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크면 지능이 높다?
머리가 크면 지능이 높다?
  • 강지희
  • 승인 2019.12.17 06:25
  • 조회수 1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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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옆에 강동원을 붙여봤습니다...출처: Wikimedia Commons
배우 하정우와 강동원. 출처: Wikimedia Commons

배우 하정우 씨가 한 인터뷰에서 "콤플렉스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요.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없어요.

그냥 뭐 얼굴이 크다 그러면 그래.

나 얼굴 큰데 큰대로 살아야지.

뭐 어떡하니 해골을 깎겠니 그거를?

머리가 다소 큰 편이라는 세간의 이야기에 넉살 좋은 입담으로 대응한 답변이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머리나 얼굴이 작아야 아름답다는 기준이 통용되고 있기 때문일 텐데요. 과거 서구에는 '머리가 크면 지능이 높다'는 통설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살았더라면 하정우 배우가 머리 크기를 염두에 둔 질문을 받진 않았을지도 모르겠군요.

 

머리 크기, 정확히는 두개골의 크기가 크면 지능이 높다고 믿었던 학문이 존재했습니다. 현재는 사이비 과학 또는 유사 과학으로 취급받고 있는데요. 바로 '골상학(骨相學, Phrenology)'입니다. 골상학을 추종한 사람들은 두개골의 크기가 크면 뇌의 크기도 클 것으로 믿었습니다. 

셜록 홈즈의 초상화. 출처: Wikimedia Commons
셜록 홈즈의 초상화. 출처: Wikimedia Commons

아서 코난 도일의 유명 추리소설 <셜록 홈즈>에서도 골상학이 등장합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푸른 카벙클(The Adventure of the Blue Carbuncle)>에서 홈즈는 커다란 모자를 발견하고 써봅니다. 홈즈는 모자를 써본 뒤 이렇게 독백합니다.

모자가 큰 걸 보니 두개골이 크군. 꽤 영리하겠어.

홈즈는 또한 두개골의 모양을 보고 인종을 맞히기도 했는데요.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를 집필할 당시에는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는 골상학이 과학의 한 분야로 인정받던 때였다고 합니다. 

 

골상학의 역사

골상학 지도. 출처: Wikimedia Commons
골상학 지도. 출처: Wikimedia Commons

골상학은 18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의사 프란츠 요제프 갈(Franz Joseph Gall)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갈은 뇌가 손상됐을 때 그 부위에 따라 장애를 일으키는 기능이 달라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는데요. 갈은 대뇌 해부를 통해 다양한 심적 기능이 뇌의 특정 부분의 활동으로 이뤄진다는 이론을 세웠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현대의 뇌과학과 비슷합니다. 실제로 뇌는 여러 영역에 따라 담당하는 기능이 다릅니다. 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두개골의 모양'을 분석하면 대뇌 각 부분의 크기를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정신능력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측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갈은 대뇌의 어느 부분이 크게 발달하면 뇌를 감싸는 두개골도 그 부분이 튀어나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두개골의 형태를 조사하면 그 사람의 지능 뿐만 아니라 성격, 적성, 궁합, 신앙심, 범죄성향까지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갈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두개골 표면을 27개 부분으로 구분하고 각 부분이 어떤 심적 특성을 관장하는지 설명했습니다.

 

독일의 해부학자 J.C. 스푸르츠하임(J.C. Spurzheim)은 한 술 더 떴습니다. 스푸르츠하임은 갈의 연구에 동참해 두개골 표면을 35개의 표면으로 구분해 각 부분에 35가지 심적 기능을 배당하는 등 골상학의 체계를 정비했습니다. 스푸르츠하임은 또한 골상학을 유럽 전역으로 퍼뜨렸습니다.

골상학에서 본 인간의 머리. 조지 콤의 저서 <골상학 원론(Elements of Phrenology, 1841)>에 기재됐다. 출처: Wikimedia Commons

골상학은 학계나 의료계로부터 의심과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에든버러의 조지 콤(George Combe)과 같은 골상학 옹호자들은 골상학이 과학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이 타고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 사회를 개혁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골상학을 다룬 조지 콤의 책 <인간의 구성(Constitution of Man)>은 당대에 가장 인기 있던 책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범죄학자들도 골상학에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19세기 말에는 관상학과 골상학이 범죄학 이론의 토대가 되기도 했는데요. 19세기 말 이탈리아의 의사 겸 범죄학자 체사레 롬브로소는 골상학을 범죄생물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롬브로소는 "두개골, 뼈의 모양, 얼굴뼈, 이마의 모양, 입술, 치아 등은 범죄성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했습니다. 

