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 티타임을 갖기 위해 물을 끓이고 티백을 넣어 머그잔을 가득 채웁니다. 잔을 들고 부엌에서 나가려는데, 물이 출렁거리다 이내 한 방울 '뚝' 하고 바닥에 떨어집니다. 자동적으로 걸음걸이는 느려지고 잔뜩 긴장한 채 머그잔을 꼭 쥐고 테이블로 향합니다.
이웃님들도 위와 같은 상황을 경험해보신 적 있으실 텐데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물이 출렁거리지 않도록 천천히 걷거나, 물 한두 방울 흘리는 것에 개의치 않고 그냥 걸으실지도 모릅니다.
<찬 잔 속 물리학>의 저자인 물리학자 헬렌 체르스키는 달랐습니다. 출렁거리는 머그잔 속의 물을 흘리지 않기 위한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간단한 실험을 해보았는데요. 그녀에 따르면, 물리학자로서 물을 흘리지 않을 유일한 해결책이 정말로 걸음속도를 늦추는 방법 밖에 없는건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했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다른 해결책을 알아냈을까요?
우선 그녀는 테이블 위에 머그잔을 올려놓은 후 물을 가득 채워 살짝 밀어보았습니다. 처음 잔에 힘을 가하면 잔은 밀리되, 물은 가만히 있기 때문에 물이 한쪽으로 쏠리게 됩니다. 그러다 중력에 의해 높은 쪽 물은 아래로 당겨지면서 반대쪽의 수면이 올라갑니다. 이후 순간 잠시 물은 평평해지지만 이내 출렁거리는 움직임이 몇 번에 걸쳐 반복됩니다. 그러다 이내 출렁거림은 잦아들고 물은 멈춥니다. 하지만, 물이 가득 담긴 머그잔을 들고 걸으면 어떻게 될까요? 물이 평형상태를 찾기 더 힘들어지겠죠?
헬렌 체르스키는 직경 4cm 머그잔(뉴턴 사진이 새겨진)과 직경 10cm의 머그잔에 물을 넣고 밀어봤습니다. 그러자 직경 4cm 머그컵은 초당 약 5번 출렁거렸으나, 직경 10cm의 커다란 머그잔은 초당 약 3번 출렁거렸다고 합니다. 잔의 형태에 따라 출렁거리는 '주기’가 달라진 건데요.
모든 머그잔에서 출렁이는 방식은 모두 동일하다고 합니다. 다만 머그잔의 크기가 달라졌을 뿐입니다. 이는 액체를 아래로 당겨 평형상태를 이루려는 중력과 평형상태를 지날 때 절정에 달하는 액체의 추진력 사이 힘의 불균형 때문에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때 머그잔이 클수록 액체의 양은 많고 이동할 공간이 넓어 출렁이는 주기가 길어지는 것이죠.
머그잔 고유진동수와 외부 힘 같으면 쏟기 쉬워
머그잔에서 출렁거리던 액체가 스스로 평형상태에 도달하는 속도를 머그잔의 '고유진동수'라고 하는데요. 모든 사물에는 고유진동수가 있다고 합니다. 보통은 크기가 클수록 진동수가 낮다고합니다. 그렇다면 머그잔을 쏟지 않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딱히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차가 가득 채워진 머그잔을 들고 걸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 흔들리는 속도가 머그잔의 고유진동수와 같게되면, 출렁거림이 더 심해집니다. 예를 들면, 그네에 타고 있는 아이가 더 세게 밀어달라고 하면, 우리는 그네가 흔들리는 속도에 맞춰 일정한 리듬으로 밀어주면 됩니다. 그러면 그네가 움직이는 각도는 점점 더 커지고 아이의 웃음소리도 함께 커지겠죠.
찻잔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특정 진동수를 가진 물체가 같은 진동수의 힘이 외부에서 가해질 때 진폭이 커지면서 에너지가 증가하는 현상을 '공진'이라고 하는데요. 외부에서 미는 힘이 출렁거리는 고유진동수와 가까울수록 차가 쏟아질 확률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이 마를수록 걷는 속도가 빨라지며 일반적인 머그잔의 고유진동수와 비슷해 진다는 겁니다.
따라서 헬렌 체르스키는 머그잔을 들고 천천히 걷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합니다. 천천히 걸어서 흔들리는 속도가 출렁거림의 고유진동수보다 낮아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한 가지 해결책이 더 있긴 합니다. 작은 크기의 머그잔을 골라 차를 담게 되면, 걸음 속도에 비해 고유진동수가 높아 출렁거림이 덜해진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차를 마실 때 간에 기별도 안 갈 것이란 사실이죠. 결국, 큼직한 머그잔을 가득 채워들고 한 방울도 안 흘린 채 빠르게 걷는 건 불가능한 일이였던것 같습니다.
##참고자료##
헬렌 체르스키, 『찻잔 속 물리학』, 북라이프,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