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 연료를 기후 중립적으로 쓸 수 있다면?
화석 연료를 기후 중립적으로 쓸 수 있다면?
  • 이웃집과학자
  • 승인 2022.07.30 12:00
  • 조회수 5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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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로 여러 가지가 꼽힙니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시도 등 여러 정치적 압박이 지정학적인 불안을 촉발시켰다는 분석 등이 그것입니다.

 

동시에 '자원 전쟁'의 관점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해석하는 흐름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8월 5일, 오는 2030년까지 신차 판매량의 50% 이상을 친환경차로 바꾸는 목표를 담은 행정 명령에 서명했습니다. 러시아는 전 세계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팔아 국부를 창출하는 나라인데요.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정권을 교체한 바이든 행정부의 이 같은 정책 방향성, 푸틴 대통령 입장에선 그리 달갑지 않았을 겁니다.

미국 차량소유주 81%가 가솔린 차량을 보유 중이었다. 출처: 스태티스타 GCS

독일 데이터 플랫폼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의 내연기관 승용차 시장 규모는 5천 5백 9십억 달러입니다. 스태티스타 단독 설문조사 서비스인 글로벌 컨슈머 서베이에 따르면 미국 차량 소유주 7천 3백여 명 중 81%가 가솔린 차량을 보유 중이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자동차 연료 타입을 전기차로 '대전환' 한다는 움직임은 러시아의 심기를 상당히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관측입니다. 그만큼 자원은 국제 정세에서 대단히 민감한 분야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러시아가 유럽에 공급하던 가스를 줄이기로 하면서 올 겨울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 비상이 걸렸는데요. 특히 독일은 이번 겨울에 한 해 석탄과 석유 난방을 가동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상황입니다. 55%가 넘는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를 중기적으로 낮추겠다고 천명한 독일, 그러면서도 당장 올 겨울 에너지 수급이 다급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석유와 천연 가스 등 기존 에너지원을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할 것이 아니라, 기후 중립적 성격에 맞게 가공할 수 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카이 A. 콘라드(Kai A. Konrad) 세법 및 공공재정정책 이사 출처: 막스플랑크연구소

녹색 패러독스

전 세계의 가스와 석유 매장량은 상당합니다. 태우면 온실가스가 발생합니다. 지구 온난화가 한도 내로 유지되려면 에너지 산업에서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비중이 획기적으로 줄어야 합니다. 현재 연구에 따르면 설정된 기후 목표를 고려할 때 석유 및 가스 매장량의 60%는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석탄은 말할 것도 없죠.

 

현재 국가 및 국제 기후 정책은 예를 들어 국제적으로 거래 가능한 CO2 인증서, CO2 배출에 대한 세금, 발표된 석유 난방 금지 등을 표방합니다. 화석 연료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게 핵심입니다. 동시에, 기후중립 형태의 에너지에 대한 보조금 지급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속력이 없는 협정에 의존하거나 '모든 국가가 옳은 일을 할 것'이라는 믿음만 가지고선 지구 온난화를 완화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힘듭니다.

출처: Adobe Stock

더구나 화석 연료에 대한 수요를 억제하더라도 석유와 천연가스의 재고는 남아있습니다. 수십억 배럴의 화석 연료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 모래 아래에 매장돼 있습니다. 오늘날의 시장 가격으로 따지면 수십억 달러 이상의 가치입니다. 만약 화석 연료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정말 줄어들 경우, 주요 석유 생산국은 석유와 가스의 공급 가격을 낮춰 각국의 수요를 다시 촉진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국제 사회의 대 러시아 제재가 이어지면서 천연가스와 유가의 흐름은 시장의 기존 흐름에서 다소 벗어난 상태입니다. 러시아의 공급 부족을 보상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전체 생산에 사용할 수 있는 석유와 가스의 총량은 변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러시아는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에 대응해 중국과 인도에 싼 가격으로 원유를 판매 중입니다. 중국 세관인 해관총서 6월 자료를 보면, 지난 5월 중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은 842만 톤이었습니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55%, 한 달 전인 4월보다 25%가 폭증했습니다. 원자재 정보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인도 또한 지난 5월 러시아산 석유를 하루 평균 84만 배럴 수입했습니다. 4월 보다 두 배 이상 수입량을 늘린 겁니다.

