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하늘, 햇볕이 잔잔하게 내리쬐는 해변을 상상해보라.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로 물결치는 모래사장의 모래를 밟으면 언제나 특별한 기분이 든다. 파도로 부드러워진 모래사장에 첫 발을 내딛으면 자유가 느껴진다. 모래 위 모든 발걸음은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낭만적인 환경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축축한 모래 위를 밟을 때마다, 발 주변에서 마른 모래 색깔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발을 들어 올리면 다시 원래의 색깔로 돌아온다. 흔히 우리는 모래를 아래로 누르면 물이 고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마른 모래가 보다 더욱 축축한 모래가 생겨야 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모래는 참 알 수 없는 물질이다. 그리고 이 건조된 층은 모래의 가장 기이한 속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모래를 한 줌 쥐어서 보면, 모래가 다양한 모양과 색깔을 가진 바위 부스러기와 조개껍데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래는 한 알마다 모양이 달라 서로 완벽하게 들어차지 않는다. 단단히 압축된 모래라고 해도 그 사이 빈 공간 때문에 대략 40~50%는 부풀려져 있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은 물이나 공기로 들어차 있다. 모래 알갱이의 거친 표면이 물과 공기를 가둬 두기 때문에 해변의 모래사장은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지는 것이다.
모래 위에 발을 디디면, 이렇게 둘러싸인 물체에 압력을 가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단단하게 눌린 모래 알갱이는 아래 방향으로 으깨질 수 없다. 그럴만한 공간에는 이미 공기와 물이 들어차 있다. 하지만 발이 밟지 않는 주변 영역이 존재한다. 모래를 으깰 수는 없지만, 대각선으로 미끄러져 비껴갈 수는 있다. 즉, 발로 모래를 밟으면 발이 누르는 힘에 의해 모래가 옆으로 미끄러지게 된다. 여기서 핵심은, 모래가 빈 공간을 헤집으며 나아가는 과정이다. 서로 맞물린 모래층은 자리를 내주기 위해 아주 조금이라도 이리저리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이미 모래 알갱이는 효율적으로 쌓여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과를 비유로 설명해 보겠다. 사과 박스에 사과 여러 개가 놓여있고, 맨 윗 층에는 사과 한 개만 있다고 상상해보자. 맨 위의 사과는 아래층의 다른 사과들이 만든 작은 틈에 놓여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과를 비스듬하게 누르면, 사과가 회전하면서 아래 다른 사과들을 와해시킬 것이다. 이 사과가 바로 해변의 모래 알갱이라고 볼 수 있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바닥 아래에서는 수십만 개의 모래가 회전하고, 흩어지고, 미끄러져 빠져나가고 있다. 이렇게 모래가 빈 공간에서 빠져 나오면 서로 멀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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