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의 우주라는 뇌. 외부로부터 오는 독소나 약물, 병원균 등의 침입은 막고 필요한 물질만 투과시키는 특이한 구조의 혈뇌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혈뇌장벽을 어떤 병원체나 화합물이 통과할 수 있는지, 통과한다면 어떤 양상인지 미리 실험실에서 모델링해볼 수 있는 바이오칩이 새롭게 소개됐었습니다. 수 백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미세채널들로 구성한 칩에 뇌혈관과 뇌세포를 모사해 배양하고, 그 사이에 혈뇌장벽을 구현해낸 것인데요. 뇌혈관을 모사한 미세채널을 통해 배양액과 함께 주입된 다양한 물질이 혈뇌장벽을 모사한 선택적 투과막을 통과해 뇌세포를 모사한 챔버로 이동하는지 현미경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 : 우리 몸의 모든 신체활동을 관장하는 장기인 뇌를 포함한 중추신경계를 둘러싸고 있는 선택적 투과막으로, 혈액을 통해 감염될 수 있는 병원체와 해로운 외부 물질의 통과를 차단한다.

핵심은 3차원 하이드로젤로 세포가 자랄 수 있는 미세환경을 모사, 배양액의 흐름을 제어하면서 신경줄기세포, 뇌혈관 내피세포, 뇌혈관 주피세포를 공배양함으로써 실제 뇌 발달시 뇌혈관세포의 생장과 혈관신생 과정을 모사한 것입니다. 분자량이 제각각인 여러 물질이 사이토카인을 처리했을 때만 바이오칩의 투과막을 통과하는 것을 통해 실제 혈뇌장벽처럼 선택적 투과막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검증했습니다. 나아가 바이오칩에 병원성 곰팡이*를 주입했을 때 곰팡이가 마치 뇌세포를 찾아가는 것처럼 투과막으로 이동한 후 응집된 형태로 통과하는 현상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이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알아냈는데요.
*크립토코쿠스 네오포만스(Cryptococcus neoformans) : 뇌 감염질환을 유발하는 병원성 곰팡이.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에게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다. 혈액을 통해 전신으로 퍼진 이후 혈액-뇌 장벽을 통과하여 뇌수막염 및 뇌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곰팡이로 인한 뇌 감염은 알려져 있었지만 적절한 실험모델이 없어 이 곰팡이가 어떻게 뇌에 도달하는지 알지 못했었습니다. 연구진이 찾아낸 유전자를 제거한 곰팡이는 혈뇌장벽 모사막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을 통해 이 곰팡이의 신경친화성의 기전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향후 곰팡이성 뇌수막염에 작용할 수 있는 후보물질 발굴이나 혈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는 화합물 발굴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기초연구지원사업,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등의 지원으로 수행된 이번 연구는 의생명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Nature Biomedical Engineering)에 2021년 6월 15일자로 게재되었습니다.
주요내용 설명
1. 연구의 필요성
○ 미세유체 칩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장기 칩(organ-on-a-chip)이 체외모델 로서 주목 받고 있다. 기존 2차원적 세포배양 방식으로는 실제 장기 특이적 미세환경과 구조 및 기능을 구현하기 어렵다.
○ 반면 마이크로 채널을 통해 유체흐름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장기 칩은 다양한 물리적 자극 및 3차원 세포외기질을 제공, 장기의 미세환경을 모사하여 실제와 유사한 생체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 그동안 다양한 장기 칩이 제작되었으나, 혈액-뇌 장벽의 경우 구조 및 세포 성분의 복잡성과 선택적 투과막으로서 기능 구현의 어려움으로 인해 효과적인 혈액-뇌 장벽 칩 개발이 어려웠다.
※ 미세유체 칩(microfluidic chip) : 반도체 공정을 통해 제작되는 바이오칩으로, 극미량의 시료로 연구할 수 있어 진단용 칩부터 세포 배양 및 분석장치까지 의학, 생명공학, 환경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 장기 칩(organ-on-a-chip) : 미세유체 칩 내에 특정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를 배양하여 해당 장기의 구조, 기능 및 특성을 구현한 체외모델.
○ 뇌수막염을 유발하는 곰팡이인 크립토코쿠스 네오포만스는 혈액-뇌 장벽을 자유롭게 통과하여 뇌 조직에서 군집을 형성하고 뇌신경 세포를 파괴한다. 전 세계적으로 이 균으로 인한 뇌수막염 유병률이 증가하고 있으며 매년 18만 명의 환자가 목숨을 잃는다.
