미션을 재개해 모리타니 전역을 바쁘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메뚜기 떼가 나무에 달라 붙어있는 모습.. 징그럽다..  출처: 책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어쩜 이리 사랑스러운 완두콩 같을까. 출처: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검은 그림자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메뚜기 떼가 몰려왔다. 심장이 고동쳤다. 눈앞의 거대한 사구를 크게 돌자, 셀 수 없을 만큼의 메뚜기 떼가 검은 구름처럼 음산하게 곡선을 그리며 이동하고 있었다. 메뚜기 떼는 해안을 따라 날고 또 날았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대군이 진로를 바꿔 저공비행으로 정면에서 우리를 향해 돌진했다.

 

메뚜기 대군이 날아온다!  출처: 책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메뚜기 대군이 날아온다! 출처: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이때를 기다려왔다. 나는 얼른 작업복을 초록색 전신 타이츠로 갈아입고 대군 앞으로 뛰쳐나갔다(노홍철 아님 주의). 

 

메뚜기여 나에게와라~~ 출처: 책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메뚜기여 나에게 오라. 출처: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나를 마음껏 먹어치워라"

 

난 만세를 부르며 무리 속으로 몸을 던졌다. 메뚜기에 먹히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이 지금은 인류를 구원할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 웬수 같은 메뚜기들. 나의 꿈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나를 지나쳐 간다. 


 

출처: 책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출처: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마이노 울드 고타로

: 일명 메뚜기 박사. 『파브르 곤충기』에 감명받아 어릴 적부터 곤충학자를 꿈꿨다. 히로사키 대학에 들어가 곤충 연구를 시작했다. 고베 대학에서 사막메뚜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국립연구개발법인 국제농림수산업연구센터(JIRCAS)의 소속 기간제 연구원으로 사막메뚜기를 연구 중이다. 저서로는 『고독한 메뚜기가 무리를 이룰 때-사막 메뚜기의 상변이와 대발생』, 『메뚜기 잡으러 아프리카로』가 있다. 

 

 


이 책은 정식 곤충학자가 되기 위해 정년이 보장되는 자리를 구해야만 하는 마이노 고타로 박사의 모험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꿈을 이루는 최고의 비결은 꿈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현재 '기간제 연구원'이지만 5년 안에 어떻게든 성과를 올리면 종신고용이 약속된 '무정년'이 돼 정식으로 곤충학자로 불릴 수 있습니다.

 

과연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출처: 책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책 표지가 이 모양입니다. 클릭하면 서점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참고자료## 

 

마에노 올드 고타로,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해나무, 2018

Maeno, Koutaro Ould, Satoshi Nakamura, and Mohamed Abdallahi Ould Babah. "Sexing live adults of the three species of darkling beetle (Coleoptera: Tenebrionidae) and morphological characteristics." Annals of the Entomological Society of America 105.5 (2012): 726-73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충청남도 보령시 큰오랏3길
  • 법인명 : 이웃집과학자 주식회사
  • 제호 : 이웃집과학자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병진
  • 등록번호 : 보령 바 00002
  • 등록일 : 2016-02-12
  • 발행일 : 2016-02-12
  • 발행인 : 김정환
  • 편집인 : 정병진
  • 이웃집과학자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6-2019 이웃집과학자.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ontact@scientist.town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