 

골상학, 차별 정당화해

영화 '장고 : 분노의 추적자' 포스터. 출처: flickr
영화 '장고 : 분노의 추적자' 포스터. 출처: flickr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 불리는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장고 : 분노의 추적자>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악역 캘빈 캔디는 손님들 앞에서 죽은 흑인 노예의 두개골을 보여줍니다. 그런 다음 이런 대사를 날리죠.

두개골을 연구하는 골상학은

백인과 검둥이(명백한 비하 표현입니다 -편집자 주-)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도구에요.

이 검둥이의 해골을 보면

복종에 관련된 부분이

지구 상의 그 어떤 인종보다 크죠.

골상학은 미국에서도 유행했습니다. 특히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이었죠. 미국의 골상학 옹호자들은 인간의 두개골을 수집해 뇌의 평균크기로 인종을 서열화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골상학 옹호자들은 이를 토대로 백인 남성을 우위에 두고 여성, 동물, 그리고 원시인(primitive)이라 부르던 흑인을 가장 하위에 뒀습니다. 골상학 옹호자들은 "흑인의 특징이 덜 진화된 인간의 특징이다. 백인보다 가볍고 작은 흑인의 뇌 역시 낮고 열등함을 의미"한다고 간주했습니다.

 

골상학과 같은 유사과학을 발판으로 삼은 인종차별주의는 미국 이민정책과 영국 제국주의자들의 등장을 부채질했습니다. 20세기에도 독일 나치가 "독일 민족이 가장 우월한 유전적 특성을 가졌으며 순수 아리아 인종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에 우생학과 더불어 골상학을 추종했다고 합니다.

야한 거 보면 뇌 어디가 활성화될까? 출처: pixabay
골상학이 뇌과학에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을까? 출처: pixabay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골상학은 유사과학으로 판정됩니다. 실제로 연구자들은 머리의 크기가 실제로 지능과 관련이 있는지 수천 명을 대상으로 연구해봤는데요. 연구 결과 머리의 크기와 지능의 상관계수는 고작 0.33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골상학의 기초가 된 "마음의 기능은 뇌의 물리적 활동"이라는 개념은 계속해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허버트 스펜서와 같은 중요한 사상가들에게도 영감을 줬죠. 실제로 해부학자들은 마음의 일부 기능이 뇌의 특정 영역의 활동에 기인함을 입증하기 시작했습니다. 1860년대 폴 브로카는 실제로 언어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을 확인했습니다.

 

생리학자들도 신경이 전기 자극에 의해 작동한다는 발견을 기반으로 신경계와 뇌의 운영 방식을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신경생리학과 심리학은 생각보다 빠르게 통합되지 않았습니다. 생리학자들은 마음 기능에 대한 연구를 오랜 전통에 따라 철학을 기반으로 분석하는 심리학자들에게 미뤄뒀죠. 후에 윌리엄 제임스와 철학적 심리학자들도 두뇌를 일종의 전기 회로로 보는 이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요.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신경생리학과 심리학이 제대로 연결됐다고 합니다. 

길고 긴 과학사! 분야별로 알고 싶다면?
길고 긴 과학사! 분야별로 알고 싶다면?

이완 라이스 모루스의 책 <옥스퍼드 과학사>는 골상학을 포함해 유물론, 동물 전기 등을 언급하며 과학자들이 생명과학을 연구하고 발달시킨 과정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천문학, 자연철학과 같은 학문이 어떻게 나오고 발전했는지 하나의 이야기로써 설명해줍니다.

 

##참고자료##
 

  • 이완 라이스 모루스 <옥스퍼드 과학사>. 반니(2019).
  • 김태호, 이정모 <삼국지 사이언스>. Bada Publishing(2016).
  • 박재용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행성B(2017).
  • 최현석 <인간의 모든 성격>. 서해문집(2018).
  • 김혜명. "흑인의 과학적 인종주의에 관한 고찰: 보아스학파를 중심으로." 통합유럽연구 9.2 (2018): 31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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