○ 그러나 세포 및 실험동물 등 기존 모델로는 이 균이 뇌를 침투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없어 균의 혈액-뇌 장벽 통과 기전 및 관련 인자를 규명하기 어려웠다.
○ 또한 이 곰팡이는 전신감염 이후 뇌에 선택적으로 침투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런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분석모델이 전혀 없었다. 따라서 혈액-뇌 장벽을 자유롭게 투과하고 뇌 조직 내부로 침투하는 곰팡이 감염에 관한 심층적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2. 연구내용
○ 뇌혈관은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 중 하나인 뇌를 보호하기 위해 외부 물질의 유입을 막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혈액-뇌 장벽 모델 구축을 위해서는 뇌혈관세포의 혈관 형태의 3차원 배양과 유체의 흐름을 통한 유동적 배양이 필수적이다.
○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미세유체 칩 안에 뇌 조직의 세포외기질을 모사하는 3차원 하이드로젤과 배양액의 흐름을 제공하여 뇌혈관세포의 생장 및 혈관 구조 형성을 촉진하고자 하였다.
※ 세포외기질(extracellular matrix) : 세포 외부에 존재하는 세포 결합 조직으로 세포와 세포 사이의 공간을 채우는 기질.
※ 하이드로젤(hydrogel) : 친수성 고분자 사슬로 이루어진 다공성 3차원 지지체로서, 높은 함량의 수분을 포함함.
○ 인공 혈액-뇌 장벽 칩 제작을 위해 인간 신경줄기세포, 뇌혈관 내피세포, 뇌혈관 주피세포를 유기적으로 3차원 공배양하여 뇌혈관이 포함된 실제 인간 뇌 조직을 모사하는 장기 칩 개발에 성공하였다. 신경줄기세포는 혈관세포와 공배양 시 성상 교세포로의 분화가 증진되는데, 이를 통해 실제 혈액-뇌 장벽의 특이적 구조 및 기능을 구현할 수 있었다.
※ 신경줄기세포(neural stem cell) : 신경세포, 성상교세포 및 희소돌기아교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성체줄기세포.
※ 뇌혈관 내피세포(brain microvascular endothelial cell) : 뇌혈관의 내벽을 구성하는 세포로서 혈류와 직접 맞닿아 있으면서 혈관의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함.
※ 주피세포(pericyte) : 혈관 주위에 존재하는 결합조직성 세포로서 혈관조직의 안정화와 유지에 기여함.
※ 성상교세포(astrocyte) : 신경 아교 세포의 일종으로 혈액-뇌 장벽의 구조 유지, 기능뿐 아니라 신경세포 기능까지 조절할 수 있음.
○ 개발된 칩을 이용하여 크립토코쿠스 네오포만스 곰팡이의 감염과정과 관련 인자들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혈액-뇌 장벽 칩에 곰팡이를 주입하였을 때 균이 뇌혈관 주변에 모이고 혈관 장벽을 통해 뇌 조직으로 침투하는 양상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 반면 뇌 조직으로 침투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곰팡이들과 뇌 조직 침투에 중요한 유전자가 삭제된 돌연변이 균주들은 혈관 장벽을 투과하지 못하였다.
○ 나아가 혈액-뇌 장벽 구조를 포함한 다중 장기칩을 제작하여 크립토 코쿠스 네오포만스 곰팡이의 신경친화성(neurotropism)을 확인하고 관련 감염인자들을 규명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신경 친화성 및 혈관 침투와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인산화효소, 전사인자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
3. 기대효과
○ 미세유체 칩, 줄기세포, 기능성 생체소재 기술을 융합하여 그동안 구현이 어려웠던 기능적인 혈액-뇌 장벽 체외모델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제작된 인공 혈액-뇌 장벽 칩은 기존 보고된 모델과 비교 했을 때 실제 뇌 조직의 구조와 세포 성분에 가장 근접한 플랫폼으로 여겨진다.
○ 본 연구에서 뇌 감염성 크립토코쿠스 네오포만스 곰팡이의 신경 친화성, 혈관침투인자로 발굴된 인산화효소 및 전사인자들은 향후 추가 연구를 통해 곰팡이성 뇌수막염 치료제를 위한 표적인자로서 난치성 뇌 감염증 치료제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또한 구축된 혈액-뇌 장벽 칩은 뇌신경 질환 치료제 약물 스크리닝은 물론 뇌혈관을 투과하는 약물전달시스템 개발 연구에도 활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