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우리는 화를 내면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경험칙으로 알게 됩니다. 나를 열받게 하는 수많은 상황에서 분노를 터뜨린 다음 뒷감당이 되지 않아 곤란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그런데 화를 내는 게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때가 있다는 심리학자의 주장이 있어 눈길을 끕니다.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마틴 박사는 스스로를 '분노 연구가'라 자처하는데요. 마틴 박사는 사람들이 화내는 걸 막연히 두려워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화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방해하고 인간 관계를 망치는지에 대해 무서워한다는 것인데요. 마틴은 물론 화를 둘러싼 이런 우려에 대해 이해가 되지만, 사실 분노는 건전한 삶을 위한 강력하고 건강한 요소라고 주장합니다.
일상 속 화나는 상황
그는 우리가 화를 내는 상황을 분류했습니다. 예를 들면 △앞의 차가 느리게 운전하기 때문에 △공중화장실 세면대에서 몸을 기울이다가 옷에 물이 묻었을 때 △자동차 키가 없어졌을 때 발이 달린 자동차 키에게 △USB를 반대로 꽂았을 때 △배우자가 우유를 꺼낸 뒤 냉장고에 넣지 않았을 때 등 사소한 일이 포함됐습니다. 나아가 △인종차별 △성차별 △따돌림 △테러 등 심각한 문제들에도 분노합니다.
마틴에 따르면 우리가 화를 내는 문제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모든 화는 독립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화를 내는 이유는 사회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앞차가 너무 늦게 가는 경우'에도 화를 낼 수도 있지만 화를 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화가 나는 경우를 굳이 꼽자면 '내가 어떤 사람과의 미팅이나 회사의 면접을 보러 가야 할 때' 정도가 될 수 있는데요. 이로 인해 이때는 운전자는 앞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인간이 아니라 '내 삶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나 괴물'이라는 생각까지 들 수 있다고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사고의 과정을 '파국화'라고 해요. 이런 사고 과정이 지속되면 '만성 분노'가 생길 위험이 커집니다.
화가 나면 심장이 고동치고 숨이 가빠지죠. 또 손에 땀이 나고 화를 내는 데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소화 기관이 느려집니다. 혈관도 확장되죠. 입이 마르는 이유인데요.
의분은 인류 발전에 도움 줘
마틴 교수는 "화는 때로는 폭력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화가 나면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문명사회에서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며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조상들이 생존하는 데 분노가 진화적으로 도움이 됐기 때문에 이런 감정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이 화를 내는 게 무엇에 도움이 될까요? 마틴 교수에 따르면 바보 같고 화낼 가치도 없는 문제들도 있지만, 성차별과 인종차별, 왕따, 테러리즘, 환경파괴 등 정말로 우리가 분노해야 할 사안들에 화를 내는 의분이 인류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심리학적으로 분노는 하나의 동기입니다. 갈증이 우리에게 물을 마시도록 하고 허기가 우리에게 음식을 찾도록 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분노는 우리로 하여금 삶의 부당함에 반응하게 함으로써 사회의 발전을 이끈다는 설명입니다.
문제는 조상들은 화가 날 때 물리적으로 싸우거나 전쟁을 벌이는 경우가 있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지점입니다. 비이성적이고 적절치 못한 행동으로 치부받게 됩니다. 마틴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는 화가 날 때마다 몽둥이를 휘두르기 곤란하다"면서 현대인이 과거 조상들과 인간 이외의 동물들이 하지 못하는 '화를 건설적으로 푸는 이성적 인간상'을 성취할 것을 강조하는데요.
마틴 교수는 "우리는 기부를 하거나 자원봉사를 하고 예술작품을 만들거나 문학을 창작하는 식으로 불의에 분노할 수 있다"며 "커뮤니티를 형성해 부당한 사안에 맞서고 상황을 변화시키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당 활동 등 정치 시스템 또한 이런 필요에 따른 결과물이겠죠.
##참고자료##
Ryan Martin, Why some anger can be good for you, Ted,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