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된 후 천재가 됐다"
"남자가 된 후 천재가 됐다"
  • 함예솔
  • 승인 2021.02.25 17:40
  • 조회수 8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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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신부 들러리로 촬영된 바레스. 이후 스탠포드대에서 신경생물학 교수로 재직했다. 출처: Ben A. Barres, Stanford School of Medicine
1988년 신부 들러리로 촬영된 바레스. 이후 스탠포드대에서 신경생물학 교수로 재직했다. 출처: Ben A. Barres, Stanford School of Medicine

40여년 동안 여성으로 살아온 바버라 바레스. 그런데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남자여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누군가에게 말하기는 어려웠는데요. 수년 후 바레스는 어머니가 자신을 임신했을 때 유산 예방을 목적으로 '남성화 약물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결과 바레스는 자궁과 질이 없는 상태로 태어났는데, '뮐러관 무발생증'이었습니다.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어린시절 바바라 바레스. 출처: AdobeStock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어린 시절. 기사 내용과 무관한 이미지. 출처: AdobeStock

바레스는 과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청소년 시절 컬럼비아 대학교, 벨 연구소 등에서 개최하는 청소년 대상 고급 과학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연구에 향한 열정을 키웠습니다. 1970년대, 그녀는 MIT에 입학합니다. 바레스는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과학 괴짜였습니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성차별적 발언이 일상이었습니다. 당시 과학계에는 남성이 대부분이었기에 지금과 비교하면 성인지감수성 등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가령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가 강의에서 성차별적 발언을 하며 관능미를 강조한 패션 모델의 나체 사진을 보여주는 식이었습니다. MIT 교수진은 바레스에게 자신들의 실험실에서 연구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여성을 학자로 잘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교수가 강의 시간에 과제로 내준 어려운 수학 문제를 아무도 풀지 못하고 바레스 혼자 풀자, 교수는 비웃었습니다. "남자친구가 대신 풀어준 것이 틀림없다"며 바레스를 부정 행위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바레스는 이후에 "그 교수는 수 많은 남학생이 풀지 못한 문제를 여학생이 풀었다는 사실을 그저 믿을 수 없었을 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뭘 연구하고 싶어도, 성과를 내고 싶더라도 가능한 풍토가 아니었던 거죠.

 

"남자가 된 후에야 실력을 인정 받다"

 

1997년 9월 어느날, 바레스는 자신의 인생을 뒤바꿀 기사를 하나 발견합니다. 일간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의 '스스로 만든 남자'란 기사를 읽었는데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한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바레스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여성이 남성으로 성전환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기사를 통해 처음 알았다고 합니다.

 

얼마 후, 바레스는 테스토스테론 치료를 받기 시작합니다. 바레스는 "안도감이 물결처럼 밀려왔다"며 처음으로 자신에 대해 편안함을 느꼈다고 회상합니다.

여성과 남성으로 살아온 벤 배러스는 여성 과학자들에 대한 성차별을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줬다. 출처: Stanford
남성이 된 바레스는 여성 과학자들에 대한 성차별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출처: Stanford University

남성이 된 바레스는 사람들이 자신을 더 존중하게 됐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학술적인 발언을 할 때 "남성의 방해를 받지 않고 한 문장을 끝까지 말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성전환을 하고 이름을 벤으로 개명한 뒤, 그는 과학계에 여성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만연했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한 남성 과학자가 바버라 바레스와 벤 바레스가 동일한 사람이란 사실을 모른 채 "오늘 벤의 강연은 엄청났어. 그의 연구는 여동생 바버라의 업적보다 뛰어나더군"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자가 된 바레스는 이후 일관된 연구를 통해 신경아교세포(glial cells)가 뇌발달과 기능, 질병에 기여한다는 개념을 과학계가 인정하게 만드는 등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바레스는 자신이 벤일 때 발표했던 연구가 여성 바버라일 때 했던 연구와 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는 연구자의 성별에 따라 달랐습니다.

 

공정한 과학을 만들기 위해서

 

바레스가 두 성(性)으로 살면서 겪은 일들은 과학계에 깔렸던 편견의 실상을 보여줍니다. 바레스는 그의 에세이에서 과학계의 편향을 보여주는 사례를 꼬집습니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이름이 없는 연구지원서를 평가했을 때에는 남성과 여성은 모두 동등하게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블라인드 없이 진행된 평가에서는 달랐습니다. 연구 보조금을 신청한 여성은 남성보다 3배 더 많은 성과를 들고 와야 남성과 비슷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에 바레스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들이 공정하다고 믿고 싶어하며 그러한 이유로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자료는 간과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바레스는 모든 성별과 인종에 대해 더 공정한 과학을 만들기 위해 투쟁했는데요. 그가 주목한 분야는 가장 수익성 좋은 보조금에 대한 지원금 신청에 존재하는 편견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레스는 국립보건원(Institutes of Health)이 재능있는 젊은 과학자들에게 수여하는 파어니어상(Director's Pioneer Award)의 선발자 선발 방법을 바꾸도록 설득했는데요. 선발될 경우 5년 동안 매년 5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남성연구자와 여성연구자 모두 동등하게 평가받는 날이 오길. 출처: AdobeStock
남성과 여성 연구자 모두 동등하게 평가받는 날이 오길. 출처: AdobeStock

2004년 64명의 선발 위원회 중 60명이 남성이었습니다. 9개의 모든 지원금은 남성 지원자에게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바레스를 비롯한 각계의 노력 끝에 2005년 국립보건원은 위원회의 여성 수를 늘렸고 13개의 보조금 중 6개가 여성에게 돌아갔습니다. 이어 그는 파어니어상과 마찬가지로 보조금에 대해 더 많은 성별 균형적 선발 과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과학자, 정책가, 사업가로서 들려주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들!
과학자, 정책가, 사업가로서 들려주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들

과학계의 유리천장을 깬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첫 여성 총재였던 리타 콜웰의 이야기가 담긴 책 <인생, 자기만의 실험실>에도 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리타 콜웰은 바레스가 "성전환하는 일 외에 경력에 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유일한 행동은 학계 여성의 복지를 위해 투쟁하겠다는 결정"이라고 했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진술합니다.

 

리타 콜웰은 과거 과학계에서 여성이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여성이 과학에 흥미가 없어서가 아니라고 봅니다. 수십년 간 과학계가 여성을 적극적으로 배제해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여성은 성공적인 경력을 쌓는 데 필요한 충분한 지성을 갖추고 있다고 말합니다. 많은 연구 결과가 스템(STEMM) 분야에서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는 사소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명하고 있는데요. 리타 콜웰의 자상한 증언을 통해서도 이러한 실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대안을 모색해볼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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