 

학계에서는 이 문제를 '러시 투 번(rush to burn)' 또는 '녹색 역설(green paradox)'이라는 용어로 정의합니다. 현재 추진 중인 각국의 탈탄소 정책들이 역설적으로 기후 협약이 추구하는 목표와 그 효과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겁니다. 녹색 역설에 관한 광범위한 이론 문헌은 그러한 위험을 지적하고 경험적 증거를 제공합니다. 경제학자 Hans-Werner Sinn은 이 개념을 연구한 공로로 2009년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기후 친화적인 제품에 가스와 오일을 사용한다면?

이러한 이유로 몇 해 전 석유와 가스 매장량이 높은 국가들이 이를 채굴하지 않고 땅 속에 영원히 남겨두도록 보상해줘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너무 말이 안 되는 천문학적 금액이 추산돼 설득력이 떨어지는 제안이었죠. 무엇보다 국제 사회가 마음을 모아 그 자금을 제대로 조달할 수 있도록 중지를 모으기 힘들 거라는 건 상식적입니다.

 

그런데 기후 중립적이거나 친환경 제품에 석유와 가스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카이 A. 콘라드 이사는 "시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며 이 논리를 내세웁니다. 그는 "석유와 가스는 현재보다 미래 제품의 원료로서 더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오늘날 시중의 석유와 가스는 공급이 한정적이고 가격은 지속적으로 우상향 할 것입니다. 이런 구조는 각국으로 하여금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겠죠. 기후 친화적 에너지 개념은 시장에서 더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들의 혁신은 경제적 관점에서도 흥미롭습니다. 만약 석유와 천연가스가 태워버리기에 너무 가치가 높아지고 비싸진다면 국제 기후 협정이나 CO2 세금 또는 연소 목적을 위한 석유 및 가스 사용 금지는 불필요할 겁니다.

 

가장 흥미로운 아이디어 중 하나는 약 75~99% 에 달하는 천연가스의 주요 구성 요소 '메탄'으로부터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입니다. 이것은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도 주요 화두입니다. 지금까지 '회색' 또는 '청색 수소'의 생산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메탄의 분할은 적어도 CO2의 부분적 방출과 함께 발생합니다. 촉매 열분해와 같은 공정은 더 우아합니다. 이 공정은 CO2의 방출을 피하고 수소와 함께 순수한 탄소를 생성합니다. 때로는 나노 물질의 형태로 생성됩니다. 촉매 분해에는 에너지 투입이 필요하지만, 현재 각 도시 수급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녹색 수소'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 투입량 약 8분의 1 수준이면 족합니다.

출처: Adobe Stock

기후 친화적이고 CO2 중립적인 에너지 운반체로써 수소는 탈전환 경제의 핵심입니다. 수소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열분해 중에 형성되는 탄소 나노물질(CNT)일 겁니다. CNT로 만든 탄소 제품은 무엇보다 건설, 자동차 및 항공 우주 분야에 잠재적으로 응용할 수 있습니다. 강철, 알루미늄 또는 콘크리트와 같은 전통적 재료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재료는 일반적으로 상당한 탄소 발자국을 남깁니다.

 

CO2 배출이 없는 촉매 열분해 기술이 대규모로 사용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그러나 고갈될 수 있는 원자재 시장의 시간적 관계에 관한 평형-이론적 분석은 석유와 가스의 기후 친화적 용도 변경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기후 중립적 탄화수소 사용은 메탄 분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원유는 이미 기후 친화적인 용도로 사용됩니다. 청록색 수소, 탄소 섬유, 플라스틱 및 기타 석유 제품이 그 예입니다. 천연가스와 원유를 희소성 높으면서도 기후 중립적 용도로 가치 있게 만드는 작업은 화석 연료의 값싼 공급이라는 역작용을 견제하는 작업에 중요합니다. 목재, 재생 가능한 식물성 대체물 등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한 제품을 홍보하는 일이 그다지 기후 중립적 노력에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는 점이 역설적입니다.

콘라드 이사는 석유와 가스로 만든 기후 친화적 제품의 혁신을 촉진하는 정책이 더 적절하다고 역설합니다. "건설 업계가 중세 시대의 건축 자재에 의존하지 말고 철강, 알루미늄, 콘크리트를 탄소계 건축자재로 대체하도록 추진해야 한다"는 겁니다. 기후 중립적 기술 생산된 건축 자재가 자동차 산업이나 항공에서 탄소 집약적인 건축 자재를 대체할 수 있으며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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