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동안 제자를 고문하고 인분까지 먹인 인면수심 교수 장 모씨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제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는 모습을 아프리카TV로 생중계까지 했던 극악한 과학 빌런의 등장에 전국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는지, 지난 2015년 수원지법 성남지원 제1형사부는 검찰 구형한 10년 보다도, 심지어 대법원이 정한 양형 기준인 10년 4개월보다 중한 징역 12년 형을 선고했습니다.
"나중에는 병원가서 보니까 안면 2도 화상으로 나오고 피부가 녹아내리더라고요. 매를 하도 맞아가지고…허벅지 괴사가 돼서 살을 다 파내고 피부 이식까지 한 적도 있었고…(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 중) 제일 큰 것은 공증이라는 걸 제가 이제 섰었거든요. 제가 도망나오면은 그걸 저한테 걸어 버리면은 저희 집은 날아가는 거에요"
"부모님한테 정말 죄송한 얘기지만, 자살 기도로 정말 옥상도 수십 번을 올라갔었고요. 한 번은 마포대교까지 갔다가 친구가 구해온 적도 있었어요. 내가 큰아들인데 집안에 믿고 있는 게 나 하난데…좀 견디고 해보자 견디고 해보자 그렇게 했던 게 이렇게까지 온 거죠"
-피해 학생 2015년 증언-
하지만 교수에게 적용된 법률인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3조 1항(폭처법)'이 2015년 위헌 결정을 받았고, 피해자도 해당 교수를 용서했다는 점을 감안해 2심 재판부는 죄수들의 형량을 징역 10년으로 낮췄습니다.
이에 따라 그 인분 교수는 3년 뒤인 2025년 출소합니다.
학계 폭력, 개선되고 있나
지난 2014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는 우리나라 대학원생 10명 중 4명 이상이 학내에서 폭언이나 차별 등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설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부당 대우를 당한 대학원생은 대부분 학업이나 연구 과정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그냥 참고 넘겼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가장 많았던 괴롭힘은 신체, 언어적 폭력이나 성희롱, 성추행 같은 '존엄권' 침해였습니다.
두 번째 유형은 사생활 침해 등 자기결정권 침해였습니다. 교수가 자녀의 과외를 무료로 시킨다거나 대학원생들이 교수의 이삿짐을 나르는 식입니다. 운전이나 설거지, 쇼핑 같은 자잘한 심부름을 아무렇지 않게 지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논문을 도용하거나 공저자를 강요하는 등 저작권을 침해당했다고 답한 이들도 전체의 9%가 넘었습니다. 교수 부인의 이름을 공저자로 기재하라는 강요를 당하기도 합니다.
과학 커뮤니케이션·기술 기업 제공 업체 캑터스 커뮤니케이션즈(CACTUS)가 2020년에 실시한 정신 건강 설문조사(CACTUS Mental Health Survey)에 따르면, 총 1만 3천여 명의 응답자 중 1/3 이상(37%)이 직장에서 어떤 형태로든 괴롭힘이나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40%에 달하는 응답자들이 소속 기관에 직장 내 적대적 행동에 대응할 수 있는 엄중한 정책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괴롭힘이 연구자들의 정신 건강과 안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주요 원인의 하나란 점도 드러났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 견제해야
이후 대학원생을 보호하고 조교 업무 시 직무와 근로 시간 등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방안이 추진됐습니다. 2017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학원생이 학과 또는 지도교수의 조교로 근무할 때 계약서를 체결토록 하는 방안을 교육부와 함께 추진했습니다. 노 의원은 "조교의 업무 시간과 범위, 임금 형태, 계약서 작성 여부 등 근로 현황 전반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교육기관정보공개법 개정안을 상반기 중 발의할 계획"이라고 당시 밝혔습니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관련 논의는 힘을 얻지 못했습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과 박노자 교수는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유일한 대책은 '무소불위의 권력'이 없게끔 한다는 것"이라며 "모든 권력이 모든 층위에서 견제되고 상쇄되고 밑에서도 위에서도 통제받는 거야말로 현실적으로 인간다운 사회의 기초적인 전제조건"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최근 캑터스 커뮤니케이션즈(CACTUS)는 어떤 괴롭힘도 없는 글로벌 학술 문화를 꿈꾸는 이니셔티브 'THINK Academia'를 출범했습니다. THINK는 전 세계 연구자들을 위해 더 안전하고 따뜻한 업무 환경을 조성하는 데 필수적인 특징인 'Thoughtful(사려 깊음), 'Humane(인도적)', 'Inclusive(포용)', 'Nurturing(보살핌)', 'Kind(친절)'을 의미합니다.
이번 이니셔티브 출범과 관련해 아비쉑 고엘(Abhishek Goel) 캑터스 공동창업자 겸 CEO는 "캑터스 정신 건강 설문조사는 연구자들과 학계를 지원하려는 노력의 시작일 뿐"이라며 "지난 몇 년간 학계와 학술 기관 내 괴롭힘이 심각한 상황을 보이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전면에 부각하기 위해 THINK Academia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THINK Academia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학계의 괴롭힘이 미묘하고, 비언어적으로, 비가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특정 행위와 행동을 포함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것입니다.
학계의 미래를 권력화 된 교수 개개인의 인성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점을 우리 사회가 공히 인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무소불위의 교내 권력이 다각도에서 견제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환기하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합니다.